"평범한 사람들의 평범한 사건들이 가장 큰 피해를 본다."
장애인 등 취약계층 범죄 피해자를 주로 대리해온 김예원 변호사(장애인권법센터 대표)는 17일 한경닷컴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여야가 추진하는 형사사법제도 개편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더불어민주당이 검찰 보완수사권 폐지를 담은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당론으로 추진하고 국민의힘도 대안을 내놓은 가운데, 두 안 모두 형사 절차를 복잡하게 만들어 결국 피해자의 부담을 키울 수 있다는 것이다.
김 변호사는 좋은 형사사법제도는 누구나 이해할 수 있을 만큼 단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형사사법은 국민의 기본권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에 내용이 복잡하면 나쁜 제도로 본다"며 "우리나라는 정확히 역행하고 있다. 검경 수사권 조정 때 이미 형사 전문 변호사들도 헷갈릴 정도로 복잡해졌다"고 비판했다.
절차가 복잡해진 데 따른 부담은 피해자에게 쏠리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대로 개편이 이뤄지면 '사법의 민영화'가 현실화할 수 있다는 우려다. 김 변호사는 "경찰은 열람도 못 하게 하면서 불송치 이유는 두세 줄로 쓴다"며 "사건 기록을 못 보는 상태에서 귀동냥으로 추측해 이의신청서를 써야 하니 일각에서는 수임료로 1000만원 이상을 받는다는 이야기까지 나온다"고 말했다. 이어 "평범하게 살아가는 서민들이 그 돈을 어떻게 내겠느냐"고 지적했다.
복잡해진 제도 속에서 피해자가 스스로 권리를 찾아야 헤매야 하는 구조가 될 수 있다는 위험성도 지적했다. 김 변호사는 "당장 중대범죄수사청이 생기면 평범한 사건이 중대범죄수사청으로 갈지 일반 경찰서로 갈지부터 헷갈린다"며 "범죄 피해 자체로도 고통스러운데 국가가 2차 가해를 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치안은 한번 무너지면 다시 올리기가 굉장히 어렵다"며 "정치인들이 이 제도를 설계할 때 굉장히 신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김 변호사와의 일문일답.
▶ 민주당에 이어 국민의힘도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냈다. 두 안 모두 형사 절차를 더 복잡하게 만든다는 평가가 있다.
"국제적으로 기준이 명확하다. 좋은 형사사법의 중요한 기준은 잘 모르는 사람도 이해할 수 있게 단순해야 한다는 것이다. 형사사법은 국민의 기본권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에 내용이 복잡하면 나쁜 제도로 본다. 관련 권고도 계속 나온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정확히 역행하고 있다. 지난 검경 수사권 조정 때 이미 형사 전문 변호사들도 헷갈릴 정도로 복잡해졌다. 비법률가들은 말할 것도 없다."
▶ 검경 수사권 조정 이후 현장에서 가장 크게 체감한 문제는.
"주로 장애가 심한 분들, 범죄 피해로 중환자실에 있는 아동, 요양원에 계신 노인 같은 분들을 대리한다. 이분들이 느끼는 가장 큰 문제는 '이의신청'이라는 벽이다. 검찰은 불기소하는 이유를 자세히 써주고 열람할 자료도 많아 다투기가 오히려 쉽다.
그런데 경찰은 열람도 못 하게 하면서 불송치 이유는 두세 줄로 쓰는 경우가 잦다. 무엇을 바탕으로 다퉈야 할지 암담하다. 사건 기록을 못 보는 상태에서 귀동냥으로 추측해 이의신청서를 써야 하니 난이도가 굉장히 높다. 그래서 일각에선 관련한 수임료가 330만원 정도 하다가 이제 1000만원 넘게 받는다고 한다. 평범하게 살아가는 서민들이 그 돈을 어떻게 내나. 포기하는 것이다.
국가가 세금을 받고 제공하던 법률 서비스를 국민 동의도 받지 않고 없애면서, 힘들게 살아가는 분들이 대응을 포기하게 만든 몹시 나쁜 제도다. 그래서 경찰이 수사를 종결하지 못하도록 제도를 바꿔야 한다고 계속 말하는 것이다. 수사종결권을 경찰이 가진 나라는 전 세계를 뒤져봐도 극히 드물다. 여러 나라 법조인들에게 다 물어본다. 검사의 감독 없이 경찰이 임의로 종결하게 하는 극단적인 나라가 거의 없다."
▶ 전건 송치를 주장해왔다. 검사 1인당 사건이 쌓인 상태에서 지난해 경찰 불송치만 60만건에 육박하는데 전부 송치하면 제대로 검토가 가능한가.
"백신을 맞아도 병에 걸리지만 예방 차원에서 맞는 것처럼, 전건 송치는 그 개념으로 이해해야 한다. 설사 검찰이 못 잡아내더라도 이후에 누군가 이 기록을 보는 사람이 하나 더 있다는 개념이 현장에 미치는 영향은 매우 크다. 수사권 조정 전에도 검찰이 모든 오류를 시정하지는 못했다. 그래도 뒤에서 보완이 될 것이라는 믿음이 있으니 앞에서 사건을 치고 나가는 부분이 있었다.
지금은 경찰이 앞 단계에서 종결까지 해야 한다. 법리 판단 부담 때문에 빨리 치고 나가야 할 사건들이 못 나간다. 전건 송치로 그 부담을 덜어주면 경찰이 사실관계에 집중할 수 있어 수사 초반의 속도도 살 수 있다. 또 두 번째 검토를 하는 주체(검사)가 있다는 압박 때문에 경찰 단계에서 위법하거나 부당하게 수사하는 것을 예방하는 효과도 있다. 즉 전건 송치는 두 번째 점검을 통해 수사의 완성도를 높이는 중요한 동기인 것이다."
▶ 민주당 안을 보면 고소인·고발인·피해자가 수사 과정의 법령 위반·인권 침해·수사권 남용을 검사에게 신고해 시정조치를 요구할 수 있도록 명문화했다. 피해자가 수사 과정의 문제를 인지할 수 있나.
"허황된 생각이다. 제가 만난 피해자 중에는 기자도, 선생님도, 의사도 있었다. 범죄 피해를 보면 멀쩡한 사람도 제정신이 아닌 상태가 된다. 그런 사람들에게 부실 수사의 책임을 떠넘기는 방식이다. 옛날에는 국가가 무료로 제공하던 고품질 서비스를 없애고 이제는 각자 돈과 시간을 들여 이의신청하라고 바꾼 것 아닌가.
겉으로는 권리를 인정해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탐정도 아닌데 직접 뛰어다니며 어디서 잘못됐는지 알아내 검사에게 신고하라는 것이다. 그건 제도 설계가 아니다. 제도는 누가 와도 별 탈 없이 작동하게 설계하는 것이다. 권한을 가진 사람에게 재량을 줘서 문제를 풀게 해야 한다."
▶ 여야 모두 형소법 개정안에 고발인 이의신청권을 부활시키면서 기한을 뒀다. 민주당 안은 30일, 국민의힘 안은 90일이다.
"본질적으로 이의신청 자체도 실패한 제도인데 기한까지 만들면 감당이 안 된다. 지금 마련하려는 제도가 홍콩과 비슷하다. 다만 홍콩 검사에게 직접 확인해보니 그곳은 공소시효가 없고 구속기간도 없다. 그러니까 그 제도가 돌아가는 것이다. 우리처럼 공소시효와 구속기간이 있는 상태에서 이의신청 기한까지 만들면, 목소리 한번 못 내보고 쓰러지는 사람들의 원망을 어떻게 감당하려는 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 증거법 개정도 계속 요구해왔다. '검수완박' 때 피의자 신문조서의 증거능력이 제한되고 영상녹화물도 빠졌는데, 이번 양당 안 모두 이 부분은 손대지 않았다.
"사건 초반의 피의자 진술은 증명력이 상당히 높은 증거다. 초반에는 기억이 왜곡되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이다. 변호사 상담을 받는 순간부터 유리한 것만 말하고 불리한 것은 숨기게 된다. 피의자 신문조서는 수사기관이 시간과 비용을 들여 공들여 만든 증거이다. 그걸 피고인이 법정에서 부인하면 다 못 쓰게 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일이다. 어느 나라 변호사를 만나 물어봐도 깜짝 놀라며 오히려 '그럼 뭘 증거로 쓰냐'고 반문한다.
또 우리나라와 달리 독일은 수년 전에 이미 영상녹화물도 본증으로 쓰는 것을 형사소송법에 전면 도입했다. 조서에는 '네, 네'로만 적히는 것이, 영상을 보면 이 사람이 정확히 이해하고 답한 게 아니라는 지점을 판사가 잡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우리나라에서는 영상녹화물의 본증 사용을 두고 '법정이 극장이냐', '공판중심주의를 모르냐'며 반대하는 목소리가 있다.
증거를 법정에 현출하는 방식은 대법원 예규로 정하면 된다. 지금은 일률적으로 정해진 게 없을 뿐이다. 재판부가 재량을 갖고 발전된 기술을 잘 활용하도록 하면 영상 녹화로 증거를 내는 것도 기술적으로 부담이 크지 않다. 일각에선 영상 조작도 걱정한다. 다만 디지털 증거 분석(포렌식)으로 기록이 다 남는 시대에 조작 우려는 근거가 매우 빈약하다. 피해자에게 '가서 신고하라'고 할 게 아니라, 피해자가 수집한 증거를 법정에 잘 현출할 수 있는 통로를 만들어줘야 한다. 그 통로가 증거법이다."
▶ 이번 개편을 두고 일각에서는 '사법의 민영화'라는 말까지 나온다. 개편이 현실화하면 가장 보호받지 못할 피해자는 누구인가.
"사법의 민영화라는 말에 너무 동감한다. 이번 사법 체계 개편안이 실제 통과될 경우 평범한 사람들의 평범한 사건들이 가장 큰 피해를 본다. 당장 평범한 사건이 중대범죄수사청으로 갈지 일반 경찰서로 갈지부터 헷갈린다. 이에 사건 개시와 입건부터 힘들어진다. 범죄 피해 자체로도 고통스러운데 국가가 2차 가해를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예전에 장애인들만 노려 신분증을 들고 오게 한 뒤 최신 휴대폰을 개통시키고 이틀 뒤 헐값에 되사는 조직적 사기를 잡은 적이 있다. 건당 300만원이지만 피해자가 수십, 수백명이었다. 당시에는 수사 지휘가 있고 책임이 명확해 검사실 하나만 지정되면 사건을 몰아 병합해 기소할 수 있었다.
지금은 그게 무너져 있다. 겉보기에 사소하지만 파보면 거대한 사건들의 관할을 서로 미룰 것이다. 이에 피해자는 각개격파로 뚫다가 포기하게 될 것이다. 그냥 '재수 없었다' 생각하고 털어버리게 만드는 것이다. 범죄자만 살판나는 세상이다. 세상에 거악만 있는 게 아니다. 사소한 악들이 모여 거악이 판치는 세상이 된다.
치안은 한번 무너지면 다시 올리기가 굉장히 어려운 덕목이다. 사람들이 '우리나라 형사사법 시스템은 작동하지 않는다'고 체감하게 되면 자력 구제로 갈 것이다. 그렇게 되면 범죄율이 치솟는다. '참교육' 같은 사적 제재 콘텐츠에서나 볼 일이 실제로 벌어진다고 생각해보라. 그런 사회에서 어떻게 아이를 낳아 키우고 미래를 설계하나. 사람들의 미래를 뺏는 일이다. 그래서 정치인들이 이 제도를 설계할 때 굉장히 신중해야 한다고 누누이 이야기하는 것이다."
'중대사안'은 사법(司)·안보(安) 이슈를 짚습니다. 검찰청 폐지·국군사관학교 통합 같은 굵직한 변화부터 사소하지만 그냥 지나치기엔 아쉬운 이야기까지, 이정우 기자의 시선이 머무는 곳을 기록하겠습니다.
이정우 한경닷컴 기자 krse905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