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 알람에 눈을 뜬다. 밤새 쌓인 메시지를 확인하고 알고리즘이 추천한 뉴스를 읽는다. 점심 메뉴와 이동 경로를 검색하고, 보고서의 개요와 이메일 문장은 생성형 인공지능(AI)에 부탁한다. 하루 종일 수많은 정보를 처리했지만 정작 스스로 기억하고 판단한 것은 얼마나 될까.
현대인은 ‘지능의 자진 반납’ 상태에 빠졌다. 기억은 데이터센터의 메모리에, 사고는 AI 모델에 의존하면서다. 정재민 KAIST 문술미래전략대학원 교수와 김영주 한국언론진흥재단 수석연구위원이 쓴 <생각을 외주화한 사람들>이 이 흐름을 진단했다. 미디어와 AI, 커뮤니케이션 분야를 연구해 온 저자들은 스마트폰과 SNS, 추천 알고리즘, 생성형 AI가 인간의 일을 대신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사고하는 습관까지 바꾸고 있다고 지적한다. 우리는 기술을 이용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만, 어느 순간 기술이 골라준 정보와 문장, 취향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이 됐다는 것이다.
현대인의 생각을 붙잡는 ‘기술의 덫’이 있다. 고민하기 전에 반응하도록 만드는 즉시성, 선택 자체를 포기하게 하는 정보 과잉, 취향을 비슷하게 만드는 추천 알고리즘, 기존 믿음만 강화하는 확증편향, 진짜와 가짜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딥페이크 등이다. 각각은 이미 익숙한 디지털 사회의 문제다. 책은 이 문제 의식을 하나로 묶어 “사고의 주권을 누가 갖고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구조화한다.
날카로운 대목은 AI가 가져올 핵심 불평등을 소득이나 기술 격차가 아닌 인지 격차로 바라보는 부분이다. AI를 자신의 생각을 확장하는 도구로 쓰는 사람과, 질문부터 결론까지 통째로 맡기는 사람 사이의 차이가 갈수록 벌어진다는 것이다. 후자는 답을 빠르게 얻을 수 있지만 답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축적되는 배움과 시행착오를 잃는다. 역사상 처음으로 부모 세대보다 인지 능력이 낮은 세대가 등장할 것인가. 이 책이 AI에 생각의 주권을 통째로 넘겨준 현대인들의 인지적 위기를 낱낱이 해부한다.
물론 해법은 스마트폰을 버리거나 AI를 거부하는 데 있지 않다. 이 책은 ‘생각 근육’을 기르라고 조언했다. 근육을 쓰지 않으면 약해지듯, 생각하는 능력 역시 모든 과정을 AI에 맡기는 외주화가 일상화될수록 서서히 약화된다는 것이다. 저자들은 “생각하는 능력은 인간의 존엄성”이라며 “내 안의 생각 근육”을 단련해야 한다고 짚었다. 길 찾기를 내비게이션에 맡겨도 목적지는 인간이 정해야 하듯, AI 시대에도 문제를 정의하고 결과를 의심하며 최종 판단을 내리는 일은 인간에게 남겨둬야 한다는 것이다.
생각은 비효율적이다. 오래 걸리고 자주 막히며 때로는 틀린 결론에 도달한다. 하지만 그 불편한 과정이 취향과 관점, 판단력을 만든다. 인간이 스스로 생각하는 일을 먼저 포기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물을 시점이다. 더스퀘어 출판.
안혜원 기자 an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