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이블코인 전쟁 2라운드…디지털 달러 왕좌 흔들리나[디지털 금융 대전환②]

입력 2026-07-23 05:53


글로벌 금융 시장에서 ‘디지털 화폐 패권’을 둘러싼 2라운드 경쟁이 시작했다. 테더와 서클이 선점한 ‘디지털 달러’ 시장에 전통 금융사와 핀테크, 빅테크가 뛰어들고 있다.

달러 스테이블코인이 자국 화폐 가치가 불안한 중남미와 아프리카 등에서 빠르게 확산하자 각국도 대응에 나섰다. 일본과 유럽은 자국 통화 기반 디지털 화폐 경쟁력을 키우고 있으며, 미국은 관련 법제를 정비하며 디지털 금융 시대의 달러패권 강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결제망을 장악하려는 기업과 통화 주권을 지키려는 국가들의 ‘디지털 금융 영토 전쟁’이 막을 올렸다.

◆서클·테더 모델 흔들릴까

달러 스테이블코인 USDC의 발행사 서클인터넷그룹의 주가가 하루 만에 18% 가까이 무너졌다. 지난 6월 30일(현지 시간) 미국 뉴욕증시에서 서클의 주가는 전 거래일 대비 17.55% 밀린 62.63달러로 장을 마감했다. 이는 지난 2월 말 이후 약 4개월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며 5월 12일 기록한 52주 최고가와 비교하면 반토막 이하(-55.3%)로 주저앉은 수치다. 비상장사인 경쟁사 테더(USDT)와 달리 증시에 상장된 서클이 새로 등장한 달러 스테이블코인 ‘오픈USD(OUSD)’의 타격을 온몸으로 받아냈다는 해석이 나왔다.

글로벌 스테이블코인 연합체 오픈스탠다드는 같은 날 달러 연동 스테이블코인 OUSD를 공개하고 올해 안에 출시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OUSD가 구동될 블록체인은 아직 공개되지 않았다.

현재 USDT와 USDC는 각각 테더와 서클이 발행·관리하는 방식으로 운영한다. 이용자가 맡긴 달러 준비금은 미 국채 등 안전자산에 투자하고 여기서 발생하는 이자수익은 발행사의 주요 수익원으로 활용한다.

반면 OUSD는 비자, 마스터카드, 스트라이프, 블랙록 등 금융·결제 기업과 구글, IBM, 코인베이스, 솔라나 등 글로벌 기술 기업들까지 총 140여 개 기업이 참여하는 컨소시엄 형태를 내세웠다. 참여 기업들이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하고 코인을 유통해 준 기업들에게도 준비자산 운용에서 발생하는 수익도 공유하는 구조다.

OUSD는 발행·상환 과정에서 별도 수수료가 없다. 대규모 거래가 필요한 기업 간(B2B) 결제 시장을 겨냥해 기존 스테이블코인의 비용 구조를 개선하겠다는 전략이다.

유수 기업들이 연합해 OUSD를 내놓은 배경에는 스테이블코인 시장의 성장으로 결제와 금융 인프라의 주도권이 발행사에 넘어갈 수 있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 투자정보업체 모닝스타는 스테이블코인 유통량이 현재 3100억달러에서 2035년 1조4500억달러까지 확대할 것으로 내다봤다.

다만 일각에선 이미 시장을 굳건히 선점한 테더와 서클의 벽을 넘기가 생각보다 녹록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도 함께 나온다.



◆서클, 금융기관으로 변신

게다가 서클은 제도권 금융 영역으로 보폭을 넓히고 있다. 서클은 지난해 6월 USDC 발행과 준비금 관리, 기관 대상 디지털자산 보관 서비스를 확대하기 위한 목적으로 신탁은행 인가를 신청했다. 올해 7월 10일(현지 시간) 서클의 은행 자회사인 서클내셔널트러스트는 미국 통화감독청(OCC)으로부터 연방 신탁은행 설립 인가를 받았다.

이번 인가로 서클은 USDC의 안정성을 뒷받침하는 약 730억달러 규모 준비자산을 다른 기관에 맡기지 않고 직접 관리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다만 일반 은행처럼 예금을 받거나 대출을 제공하는 업무는 수행하지 않는다.

미 경제방송 CNBC는 “(서클이) 민간 가상자산 기업에서 금융기관으로 위상이 변화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날 서클 주가는 장중 한때 15.62% 상승했으며 종가는 전 거래일 대비 4.97%(3.13달러) 오른 66.14달러에 마감했다.



◆달러 패권 지키려는 미국

국가 차원의 움직임도 빨라지고 있다. 미국은 스테이블코인을 달러패권을 확장하는 새로운 금융 인프라로 보고 제도 정비에 속도를 내고 있다. 지난해 ‘지니어스법’을 통해 스테이블코인 발행과 준비금 관리 기준을 마련한데 이어 현재는 디지털자산 전반의 규율 체계를 담은 ‘클래리티법’ 처리를 추진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클래리티법 상원 통과를 압박하며 가상자산 산업에 우호적인 규제 환경 조성에 힘을 싣고 있다.

미국이 제도화를 서두르는 배경에는 디지털 금융 시대에도 달러의 영향력을 유지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 글로벌 결제 및 송금 망에서 어떤 통화 기반의 스테이블코인이 표준으로 자리 잡느냐에 따라 미래 기축 통화의 향방이 갈릴 수 있다.

민간 스테이블코인 발행사들이 준비 자산의 대부분을 단기 미 국채로 채우도록 법제화해, 매년 2조 달러 안팎으로 불어나는 미국의 천문학적인 재정적자를 해소하겠다는 전략적 포석도 있다. 과거 미 국채의 주요 매입처였던 해외 중앙은행들의 수요가 줄어들자 스테이블코인 발행사들을 새로운 국채 소화처로 낙점해 재정적자를 민간 가상자산 자본으로 떠받치겠다는 고도의 경제학적 계산이다.



◆각국은 ‘디지털 통화 주권’ 경쟁

최근 인플레이션이 극심한 아프리카와 중남미에선 달러 스테이블코인을 자국 화폐 대신 안전자산 및 결제 수단으로 채택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현재 글로벌 스테이블코인의 약 90%는 달러 기반이다.

디지털 금융 영역에서 달러의 영향력이 확대하자 일본과 유럽 등 주요국도 대응에 나섰다.

일본은 엔화 기반 스테이블코인 생태계 구축에 속도를 내고 있다. 종합금융그룹 SBI는 스테이블코인을 활용한 금융상품 출시를 추진하며 활용 영역을 넓히고 있다. 고객이 보유한 디지털자산을 기관이나 다른 이용자에게 대여·운용해 수익을 창출하고, 이를 고객에게 일부 환원하는 구조다. 기존 예·적금 상품과 유사한 형태다.

결제 시장에서도 활용 가능성을 시험하고 있다. 일본 대형 편의점 체인 로손은 엔화 스테이블코인을 매장 결제 수단으로 활용하기 위한 실증 사업을 진행 중이다. 이용자가 스마트폰 전자지갑의 결제 화면을 제시하면 POS 단말기를 통해 상품 대금을 처리하는 방식이다. 스테이블코인 결제 시스템이 기존 매장 관리 시스템과 연동할 경우 결제뿐 아니라 구매 데이터 분석 등 유통 서비스 전반으로 활용 범위를 확대할 수 있다.

유럽에서는 달러 스테이블코인 의존도를 낮추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시장을 주도해온 USDT가 미카(MiCA) 규제 영향으로 유럽 내에서 퇴출되거나 제약을 받는 가운데 규제 요건을 충족한 서클의 EURC와 프랑스 대형 은행 소시에테제네랄의 EURCV 등 유로화 연동 스테이블코인이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유로 스테이블코인 시장 규모는 최근 1년간 두 배 이상 확대했다.

한국은 아직 대응 속도가 상대적으로 더디다는 평가를 받는다. 가상자산 2단계 법제화 논의가 아직까지 이어지는 가운데 스테이블코인 발행 주체와 관리 체계를 둘러싼 논쟁도 남아 있다. 다만 정부는 올해 하반기 비트코인 현물 상장지수펀드(ETF) 도입을 위한 법 개정을 추진할 계획이다.



김태림 기자 t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