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세를 구하러 갔다가 면접을 봤습니다."(강남에서 월셋집을 구한 20대 세입자 장씨)
경기도에서 영어학원을 운영하는 장씨는 강남권으로 이사를 준비하며 월세를 알아보다 예상치 못한 일을 겪었다고 토로했습니다. 중개사를 통해 집주인이 나이와 직업, 하는 일, 이사 이유 등을 자세히 물어봤다는 것입니다. 장씨는 "내년에 결혼을 앞두고 있고 개포동 아파트를 매수해 입주하기 전까지 살 집을 찾고 있다. 깨끗하게 사용하겠다"고 설명한 뒤에야 계약이 진행됐다고 전했습니다.
19일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장씨와 같은 사례는 온라인 부동산 커뮤니티 등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누리꾼들은 "요즘은 임차인도 면접을 본다", "강남에서는 흔한 일", "집주인 입장에서는 문제없는 세입자를 받고 싶은 게 당연하다"는 반응입니다. 물론 "세입자를 지나치게 선별하는 것 아니냐"는 날 선 반응도 있습니다.
부동산 시장에서는 최근 인기 지역을 중심으로 집주인이 세입자를 선별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는 설명이 나옵니다. 전세보다 월세를 찾는 수요는 늘고 있지만 공급은 충분하지 않은 상황이 이어지면서 임대차 시장의 주도권이 집주인으로 넘어가고 있는 셈입니다.
논현동에 있는 A 공인 중개 관계자는 "최근엔 직업이나 소득, 몇 명이 거주하는지 등을 확인해달라고 요청하는 집주인이 꽤 있다"며 "집을 험하게 쓰는 세입자가 많다 보니 집주인도 세입자를 가려 받으려고 하는 것"이라고 귀띔했습니다.
이런 변화는 최근 임대차 시장 흐름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전세는 점점 사라지고 월세가 시장에 자리 잡아가는 상황입니다.
우선 임대차 물건이 전반적으로 줄었습니다. 부동산 정보제공 앱(응용프로그램) 아파트실거래가에 따르면 지난 16일 기준 서울 전·월세 물건은 3만7739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5.8% 쪼그라들었습니다. 중랑구가 같은 기간 73.7% 줄어 가장 큰 폭의 감소율을 나타냈습니다. 구로구, 동대문구, 금천구, 노원구, 도봉구 등도 임대차 물건이 60% 넘게 증발했습니다.
전셋값도 상승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올해 서울 아파트 전셋값은 누적 기준 5.72% 올랐습니다. 지난해 같은 기간 1.1%보다 상승세가 가팔라졌습니다. 전셋값 상승은 시장 문턱을 높여 수요자들을 월세 시장으로 자연스럽게 밀어냅니다.
정부도 전세를 권장하지 않는 분위기입니다. 전세보증금 반환보증 가입을 지원하고 보증료를 보조하는 사업을 확대했고 안심전세포털과 전세계약 체크리스트 등을 통해 계약 전 위험을 확인하도록 유도하고 있습니다. 전세를 활성화하기보다 위험 관리에 방점이 찍힌 셈입니다.
게다가 국토교통부는 올해 하반기 주택도시보증공사(HUG) 내 '전월세안정화기구'를 신설해 안심신탁 제도를 도입할 계획입니다. 임대인이 전세 대신 월세를 놓을 경우 매달 임대수익을 얻을 수 있도록 하는 방안 등을 검토 중입니다. 시장에서는 전세보증금 반환 부담을 줄이는 취지라는 평가와 함께 집주인의 월세 선호를 더욱 자극해 월세화를 앞당길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습니다.
이미 월세화는 가파르게 진행 중입니다. 대법원 등기정보광장에 확정일자 기준 전·월세 현황에 따르면 전국 월세 비중은 2023년 54.9%에서 2024년 57.7%, 2025년 63.2%로 8.3%포인트 높아졌습니다. 서울도 같은 기간 56.5%에서 64.7%로 8.2%포인트 상승했습니다. 특히 상반기 서울 현황을 살펴보면 월세가 31만6612건, 전세가 13만6690건으로 월세 비중이 69.8%에 달합니다. 전·월세 계약 10건 중 7건은 월세란 얘기입니다.
전문가는 서울 임대차 시장에서 벌어지는 전세의 월세화에 대해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 주택 임대차 시장의 구조적 변화로 진단했습니다.
김효선 KB국민은행 부동산 수석위원은 "서울 아파트 전세 비중은 낮아졌고 월세 비중은 높아졌다"며 "전세사기 사태 이후 전세 거래가 위축된 데다 토지거래허가구역 확대에 따른 실거주 의무 강화로 갭투자가 어려워지면서 신규 전세 물량 공급도 줄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이번 월세화는 경기 순환에 따른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제도와 시장 구조, 전세에 대한 신뢰가 함께 바뀌면서 나타난 구조적 변화"라고 평가했습니다.
전세 공급 감소가 월세 확대로 이어지고 있다는 분석도 내놨습니다. 김 위원은 "대출 규제와 갭투자 제한으로 전세 공급이 줄어든 반면 임차 수요는 그대로 유지되면서 월세로 이동하는 수요가 늘고 있다"며 "전셋값이 역대 최고 수준으로 오르고 보증금 마련 부담이 커지자 임차인은 월세를 선택하고 임대인도 보증금 반환 부담을 줄이기 위해 월세를 선호하는 구조가 형성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향후 전망과 관련해서는 월세화가 당분간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습니다. 그는 "올해와 내년 서울 입주 물량 감소가 예상되고 인허가 실적도 크게 줄어 공급 부족이 단기간에 해소되기 어렵다"며 "이미 서울 아파트 월세 비중은 3개월 연속 50%를 넘었고 비아파트는 80%에 육박한다"고 했습니다. 다만 "월세화는 서울 전역에서 동일한 속도로 진행되기보다 입지와 자산가치에 따라 지역별 편차가 더욱 커질 가능성이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이송렬 한경닷컴 기자 yisr020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