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한강이 최근 우리 사회를 뒤흔들고 있는 혐오 문제에 대해 사회적 성찰을 촉구했다. 한국 사회 곳곳에서 번지고 있는 혐오 현상을 마땅히 해소해야 할 중대한 과제로 지목하면서도, 이를 심각한 부조리로 인지하는 대중적 합의가 형성되었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인 평가를 내놓았다.
16일 프랑스 아비뇽 페스티벌에 참석 중인 한강은 "혐오 문제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지가 우리에게 중요한 숙제"라며 운을 뗐다. 이어 "어떻게 하면 이 혐오의 시대에서 방향을 틀어 다른 방향으로 나아갈지를 다 함께 고민해야 할 시점"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작가는 사회가 혐오를 정상적인 현상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문제시하는 현 상태에서 해결의 열쇠를 찾았다. 그는 "혐오를 문제로 인식한다는 것 자체는 굉장히 좋은 일"이라며 "혐오가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라 문제라는 데 우리가 일치된 생각을 갖고 있다면 거기에 희망이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고 고심을 털어놨다.
특히 최근 학원 스포츠계에서 발생한 배재고 야구부의 역사 왜곡 및 혐오 구호 사건을 언급하며 우리 기성세대의 책임론을 짚었다. 앞서 배재고 야구부 일부 선수들은 지난달 경기 도중 상대 팀을 향해 5·18 민주화운동을 조롱하고 희화화하는 발언을 던져 거센 지탄을 받은 바 있다.
한강은 "교육 현장에 있는 교사 친구들도 이 문제를 두고 많은 고민을 하고 있다"며 "'뭘 할 수 있을까', '기성세대로서 어떻게 하다가 우리는 이렇게 실패를 하게 됐나' 이런 고민도 한다"고 안타까운 심경을 내비쳤다.
아울러 단발성 논란으로 끝내지 않고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을 밝혔다. 그는 "이런 중요한 사건이 나타났을 때 충격과 놀라움 속에서 그냥 지나가서는 안 된다"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만약 이 사건이 우리에게 어떤 신호를 주는 것이라면, 수면 위로 드러난 문제를 잘 포착해 다 같이 머리를 맞대고 어떻게 나아갈지 고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대중의 자극적인 소비 방식에 대해서도 "충격이 또 다른 충격을 덮고, 그다음 충격이 이전 충격을 덮어서 이렇게 쓸려가 버리는 건 좋지 않은 것 같다"며 깊이 있는 성찰을 주문했다.
이번 간담회는 한강이 2024년 노벨문학상 수상 영예를 안은 이후 처음으로 국내 언론과 마주해 공식 답변을 나눈 자리다. 세간의 눈길을 피했던 이유에 대해 그는 "솔직히 부담스러웠다"며 "그래서 좀 칩거했는데, 지금은 관심도 많이 줄어든 것 같아 마음이 조금 가벼워졌다"고 솔직한 속내를 고백했다.
이번 아비뇽 페스티벌은 한불 수교 140주년을 기념해 한국어를 사상 처음으로 공식 초청언어로 지정하고 한강을 내빈으로 맞이했다. 특히 제주 4·3사건의 상흔을 그린 한강의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를 무대로 옮긴 낭독 공연 '새'가 축제의 핵심 무대인 교황청 명예극장에 올라 주목받았다.
프랑스의 대배우 이자벨 위페르와 한국의 중견 배우 이혜영이 호흡을 맞춘 이 공연의 후반부에는 한강이 예고 없이 직접 무대에 올라 제주 4·3과 학살의 참상을 기록한 원작 소설의 구절을 낭독해 객석에 여운을 남겼다.
김예랑 한경닷컴 기자 yesr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