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꾼 이자람 "꿈도 못 꾼 아비뇽 무대…추임새는 얼씨구 대신 쥬뗌므"

입력 2026-07-16 09:07
"아비뇽에 오자마자 신문 세 장을 챙겨놨어요. 르 몽드(Le Monde) 1면에 제가 실리다니 가문의 영광이죠. 기분이 너무 좋아요."



15일(현지시간) 프랑스 아비뇽 오페라 극장에서 만난 소리꾼 이자람이 생기 가득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그의 말대로 프랑스 일간지 르 몽드는 지난 2일 신문 1면 전면에 이자람의 최신작 '눈, 눈, 눈' 무대 사진을 실었다. 세계적인 공연예술 축제 '아비뇽페스티벌'의 공식 초청을 받은 이 작품은 오는 17일 프랑스 관객을 처음 만난다. 개막 전이지만 한국에서 건너온 '판소리'라는 낯선 예술 장르에 현지 언론과 평단의 뜨거운 관심이 쏟아지고 있다.

'눈, 눈, 눈'은 톨스토이의 단편 소설 <주인과 하인>을 판소리로 옮긴 작품이다. '창작 판소리' 장르를 개척해온 이자람이 지난해 한국에서 초연해 높은 작품성을 입증했다. 돈밖에 모르는 주인 '바실리'와 그를 착실히 따르는 하인 니키타가 러시아 설원에서 펼치는 여정은 아비뇽의 무더위에 지친 전 세계 관객들의 마음을 시원하게 달래줄 예정이다. 오는 17일부터 22일까지 네 차례 이어지는 이번 공연은 한국어로 진행되며, 프랑스어와 영어 자막이 제공된다.



이번 프랑스 초연에서 이자람이 가장 공을 들인 지점은 '얼씨구'와 같은 추임새를 설명하는 공연 초반부다. 한국 연극의 뿌리인 판소리를 해외 관객들에게 직관적으로 이해시키면서, 잠들어 있는 관객의 내적 흥을 끌어올려야 해서다.

"추임새를 설명하는 초반부는 한국 공연에서도 중요해요. 관객과 처음 악수를 나누는 순간이기 때문이죠. 이번 공연에선 쥬뗌므(Je t'aime, 사랑해), 브라보(Bravo, 훌륭해) 등 세계 각국의 관객이 모국어로 추임새를 얹을 수 있어요. 이 부분은 제가 직접 프랑스어와 영어로 번갈아 안내하려고요. 이날을 위해 프랑스어를 배운 건 아니었는데, 마치 운명 같네요." (웃음)



하지만 한국어의 말맛을 이해하지 못하는 해외 관객이 판소리의 매력에 쉽게 빠져들 수 있을까. 이자람의 대답엔 자신이 넘쳤다.

"한국에서 판소리 공연을 해도 많은 관객이 낯설어해요. 저는 판소리가 낯선 사람을 만나는 게 익숙한 사람이에요. '나만 믿어' 라는 태도로 평생을 살아와서, 어디서 공연해도 다 괜찮아요. 오랜 시간 갈고 닦은 저 자신만 믿으면 돼요."

이자람은 프랑스와 인연이 깊다. 2010년대 창작 판소리 '사천가' '억척가' 등으로 해외 순회공연을 하며 프랑스를 일곱 차례 방문했다. 이 무렵 아비뇽에선 '사천가'와 '이방인의 노래'를 공연했다. 하지만 당시 그의 작품은 축제 측 공식 초청작 'In'이 아닌 비공식 작품 'Off'에 해당했다. 이번엔 창립 80주년을 맞은 페스티벌 측에서 한국어를 초청언어로 선정하며 한국 공연 9편 안에 포함됐다.

"동양인은 절대로 공식 무대에 오르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쟁쟁한 유럽 예술가들이 공연하는 곳이잖아요. 욕심조차 없었어요. 이번에 공연할 수 있는 건 한국의 몸집이 그만큼 커졌기 때문인 것 같아요. 저한테 행운도 따랐고요."

'눈, 눈, 눈'은 당초 아비뇽페스티벌의 가장 상징적 공간인 교황청 명예의 뜰에서 공연하는 것으로 검토됐다. 16~17일 프랑스 배우 이자벨 위페르와 한국 배우 이혜영이 한강 작가의 <작별하지 않는다>를 낭독하는 곳이다. 그런데 '더위'라는 복병이 찾아왔다.

"큰 무대라 욕심이 났어요. 그런데 사실 그곳은 아무리 밤에 공연해도 야외라 무더워요. 2시간 동안 혼자 공연을 이끌면 탈진할 정도거든요. 그런데 덥기까지 하면 안 되잖아요. 살고 싶은 생존욕이 명예욕을 이겨버렸어요." (웃음)

이자람이 대신 선택한 공연장은 "케이크 모양처럼 예쁘고, 에너지가 동그랗게 모이는 곳"이다. 그는 다가온 공연에 "떨린다"면서도 이내 유쾌한 자신감을 내비쳤다. "아비뇽에서 이자람의 판소리를 보시다니. 운이 참 좋으시네요!"

아비뇽=허세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