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산과 청산 외에는 길이 없을 것 같던 홈플러스가 막판 회생의 기회를 잡았다. 긴급 운영자금 2000억원을 최대 채권자인 메리츠금융이 대출해 주기로 한 덕분이다. 메리츠금융은 어제 이사회를 열어 이 같은 지원 방안을 승인했다. 홈플러스 대주주인 MBK파트너스와 김병주 회장이 대출금을 전액 보증하는 조건이다. 자금을 확보한 홈플러스는 오는 20일 ‘회생절차 폐지’에 대한 즉시항고를 진행할 예정이다. 항고가 받아들여지면 회생절차가 재개된다.
1만여 명의 직원과 4600여 곳의 협력사·소상공인이 다시 한번 기회를 갖게 된 것은 다행이지만, 이번에 지원되는 2000억원은 홈플러스가 당분간 버틸 수 있는 최소한의 ‘생명수’일 뿐이다. 회생까지는 넘어야 할 난관이 많다는 뜻이다. 당장 시장에서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홈플러스 경영이 정상화되기까지는 갈 길이 멀고 험하다. 전국 67개 매장이 영업을 재개하려면 상품 공급부터 제대로 이뤄져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선 협력사들의 신뢰 회복이 필수다. 고객의 발길을 되돌릴 수 있을지 미지수다.
민주노총 산하 강성 노조도 문제다. 인수 기업을 찾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이다. 홈플러스 인수 뒤 구조조정이 불가피한데 노조와의 마찰이 걱정되니 다들 꺼리는 것이다. 회사가 없으면 노조도 없다는 걸 이번에 절감했을 테니 확 달라진 모습을 보여야 한다.
그제 청와대 앞에서 열린 홈플러스 노동자·상인 총궐기대회에서 2000억원 지원 사실을 처음 공개한 건 민병덕 더불어민주당 을지로위원장이다. 이것만 봐도 자금 지원을 놓고 줄곧 평행선을 달리던 MBK와 메리츠의 극적인 합의 뒤에는 정부와 여당의 강한 입김이 있었음을 미뤄 짐작할 수 있다. 대량 실직 등 파산의 여파가 만만치 않을 테니 손 놓고 있을 수는 없었겠지만, 당정의 과도한 개입은 시장 왜곡을 초래할 수 있다. 이후 과정에서만이라도 정부는 선수가 아니라 심판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