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으로 레이스를 짜다...부첼라티가 완성한 베니스의 예술 [민은미의 파인주얼리]

입력 2026-07-20 17:09
베니스를 떠올리면 곤돌라와 가면 축제가 가장 먼저 머릿속을 스친다. 그러나 베니스의 진정한 아름다움은 운하 위를 비추는 빛과 물결, 그리고 그 둘이 만들어내는 투명한 공기에 있다. 아드리아해의 잔물결이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순간, 도시 전체가 한 폭의 레이스처럼 펼쳐진다. 베니스 본섬에서 조금 떨어진 작은 섬, 부라노의 레이스 장인들은 수 세기 동안 이런 베니스의 아름다움을 가느다란 실과 바늘로 한 땀 한 땀 새겨왔다. 부라노의 니들 레이스는 바람이 스며들 만큼 가볍고, 빛이 비칠 만큼 섬세한 것으로 유명하다.

베니스 산 부라노의 니들 레이스는 오래전부터 유럽 왕실과 귀족 사회에서 아름다운 공예품으로 찬사를 받아왔다. 르네상스 시대 거장들의 초상화에는 이런 레이스가 귀부인과 귀족들의 의상을 장식한 모습이 자주 등장한다. 파올로 베로네세의 <아름다운 나니>에서 귀부인의 목선을 감싸는 순백의 레이스, 브론치노가 그린 메디치 가문의 <엘레오노라 디 톨레도의 초상> 속 정교한 기하학적 레이스가 대표적이다. 오늘날, 그 공기 같은 레이스를 실 대신 금으로 짜내는 메종이 있다. 이탈리아 하이 주얼리 메종 ‘부첼라티(Buccellati)’다. 레이스를 닮은 부첼라티의 금세공 미학
부첼라티는 1919년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창립했다. 창립자 마리오 부첼라티(Mario Buccellati)는 르네상스 시대의 금세공과 베니스 부라노의 니들 레이스에서 영감받아, 실이 만들어내는 가벼움과 투명함을 금속 위에 구현하는 독창적인 금세공술을 발전시켰다. 화려한 보석을 앞세우기보다 금속 표면의 질감과 조각을 디자인의 중심에 둔 것이 부첼라티만의 차별점이다.

섬세한 인그레이빙과 오픈워크(금속을 뚫어 문양을 만듦) 기법을 통해 금속을 마치 직물이나 레이스처럼 표현하며, 금속 자체를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 완성해 왔다. 1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이어져 온 이러한 미학은 2026 F/W 파리 오트 쿠튀르 위크 기간에 맞춰 지난 7월 7일 공개한 하이 주얼리 컬렉션 '세레니시마(Serenissima)'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베니스를 담은 '세레니시마''세레니시마'는 과거 베니스 공화국의 이름이던 '가장 평온한 공화국(La Serenissima)'에서 따왔다.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이번 컬렉션은 번영과 예술, 장인정신의 중심지였던 운하를 따라 흐르는 물결, 르네상스 건축의 장식미, 그리고 부라노 레이스의 섬세함을 하나의 작품 안에 담아내면서 베니스의 예술을 현대 하이 주얼리로 재해석했다. 특히 목걸이와 브로치, 이어링은 금속과 보석의 경계를 흐리듯 빛과 그림자가 교차하는 입체적인 구성을 보여주며, 다이아몬드와 컬러 젬스톤을 조화롭게 배치해 베니스의 풍요로운 색채를 표현했다. 한편으로, 레이스를 연상시키는 오픈워크 구조와 유려한 곡선을 통해 가볍고 우아한 실루엣을 완성했다.


그래서 '세레니시마'의 주얼리는 가까이서 들여다볼수록 금속이 차가운 소재가 아니라 마치 한 올 한 올 엮어 만든 직물처럼 부드럽고 섬세하게 느껴질 정도니 이번 컬렉션은 단순히 새로운 디자인을 선보이는 것만은 아니다. 수백 년 동안 이어져 온 베니스의 문화유산과 한 세기 넘게 지켜온 부첼라티의 금세공 전통이 만나 어떻게 오늘의 하이 주얼리로 이어질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금속 위에 피어난 베니스, 세 점의 걸작이번 컬렉션의 중심에는 ‘세레니시마 네크리스’가 있다. 옐로 골드로 구현한 벌집(Honeycomb) 구조를 중심으로, 화이트 골드의 화환(Garland) 모티프와 브릴리언트 컷 다이아몬드를 촘촘히 배치했다. 베니스의 건축과 부라노 레이스의 정교함을 하나의 작품에 담아냈다. 삼각형과 마름모 형태의 장식은 규칙적인 리듬을 만들고, 측면에는 부첼라티를 상징하는 리가토(Rigato, 금속 표면에 가는 선을 새겨 질감을 만드는 기법) 인그레이빙을 더해 실크결같이 섬세한 질감을 표현했다. 여기에 작은 골드 비즈 장식이 은은한 입체감을 더하며, 759개의 브릴리언트 컷 다이아몬드(총 19.19캐럿)가 화려하면서도 절제된 빛을 완성했다.


‘세레니시마 브레이슬릿’은 볼록하게 볼륨을 살린 봄베(Bombe) 형태를 기본으로 한다. 유연한 구조로 인해 손목을 자연스럽게 감싸며 부드러운 착용감을 선사한다. 중앙에는 벌집 모티프를, 가장자리에는 화환 장식을 배치해 네크리스와 디자인을 통일시켰다. 마름모 형태의 다이아몬드 장식과 작은 골드 비즈, 리가토 인그레이빙이 조화를 이룬다. 338개의 브릴리언트 컷 다이아몬드(총 6.62캐럿)는 움직일 때마다 빛을 만들어내며, 부첼라티 특유의 럭셔리함을 보여준다.


‘세레니시마 이어링’은 컬렉션의 우아함을 가장 가볍게 구현한 작품이다. 벌집 모티프를 중심으로 화이트 골드의 화환 장식과 다이아몬드로 공중에 레이스가 떠 있는 듯한 인상을 준다. 특히 잎사귀를 형상화한 화이트 골드 세팅은 펜던트 부분을 분리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하나의 작품으로 두 가지 스타일을 연출할 수 있다. 108개의 브릴리언트 컷 다이아몬드(총 4.38캐럿)가 섬세하게 세팅됐다.

부라노의 레이스, 무라노의 유리 공예, 르네상스 건축과 회화가 수 세기 동안 베니스의 미학을 만들어 왔다. 부첼라티는 금과 젬스톤으로 그 유산을 이어간다. 화려함을 과시하기보다 손끝에서 완성되는 섬세한 디테일, 절제된 아름다움을 통해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가치를 만들어냈다.


베니스의 장인들이 실과 바늘로 공기 같은 레이스를 엮어냈다면, 부첼라티는 금과 조각칼로 그 아름다움을 금속 위에 새겨왔다. 특히 '세레니시마'는 하이 주얼리가 한 도시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장인정신까지 함께 이어받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 보석의 화려함에 앞서 금속 표면에 축적된 시간과 장인의 손길을 들여다보게 만든다는 점에서, 부첼라티만의 금세공 미학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