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게임의 룰 없이 링 오르는 증권사

입력 2026-07-15 17:38
수정 2026-07-16 00:10
“증권업 호황이 그리 오래가지 않을 수도 있어요.” 최근 만난 한 중소형 증권사 최고경영자(CEO)의 말이다. 주식시장이 조만간 조정받을 수 있다는 얘기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그는 “블록체인 기술을 기반으로 한 탈중앙화된 금융이 금융투자산업 판도를 바꿔놓을 날이 머지않은 것 같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최근 주요 증권사는 경쟁적으로 가상자산거래소에 대한 투자를 단행하고 있다. 미래에셋은 가상자산거래소 코빗 지분 92.06%를 인수했다. 한국투자증권은 코인원 지분 20%를 인수해 3대 주주로 올라섰다. 삼성증권과 한화투자증권은 국내 최대 가상자산거래소 업비트를 운영하는 두나무 지분을 각각 4.0%, 9.84% 확보했다. 가상자산거래소에 잇따라 투자증권사들의 이 같은 움직임은 단순히 가상자산 수탁 사업에 진출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부동산, 미술품, 금 등 현실 세계에 존재하는 유·무형 자산을 블록체인상의 디지털 토큰으로 변환하는 시장에서 주도권을 선점하기 위한 포석이다.

그동안 디지털 자산 시장은 제도권 금융의 보호와 가이드라인 없이 변동성을 좇는 개인의 투기적 수요가 주를 이뤘다. 이제는 시대가 완전히 달라졌다. 미국 월가의 주류 금융사가 디지털 자산을 포용하며 판도를 바꾸고 있다.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은 단기국채·머니마켓펀드(MMF)를 토큰화한 ‘비들’을 출시해 수십억달러의 자금을 끌어모았다. 골드만삭스와 씨티그룹 등은 사모펀드(PEF) 지분이나 대출자산을 토큰화하는 프로젝트를 연이어 발표하고 있다.

미국은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지니어스 법안, 클래리티 법안, 중앙은행 디지털화폐 발행 금지법안 등 일명 ‘크립토 3법’ 제정 작업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이들 법안은 디지털 자산 시장의 불확실성을 해소하고, 시장의 투명성을 높이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전문가들은 법안이 미국 내 디지털 자산 비즈니스의 합법적 울타리를 완벽하게 구축할 것으로 평가한다. 디지털자산 기본법 입법 서둘러야한국의 사정은 답답하기만 하다. 투자자 보호 중심의 ‘가상자산이용자 보호법’을 제정하고, 토큰증권(STO) 제도화를 위한 전자증권법·자본시장법 개정안이 내년 1월 시행을 앞뒀지만 ‘헌법’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되는 ‘디지털자산 기본법’은 여전히 교착 상태다.

재정경제부는 최근 디지털자산 기본법의 연내 입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지만 가상자산거래소 지배구조 규제, 원화 스테이블코인 발행 주체 등 핵심 쟁점을 두고 금융당국과 국회·업계가 여전히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전통 금융 수준의 강력한 규제 틀을 씌우려는 금융당국과 과도한 규제로 글로벌 경쟁에서 낙오될 것을 우려하는 업계의 시각차가 좁혀지지 않고 있다.

이 같은 입법 지연 탓에 국내 증권사들은 게임의 룰도 모른 채 링 위에 올라야 하는 불확실한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 디지털 자산이 중요한 이유는 단순히 새로운 투자 상품이어서가 아니다. 전 세계 자본이 움직이는 인프라 자체가 디지털 기반으로 바뀌는 거대한 패러다임 전환의 중심에 디지털 자산이 있다. 제도적 불확실성이 우리 금융산업의 발전을 가로막는 병목이 돼선 안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