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소연의 시적인 순간] 주저하지 않고 신세 지기

입력 2026-07-15 17:33
수정 2026-07-16 00:08
장마가 시작됐다. 장마는 빗소리로 세상을 두드린다. 빗소리는 큰물을 지게 해 사람을 집에 가두기도 하지만, 여름의 내부를 향해 움직이게 만들기도 한다. 어느 시인이 “공작산 수타사로/ 물미나리나 보러 갈까/ 패랭이꽃 보러 갈까”라고 읊조린 것도 이런 까닭일 것이다. 나 역시 빗소리를 곁에 두고, 다큐멘터리 영화 ‘정뱅이’의 장면들을 떠올린다. 내게 패랭이꽃처럼 따뜻한 얼굴은 정뱅이 마을 주민들의 얼굴이다.

비가 두려워진 사람들의 얼굴. 그들에게 비는 다시는 되풀이되지 않아야 할 재난이다. 그 기억을 조심스레 복기하기 위해 처음 제시된 장면은 텃밭에 앉아 마늘을 뽑는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모습이다. 모든 것이 휩쓸고 간 재난 영화의 시작을 이렇게 따스하고 정겨운 일상의 장면으로 열어낸다는 사실이 주는 안도감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영화는 재난 그 자체를 정면으로 붙들기보다 재난 이후를 이겨내는 공동체의 움직임에 더 깊이 시선을 둔다. 무너진 자리에서 다시 서로를 일으켜 세우는 사람들, 절망을 붙들기보다 살아내는 쪽으로 몸을 기울이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그래서 영화는 아프면서도 이상하리만치 따뜻하다. 무엇보다 89분이란 짧지 않은 러닝타임을 인터뷰만으로 끌고 갈 수 있다는 게 놀라웠다. 영화가 끝난 후 사회를 보게 된 관객과의 대화 자리에서 오정훈 감독에게 물었다.

“관객의 긴장감을 유지하려면 여러 영화적 선택이 필요했을 텐데, 그럼에도 인터뷰를 중심으로 영화를 끌고 가기로 결심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답변 대신 질문이 돌아왔다.

“이소연 시인도 두 번째 관람이라고 했으니 아마 보셨을 것 같은데요. 인터뷰 속 마을 주민들의 표정이 처음과 다르게 보이지 않았나요?”

나는 그들의 얼굴을 다시 떠올렸다. 괜찮다고 말하는 사람의 눈에 남아 있던 것.

“울 것 같은 눈이 보였어요.”

정확히는 울음을 참고 있는 눈이었다. 영화 속 정뱅이 마을 주민들의 얼굴에는 분노를 과장하는 몸짓도, 피해를 호소하는 목소리도 없다. 대신 오래도록 삼켜온 울음이 눈동자에 남아 있었다. 오정훈 감독은 그 눈을 오래 바라보며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빠져들 수밖에 없다고 했다.

공동체 상영회를 열기로 결심한 것은 영화 시사회 자리에서였다. 영화가 끝나고 관객을 향해 인사하는 마을 주민 한 분 한 분이 영웅처럼 보였다. 삶을 포기하지 않고 끝내 자기 자리를 지켜낸 사람들. 그 얼굴을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내 몸에 희망을 쟁이는 듯했다. 그때 단체 카톡방에 기후생태활동가이자 시인인 윤은성의 메시지가 떴다. “공동체 상영회 가시죠.” 윤은성 시인은 타인의 고통 앞에서 마음이 먼저 무너지는 사람이다. 너무 먼 곳에 있는 사람들의 고통이라 해도 모르는 척하지 못하고, 타인의 삶을 걱정하는 일을 당연한 마음의 방향으로 삼는 사람. 나는 지금껏 그런 사람들에게 빚을 지고 살아왔다. 나는 그가 내민 손을 기꺼이 잡고 싶었다. 뒤풀이 자리에서 감독이 한 말이 마음에 오래 남았다. “정뱅이 마을 주민들은 신기할 정도로 신세 지기를 주저하지 않습니다.” 내가 어려움에 부닥쳤을 때도 누군가는 기꺼이 손을 내밀 것이라는 믿음. 그래서 자신도 다른 사람의 손을 붙잡을 수 있다는 믿음. 신세 지기를 꺼리는 이들에게는 없는 믿음이 그들에게는 있었다. 도움은 한쪽으로만 흘러가지 않는다. 기꺼이 주고받는 관계 속에서 우리를 다시 사람답게 만든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누군가에게 신세를 지며 살아간다. 정뱅이 사람들에게, 그들의 이야기를 세상에 전한 감독에게 그리고 그 고통을 자기 일처럼 받아들이는 사람들에게. 장맛비가 내리는 날이면 빚진 마음을 붙잡고 어제보다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