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당 팀장이 증거 묵살 지시…장윤기 수사 '의도적 부실' 확인

입력 2026-07-15 17:06

'여고생 살해범' 장윤기(23) 사건 수사가 담당 팀장의 묵살 지시로 핵심 증거를 방치하거나 주요 정황 증거를 뭉개는 등 부실하게 진행된 것으로 드러났다. 묵살 지시를 내린 경위는 추가 수사를 통해 향후 규명해야 할 문제다. 다만 경찰 스스로 수사관으로서 신뢰를 저버렸다는 비판은 피하기 어려울 예정이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장윤기 사건 진상규명' 특별수사단은 15일 광주경찰청에서 중간 수사 결과 브리핑을 열고 이번 사건을 '의도적인' 부실 수사가 이뤄진 사건으로 평가를 내렸다.

수사팀은 사건 발생부터 검거·구속·검찰 송치 단계까지 사건 전반에 걸쳐 장윤기의 범행 동기를 규명할 증거나 단서 대부분을 제대로 확보하지 않았다. 주요 정황 증거도 세심하게 살펴보지 않아 특별수사단은 해당 수사를 부실 수사로 판단했다.

특별수사단은 피해자·유족에게 사과하기도 했다. 광산경찰서 담당 수사팀장의 묵살 지시 탓에 최소 형량이 무기징역인 강간 목적 살인 혐의 대신 단순 살인 혐의를 장윤기에게 적용하는 결과를 초래했다는 이유에서다.

수사 비위 의혹 제기로 사건 발생 2개월 만에 뒤늦은 재조사에 나선 특별수사단은 장윤기의 스포츠유틸리티차(SUV) 미확보를 부실 수사의 근거 중 하나로 꼽았다. 장윤기가 범행 전후 타고 다닌 이 SUV에서는 2개의 혈흔이 발견됐다. 하지만 차량을 압수하지 않은 채 현직 경찰관인 장윤기 아버지에게 되돌려주면서 성범죄 목적 여부를 밝힐 기회를 놓쳤다고 특별수사단은 설명했다.

특히 혈흔이 발견된 곳은 운전석이 아니라 조수석 뒤쪽 문이었다. 이 점을 근거로 장윤기의 살인 범행에 납치 목적이 있었는지도 조사해야 했지만, 결국 수사하지 못했다.

SUV 미확보뿐만 아니라, 범행 당시 폐쇄회로(CC)TV 영상을 통해 SUV 뒷문이 열려 있는 것 같다는 분석 보고서도 팀장의 지시로 삭제됐다. 해당 부분은 열려 있는지 '불분명하다'는 내용으로 다시 작성돼 검찰로 관련 자료를 넘겼다.

케이블타이 확보도 문제였다. 결박 도구로 사용될 수 있어 강간 목적을 입증할 증거물인 케이블타이는 사건 발생 이튿날 장윤기 아버지에게 차량을 인계하면서 확보하지 못했다.

특별수사단 관계자는 "살인 범행 직전 장윤기가 피해 여고생의 목을 조른 행위 자체를 강간 범행에 착수한 증거로 봐야 한다"며 "수사 과정에서 성범죄를 의심할 정황을 발견하면 참고하거나 재조사해야 하지만 팀장 (묵살) 지시로 수사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특별수사단이 지목한 이번 사건의 부실 수사 근거는 이뿐만이 아니다. 장윤기 자취방 화장실에는 주요 부위가 반복적으로 훼손된 리얼돌 2개가 놓여있었지만, 당시 수사팀은 이를 실물로 확보하지 않았다. 그 결과, 검찰이 성범죄 목적 근거라고 지목한 리얼돌을 잃어버렸다.

특히 광산서 수사팀이 장윤기 아버지와 주고받은 12차례 전화 통화를 통해 수사 과정에서 알게 된 자취방 위치·현관문 비밀번호를 알려줬고, 이 때문에 리얼돌과 장윤기가 학창 시절 사용한 휴대전화 2대도 불에 탔다.

리얼돌 DNA 감식 결과서도 고의로 누락해 묵살 지시와 부실 수사를 바로 잡을 기회를 경찰 스스로 잃어버렸다.

특별수사단은 담당 팀장의 묵살 지시 배경에 수사 지휘 라인의 개입이 있었는지, 외부의 청탁이 있었는지에 대해서 중점 수사하는 중이다. 특별수사단 관계자는 "재조사를 통해 당시 수사팀이 많은 증거를 놓쳤다는 사실을 확인했다"며 "이 때문에 강간 목적 살인 혐의를 입증할 단서를 확보하지 못하는 결과로 이어졌다"고 했다.

이어 "범행 규명할 기회를 (경찰이) 스스로 놓친 만큼 의사 결정 과정에서 지휘 라인이 어떠한 판단을 했는지 계속 수사하겠다"며 "피해자와 유족에게 씻기 힘든 상처를 드린 점에 대해 깊이 사죄한다"고 말했다.

박수빈 한경닷컴 기자 waterbe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