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에는 요셉이 풍년 7년 동안 곡식을 비축해 흉년 7년을 대비한 이야기가 나온다. 지금 우리 반도체 산업이 거두고 있는 막대한 이익도 마찬가지다. 오늘의 이익을 일시적인 성과급 등으로 소비할 것인지, 아니면 미래를 준비하는 새로운 투자로 연결할 것인지가 대한민국 산업의 운명을 좌우할 것이다."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은 15일 여의도 한국성장금융투자운용에서 열린 'AI 시대의 기업 투자와 노동의 미래 토론회'에 참석해 이같이 밝혔다. 반도체 호황으로 거둔 대규모 이윤을 미래 기술과 설비에 우선적으로 재투자해야 한다고 촉구한 것이다.
김 장관은 특히 1970년대 영국이 북해 유전을 발견한 후 그 부를 미래 산업 투자 대신 단기 소비와 재정 지출로 소진해 결국 제조업 경쟁력이 약화된 '자원의 저주' 사례를 언급했다. 그는 "한 시대의 횡재가 다음 시대의 경쟁력으로 이어지지 못하면 그 부는 오래가지 못한다"며 "지금의 이익은 내일의 반도체 공장이자 AI 데이터센터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학계와 산업계 전문가들 역시 호황기 이윤을 분배나 세수 환수라는 단기 소모품으로 쓰기보다 3차 반도체 치킨게임에 대비한 '생존용 보험료'로 축적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발제를 맡은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반도체는 대규모 설비투자 주기와 업황 변동성이 극도로 높은 대표적인 고위험 업종"이라며 "적자 시기에도 조 단위 투자를 멈출 수 없는 구조적 특성상, 호황기에 번 돈은 불황기를 버티기 위한 내부 유보 재원으로 집중 활용되어야만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준 산업연구원 전략산업연구센터장도 "과거 일본의 엘피다와 독일의 키몬다는 호황기에 충분한 현금 버퍼를 쌓지 못해 치킨게임 과정에서 결국 파산했다"며 "다가올 치킨게임의 상대는 미국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는 마이크론인 만큼, 기업이 이익을 설비(CAPEX)와 연구개발(R&D)에 적극 투자할 수 있도록 유인하는 정책적 리스크 분담 지원책이 시급하다"고 제언했다.
동시에 AI 시대의 초격차 경쟁을 뒷받침하기 위해 시대착오적인 노동법과 인력 운용 규제를 전격 개혁해야 한다는 성토도 이어졌다. 분기 단위로 기술 전환이 이뤄지는 속도전에서 R&D 전문 인력까지 획일적인 주52시간제에 묶여 있고, 사업 재편을 위한 선제적 인력 배치전환이 법적 경직성에 가로막혀 있다는 지적이다.
김동욱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HBM 세대교체가 개월 단위로 일어나는 시대에 인력의 채용·배치·재교육 법제는 여전히 20세기 제조업 대량생산 체제에 머물러 있다"며 "일정 소득 이상의 고도 전문직에 대한 근로시간 규제 적용 제외(화이트칼라 이그젬션)와 첨단 공정의 파견 규제 완화 등 기업이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유연성을 보장하되 그 공백을 사회안전망으로 메우는 유연안정성(Flexicurity) 모델로 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임금체계에 대해서도 김동욱 교수는 "AI 시대에는 기술 숙련의 진부화가 빠르고 신기술 인재의 시장 가치가 매우 높게 형성되는데, 기존 연공서열형 호봉제를 고집하면 필요한 인재를 유인하지 못하는 비효율이 발생한다"며 직무급 및 성과급 중심으로의 조속한 전환을 촉구했다.
황용연 한국경영자총협회 이사와 이상호 한국경제인협회 경제본부장은 노조가 영업이익의 일정 비율을 성과급으로 요구하며 파업을 벌이는 최근의 실태를 비판했다. 이들은 "이익의 배분은 이사회와 주주총회를 통해 주주가 최종 결정할 상법상 권한"이라며 "기업이 스스로 번 돈마저 노사 간 갈등으로 소진된다면 글로벌 경쟁력 훼손은 고스란히 근로자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경고했다.
반면 노동계 대표로 참석한 장진희 한국노총 선임연구위원은 "한국의 정규직 해고보호 수준은 OECD 중위권으로 경직적이지 않으며, 진짜 문제는 이중구조"라고 반박했다. 그는 대기업의 초과이윤은 협력업체 및 비정규직 노동자의 희생에서 비롯된 만큼 공동교섭을 통해 상생 분배되어야 한다고 맞섰다.
이에 대해 김 장관은 모두발언을 마무리하며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과거의 일하는 방식이 아니라 미래의 일자리"라며 "AI 시대의 성장은 단순히 GDP나 수출액 수치 증가에 그치지 않고, 이익이 미래 투자로 이어져 청년들에게 더 좋은 꿈과 기회를 제공하는 선순환 성장이 되어야 한다"고 당부했다.
김리안 기자 kn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