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TS 아리랑이 '한'이 아닌 글로벌 '희망'으로 재탄생한 의미 [더 라이프이스트-홍재화의 매트릭스로 보는 세상]

입력 2026-08-23 14:06

전통적인 아리랑은 흔히 '한(恨)'의 정서로 대변된다. 떠나가는 임을 원망하면서도 붙잡지 못하고, 발병이 나길 바라는 체념과 슬픔의 정서가 그 밑바탕에 깔려 있다. 하지만 방탄소년단(BTS)의 월드 투어에서 울려 퍼진 아리랑은 눈물이나 탄식이 아니었다. 그들이 무대 위에 구현한 아리랑은 단 한 순간도 슬픈 노래였던 적이 없다. BTS는 한국인 특유의 수동적 정서인 '한'을 글로벌 청년 세대가 공감할 수 있는 '희망(Hope)'과 '극복'이라는 보편적 에너지로 완전히 비틀어 재해석했다. 이 감정적 프레임의 대전환이야말로 아리랑이 세계적인 공감대를 얻을 수 있었던 진짜 비결이라 할 수 있다.

기존 아리랑이 나를 버리고 가는 대상에 대한 원망과 슬픔을 홀로 삭이는 ‘고립된 자아’의 노래였다면, BTS의 아리랑은 ‘함께 고통을 넘어서는 연대의 서사’로 탈바꿈했다. 원곡의 아리랑 고개가 넘어가기 힘든 절망의 장애물이었다면, BTS 무대 위의 아리랑 고개는 마침내 도달해야 할 고지이자 새로운 시작점이다. 그들은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을 기다리는 수동적 태도를 버리고, 전 세계 아미(BTS 팬덤)와 손 맞잡고 "함께 이 아리랑 고개를 넘어가자"는 메시지를 던진다. 홀로 삭이던 개인의 슬픔이 국경과 인종을 초월한 거대한 연대의 에너지로 확장되는 순간이다.

귀로 느껴지는 정서적 체감 역시 완전히 달라졌다. 전통 아리랑 특유의 애조 띤 창법과 구슬픈 가락은 듣는 이를 가라앉히고 내적인 침잠으로 이끈다. 하지만 BTS는 이 슬픈 멜로디를 카타르시스를 분출하는 강력한 ‘신명(Dynamic Joy)’의 비트로 깨부쉈다. 드럼앤베이스나 일렉트로닉 댄스 뮤직(EDM)의 빌드업 구조를 차용해 아리랑 멜로디가 고조될 때 관객들의 심장박동을 함께 끌어올렸다. 이는 슬픔을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거대한 페스티벌의 한 장면처럼 온몸으로 뿜어내게 만드는 음악적 장치다. 전통 국악에서 슬픔을 극도로 밀어붙여 결국 흥으로 승화시키던 '살풀이'나 '축원'의 메커니즘을 현대적인 글로벌 팝의 문법으로 재현한 것이다. 관객들은 눈물 대신 몸을 흔들며 절망을 털어내고, 그 안에서 강력한 해방감과 희망을 체감하게 된다.

오늘날 글로벌 청년 세대는 저성장, 기후 위기, 단절 등 정체된 절망감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이들이 느끼는 무기력증은 과거 한국인들이 느꼈던 '한'의 정서와 일맥상통한다. BTS는 이 지점을 정확히 파고들었다. 아리랑을 단순히 "한국의 전통 민요를 소개하겠다"는 애국주의적 도구로 쓰지 않고, "지금 힘든 시기를 겪고 있는 전 세계 청춘들을 향한 위로와 응원가"로 포지셔닝했다. 아리랑의 낯선 음절들은 이제 외국 관객들에게 "우리는 결국 이 고통을 이겨내고 다 함께 웃을 것"이라는 강력한 희망의 챈트(Chant)로 변환되어 귓가에 꽂힌다. 언어는 통하지 않아도 무대에서 뿜어져 나오는 극복의 아우라와 웅장한 사운드는 관객들에게 '살아있다'는 감각과 내일로 나아갈 용기를 부여한다.

BTS가 증명한 아리랑의 세계화는 단순히 멜로디의 수출이 아니다. 그것은 박제돼 있던 '한의 정서'를 글로벌 시장에 통용되는 '희망의 서사'로 리브랜딩한 일종의 가치 혁신이다. 민족의 아픔과 눈물만을 담고 있던 로컬의 노래가 BTS라는 필터를 거치면서 인류 보편의 고난 극복 송가(Anthem)로 거듭났다. 그들은 우리에게 묻고 있다. 언제까지 아리랑을 슬프고 한 서린 과거의 유산으로만 가둬둘 것인가? 진짜 위대한 문화유산은 고여 있지 않고 끊임없이 시대의 결핍을 채우는 방향으로 진화한다. 그런 점에서 BTS의 아리랑은 한 시대를 위로하고 내일의 희망을 노래하는 가장 강력하고 세련된 글로벌 팝 스탠다드다.

<한경닷컴 The Lifeist> 홍재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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