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기관이 채무자도 모르는 사이 지급명령으로 채권 소멸시효를 연장해 장기간 빚을 추심하는 관행에 제동이 걸린다. 정부가 금융기관에만 허용했던 지급명령 공시송달 특례를 전면 폐지하고, 장기 연체채권의 무분별한 시효 연장을 막는 제도 개선에 나선다.
법무부는 15일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소송촉진 등에 관한 특례법' 개정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지급명령(독촉) 절차는 채권자가 법정에 출석하지 않고도 강제집행 권원을 받을 수 있는 간이 절차다. 원칙적으로는 채무자에게 서류를 전달하지 못하면 공시송달을 할 수 없지만, 2014년 특례법 개정으로 은행과 여신전문금융회사, 유동화전문회사 등 26개 금융기관·공공기관에는 예외적으로 공시송달이 허용돼 왔다.
문제는 일부 금융기관이 이 제도를 활용해 상환 가능성이 낮은 장기 연체채권에 대해서도 지급명령을 반복 신청하며 소멸시효를 연장해왔다는 점이다. 채무자는 이를 알지 못한 채 빚이 계속 살아 있어 장기간 추심 대상이 되는 사례가 적지 않았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법무부는 이번 특례 폐지를 통해 금융기관이 단순히 시효를 연장하기 위해 지급명령을 기계적으로 신청하는 관행을 개선하고, 경제적 어려움에 처한 채무자의 재기 기회를 보장한다는 방침이다.
이번 대책은 이재명 대통령이 "금융기관의 업무 편의를 위해 마련된 공시송달 요건이 채무자에게 지나치게 가혹한 측면이 있다"며 제도 개선을 지시한 데 따른 후속 조치다.
금융위원회도 소멸시효의 '원칙적 완성, 예외적 연장' 원칙을 정착시키기 위한 제도 개선을 병행한다.
우선 오는 9월부터 금융기관채권대손인정업무세칙을 개정해 이미 세법상 손실로 처리한 상각채권은 최초 소멸시효가 완성되는 경우에만 대손 인정과 세제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사실상 세제 혜택을 받으면서도 시효를 계속 연장해 회수를 시도하는 관행을 차단하겠다는 취지다.
또 금융기관별 개인금융채권 소멸시효 완성 실적을 공시하는 시스템을 마련해 올해 상반기 실적부터 공개한다. 각 금융회사가 채권 회수 가능성을 합리적으로 판단해 시효 연장 여부를 결정하도록 내부 규정도 오는 9월까지 정비할 예정이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장기 연체의 늪에 빠진 채무자의 재기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무분별한 시효 연장 관행을 개선할 수 있도록 국회에서 관련 법률이 개정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이억원 금융위원장도 "상환능력이 희박한 채무자에게까지 기계적으로 지급명령을 신청해 장기간 추심하는 잘못된 관행이 개선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김유진 기자 magiclam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