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비디아가 각국 정부와 기업이 추진하는 ‘소버린 AI(주권 AI)’를 차세대 성장 동력으로 삼고 있다. 미국 빅테크에 집중된 매출 구조를 다변화하는 동시에 국가별 AI 인프라 투자 확대를 반도체 수요로 연결하겠다는 전략이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는 15~16일 일본에서 열리는 행사에 참석해 일본 국산 AI 개발기업을 대상으로 자사 반도체 공급과 기술 협력을 제안할 전망이다. 황 CEO의 공식 방일은 지난해 10월 이후 약 9개월 만이다.
이번 방문에서 가장 주목받는 대상은 일본 국책 AI 기업 ‘노에트라’다. 노에트라는 소프트뱅크와 NEC, 혼다, 소니그룹 등 4개사를 중심으로 설립됐으며 제조업체를 포함한 일본 기업 44개사가 출자했다. 일본 정부도 최대 1조엔을 지원할 계획이다.
노에트라는 제조 현장과 로봇 등 현실 세계에서 작동하는 피지컬 AI의 기반 모델을 개발한다. 오는 16일 일본 경제산업성이 주최하는 행사에는 황 CEO와 노에트라 사장이 참석할 것으로 예상된다. 노에트라는 AI 모델 개발 기반에 엔비디아의 최신 AI 반도체를 채택할 가능성이 높다.
엔비디아가 일본을 포함한 각국의 국산 AI 프로젝트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은 소버린 AI 시장이 빠르게 확대되고 있기 때문이다. 소버린 AI는 국가가 자국 데이터와 산업 기반을 활용해 AI 모델과 인프라를 직접 개발·운영하는 것을 뜻한다.
각국이 소버린 AI에 투자를 늘리는 배경에는 경제안보 우려가 있다. 최첨단 AI 모델과 반도체 공급망이 미국 기업에 집중된 상황에서 정책 변화나 수출 규제로 서비스 이용이 제한될 수 있다는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트럼프 미국 행정부는 지난 6월 앤스로픽의 첨단 AI 모델 ‘미토스’ 등에 대해 외국인의 이용을 제한하도록 지시했고, 이에 따라 서비스 제공이 일시 중단됐다. 이 사건을 계기로 각국에서는 핵심 AI 기술을 특정 국가나 기업에 의존해서는 안 된다는 인식이 확산됐다.
프랑스는 자국 AI 스타트업 미스트랄AI를 정부 차원에서 지원하고 있다. 중국도 딥시크 등 AI 모델 개발기업과 화웨이의 반도체를 중심으로 독자적인 AI 공급망 구축에 나섰다.
엔비디아는 현재 영국과 독일, 프랑스, 인도, 아랍에미리트(UAE) 등 세계 20개국 이상의 AI 개발계획에 참여하고 있다. 각국 데이터센터에 필요한 AI 반도체를 공급하며 국가 단위 인프라 투자를 새로운 매출원으로 확보하고 있다.
엔비디아의 2026년 1월 회계연도 소버린 AI 관련 매출은 전년보다 3배 이상 증가한 300억달러를 넘어섰다.
소버린 AI 사업 확대는 엔비디아의 고객 집중 위험을 낮추는 효과도 있다. 현재 엔비디아 데이터센터 매출의 50% 이상은 구글과 마이크로소프트 등 대형 클라우드 사업자를 포함한 5개 고객사에서 나온다. 각국 정부와 국책기업으로 고객 기반을 넓히면 미국 빅테크 의존도를 낮출 수 있다.
다만 엔비디아가 소버린 AI 시장의 성장 과실을 독점할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프랑스 규제당국은 엔비디아의 반경쟁 행위 혐의에 대한 고발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제재가 현실화할 경우 거액의 과징금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경쟁사들의 추격도 거세다. 미국 AI 반도체 스타트업 세레브라스시스템스는 2027년 말까지 노르웨이와 핀란드, 프랑스 등에 자사 반도체를 탑재한 데이터센터를 총 200메가와트 규모로 확대할 계획이다.
엔비디아로서는 소버린 AI가 미국 빅테크 중심의 매출 구조를 보완할 유력한 성장축이지만, 각국 규제와 경쟁사의 시장 진입이라는 과제도 동시에 안게 됐다. 일본 노에트라와의 협력 여부는 엔비디아가 국가 주도 AI 시장을 얼마나 빠르게 선점할 수 있을지를 가늠하는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도쿄=최만수 특파원 bebo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