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억원대 투자 실패로 동업자와 갈등을 빚던 투자회사 대표가 해외에서 독극물을 직구해 음료에 타 먹인 이른바 '농약 커피' 사건이 해외 간편결제 서비스를 통해 손쉽게 독극물을 구매하면서 가능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차명으로 약 30만원을 결제해 국내 유통이 금지된 농약을 들여온 A씨에 대해 법원은 범행 전 과정을 치밀하게 준비한 계획범죄라고 판단했다. 11억 투자 실패로 깊어진 동업자 갈등19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동부지방법원 제12형사부는 지난달 말 살인미수와 농약관리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A씨에게 징역 9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A씨가 동업자인 B씨의 음료에 고독성 농약 ‘메토밀’을 넣어 살해하려 했다고 인정했다.
같은 대학 선후배였던 A씨와 B씨는 2022년 4월 투자회사를 함께 세웠다. 여러 사람에게 받은 투자금을 비트코인 등 가상자산에 넣어 수익을 낸 뒤 이를 투자자들에게 나눠주는 사업이었다. A씨는 투자금 조달을 맡았고, B씨는 비트코인 투자 프로그램을 운용했다. 회사 지분은 A씨가 70%, B씨가 30%였다.
두 사람의 관계에 금이 가기 시작한 것은 A씨가 B씨와 상의하지 않은 채 새로운 투자에 손을 대면서다. A씨는 2024년 5월부터 7월까지 지인의 권유를 받고 이른바 ‘테더뱅크’라는 가상자산 테더 환전 사업에 약 11억원을 투자했다. 이 가운데 약 8억 8500만원은 회사에서 빌린 돈이었다.
투자는 실패했다. A씨는 돈을 돌려받지 못하자 투자 상대방을 사기 혐의로 고소했지만 회사가 떠안은 손실은 그대로 남았다. 투자자들에게 원금과 수익금을 돌려주는 데도 차질이 생기기 시작했다.
B씨는 A씨에게 손실을 해결하라고 지속해서 요구했다. 2025년 1월에는 “인내심이 거의 끝났다”며 테더뱅크 문제가 투자자들의 A씨에 대한 신뢰를 하루하루 깎아먹고 있다고 압박했다.
회사 수익 배분 문제를 두고도 충돌했다. B씨는 투자 손실과 업무량 차이를 이유로 기존 7대 3이던 수익금 배분 비율을 5대 5로 바꾸자고 제안했다. A씨는 상당한 불만을 드러내며 이를 거절했다.
결국 2025년 9월 회사 대표가 A씨에서 B씨로 바뀌었다. 당시 회사 소유인 약 20억원 상당의 가상자산도 B씨 명의 업비트 계정에 들어 있었다. 계정 비밀번호는 B씨만 알고 있었고, 이체에 필요한 일회용비밀번호(OTP) 역시 B씨가 관리했다.
재판부는 투자 실패의 책임을 둘러싼 갈등이 이어진 가운데 B씨가 회사 자산을 사실상 단독으로 관리하게 되면서 A씨에게 범행 동기가 생겼다고 봤다. 국내서 유통 금지된 농약 직구해 카페로 피해자 유인이런 상황에서 A씨는 회사 자산에 접근하기 위해 B씨를 해치기로 마음먹고 고독성 농약 메토밀을 확보하려 한 것으로 조사됐다.
메토밀은 색과 냄새, 맛이 거의 없어 음식이나 음료에 섞어도 알아채기 어렵다. 약 2g만 섭취해도 10분 안에 시야 혼탁과 구토, 경련, 의식 상실, 호흡곤란 등이 나타나 사망할 수 있다. 독성이 매우 강해 현재 국내에서는 사용할 수 없는 물질이다.
A씨는 2025년 10월 인터넷에서 메토밀을 검색했다. 이 과정에서 소량만 먹어도 혼수상태에 빠지거나 사망할 수 있고, 여러 사건사고로 인해 국내 판매가 금지됐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닷새 뒤 A씨는 차명을 사용해 해외 판매자에게 페이팔로 약 30만원을 지불했다. 물건은 약 20일 뒤 도착했다. A씨는 배송이 늦어지자 판매자에게 빨리 보내달라고 재촉하기도 했다.
농약을 손에 넣은 A씨는 B씨와 만날 자리를 만들었다. 명분은 B씨가 별도로 운영하던 결혼정보회사에 가입할 여성 고객을 소개해주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A씨가 데리고 나온 여성 C씨는 A씨의 전 연인이었고, 결혼정보회사에 가입할 생각도 없었다. 판결문에 따르면 A씨는 B씨를 범행 장소로 유인하기 위해 실제 가입 의사가 없는 C씨를 고객인 것처럼 내세웠다. C씨는 A씨가 어떤 사업을 하는지조차 몰랐다고 진술했다. 라떼에 농약 넣어…일곱 모금 뒤 혼수상태A씨가 농약을 배송받은 지 엿새 만인 11월 23일, 세 사람이 만나기로 한 카페에 A씨와 C씨가 먼저 도착했다. A씨는 자리를 잡은 뒤 B씨에게 메뉴판 사진을 보내 무엇을 마실지 물었다. B씨가 아이스 라떼를 고르자 A씨는 음료를 대신 주문했다. 라떼를 받은 A씨는 곧장 계단 옆 셀프바로 이동했다.
이후 약 1분20초 동안의 행동은 카페 폐쇄회로(CC)TV에 찍혔다. A씨는 바지 왼쪽 주머니에서 흰색 약통을 꺼냈다가 수초 뒤 다시 넣었다. 약 30초가 지나자 같은 약통을 한 번 더 꺼낸 뒤 주머니에 넣었다.
CCTV를 확인한 결과 A씨가 셀프바를 떠날 때 라떼에는 빨대가 꽂혀 있었고, 층이 나뉘어 있던 커피와 우유도 모두 섞여 있었다. A씨는 2층 자리로 돌아온 뒤에도 B씨의 라떼를 한 차례 더 저었다. 재판부는 A씨가 메토밀을 넣은 뒤 농약이 음료 전체에 퍼지도록 섞은 것으로 판단했다.
이어 도착한 B씨는 약 4분 동안 라떼를 일곱 모금가량 마셨다. 첫 모금을 마신 지 약 7분 뒤부터 이상 증세가 나타났다. 의식이 흐려졌고 기침과 경련, 식은땀을 보이다 쓰러졌다. A씨 일행은 119에 신고했다.
B씨는 약 이틀 동안 혼수상태에 빠졌다. 병원과 국립중앙의료원 검사 결과 B씨의 혈액과 소변에서 메토밀 양성 반응이 나왔다. B씨는 라떼를 모두 마시지 않아 3일 만에 가까스로 깨어났다. 동업자 혼수상태 빠진 다음 날…계좌 비밀번호부터 물었다A씨는 사건 다음 날 B씨의 건강 상태나 치료 경과보다 업비트 계정에 있는 회사 자산에 접근하는 데 더 관심을 보인 것으로 나타났다.
A씨는 B씨가 중환자실에 있는 동안 C씨와 함께 B씨의 아내를 만났다. 그는 B씨의 휴대전화로 업비트 계정을 살펴보며 비밀번호를 물었고, B씨의 카카오톡에 들어가 자신과 나눈 대화도 확인했다.
헤어진 뒤에는 다시 B씨의 아내에게 전화해 B씨가 혼수상태이거나 사망했을 때 회사 운영자금을 출금할 수 있는지 변호사에게 확인해달라고 요구했다. 또 “회사 일 때문에 투자자들이 불안해한다”며 B씨의 어머니에게 빨리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독촉하기도 했다.
일부 투자자들에게는 B씨와 가족이 연락을 받지 않는다며 B씨 어머니의 전화번호를 전달했다. 이로 인해 피해자 가족들은 투자자들의 연락까지 받게 됐다.
이후 B씨 측이 A씨를 살인미수와 농약관리법 위반 혐의로 고소하면서 사건은 지난 1월 1심 법원에 접수됐다.“단백질 보충제와 착각”…법원 “우연으로 설명 안 돼”A씨는 법정에서 살인의 고의를 부인했다. 자살하려고 메토밀을 샀고, 평소 단백질 보충제를 담아 가지고 다니던 약통과 혼동해 사건 당일 바지 주머니에 넣고 나갔다는 주장이었다.
A씨는 B씨의 라떼를 받아든 뒤에야 주머니 속 약통을 발견했고, 셀프바에서 뚜껑을 닫다가 손에 묻은 가루를 물로 씻는 과정에서 메토밀 일부가 우연히 음료에 들어갔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CCTV에 찍힌 A씨의 약통을 꺼내는 동작이 주저함 없이 매우 빠르게 이뤄졌고, 이후 음료를 여러 차례 섞은 행동까지 고려하면 단순한 실수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자살을 위해 농약을 구입했다는 주장도 '궁색한 변명'이라고 봤다. 재판부는 생명을 해치려 했다면 즉시 확보할 수 있는 다양한 수단이 있는데도, A씨가 차명을 이용해 해외에서 농약을 주문하고 20일 동안 배송을 기다린 데다 배송까지 재촉했다고 지적했다.
무엇보다 메토밀을 배송받은 날부터 사건 발생일까지 A씨가 이를 이용해 음독을 시도했다고 볼 자료가 전혀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A씨의 범행이 우발적으로 이뤄진 것이 아니라고 결론 내렸다. 독성이 강한 농약을 해외에서 미리 구하고, 실제 고객이 아닌 I씨를 내세워 B씨를 카페로 불러낸 뒤 음료에 농약을 섞은 계획범죄라는 것이다.
재판부는 “독성 물질을 음료에 혼입하는 방식은 피해자가 방어하거나 위험을 인지할 기회를 사전에 박탈한다”며 “범행 수법이 매우 교묘하고 은밀하다”고 지적했다.
오랜 기간 이어진 대학 선후배이자 동업자라는 신뢰관계를 범행에 이용한 점도 죄질을 무겁게 봤다. A씨가 납득하기 어려운 변명을 반복하며 잘못을 반성하지 않고, B씨와 가족이 엄벌을 탄원한 점도 불리한 정상으로 반영됐다. A씨는 재판부에 반성문도 제출하지 않았다.
다만 B씨가 현재 건강을 회복해 특별한 후유증이 남지 않은 것으로 보이는 점과 A씨가 119에 신고한 점, 과거 벌금형을 넘는 범죄 전력이 없는 점은 유리한 정상으로 참작됐다. A씨는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다. 사건은 서울고등법원으로 넘어갔다.
최영총 기자 youngcho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