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제는 반도체 경제라고 불러도 과언처럼 들리지 않는다. 반도체가 전체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25년 24.4%에서 2026년 5월 42.3%로 급증했고, 올해 1분기 경제성장의 거의 절반을 반도체가 이끌었을 정도다.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의 성공이 지역 개발을 넘어 국가 경제의 미래와도 직결되는 이유다.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의 성공 여부는 인·수·전(인재·용수·전기) 확보에 달렸다는 사실은 이제 상식이 됐다. 인·수·전은 모두 개별 기업이 스스로 조달할 수 없고 국가가 앞장서 준비해야 할 국가 인프라에 해당한다. 따라서 인·수·전과 관련한 정부 정책이 상호 모순 없이 정합성을 유지할 때 차질 없는 인·수·전 확보와 호남 반도체의 성공을 기대할 수 있다.
특히 24시간 중단 없이 공급돼야 할 전력은 반도체 공정의 생명선이나 다름없다. 순간적인 정전은 물론 작은 전압 변동도 막대한 손실을 초래할 수 있다. 문제는 현재의 기후·에너지 정책과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 계획 사이의 엇박자로 인해 안정적인 전력 공급을 담보할 수 없다는 점이다.
정부는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 전력 대부분을 재생에너지와 원자력발전으로 공급한다는 구상이다. 하지만 원전과 재생에너지는 모두 출력 조절이 자유롭지 못한 경직성 전원이어서 동일 계통에 일정 비중 이상 함께 섞이면 계통 불안을 피할 수 없다.
원전과 재생에너지로만 구성된 전력망은 마치 길들이지 않은 힘센 순록(원전)과 여러 마리의 강아지(재생에너지)가 함께 끄는 썰매(수요)와 같다. 순록과 강아지들이 끄는 힘과 썰매의 무게가 균형을 이룰 때는 안정적이지만, 힘 자랑에 여념 없는 순록과 제멋대로 들쭉날쭉 힘을 내는 강아지들이 끄는 썰매는 힘의 균형이 수시로 깨져 늘 전복 위험에 시달린다. 재생에너지와 원전의 결합도 마찬가지다. 원전이 갑자기 멈추면 재생에너지가 출력을 높여야 하고, 재생에너지 출력이 급변하면 여기에 맞춰 원전이 출력을 조절해야 한다. 이를 할 수 없으니 늘 전력 계통은 불안하기만 하다.
반도체산업에 필요한 안정적인 고품질 전력을 공급하기 위해서는 원전과 재생에너지 비중을 줄이고 액화천연가스(LNG) 발전이나 연료전지와 같이 출력 조절이 상대적으로 쉬운 유연성 전원을 보완해야 한다.
그러나 LNG 발전 확대는 탄소중립 정책과 충돌한다. 올해 정부는 2035년 온실가스 감축목표(NDC)를 2018년 대비 53~61%로 대폭 높였다. 이렇게 상향된 NDC를 달성하려면 무탄소 에너지인 원전과 재생에너지 비중은 높이고,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LNG 발전 비중은 크게 줄일 수밖에 없다. 반도체에는 안정적인 전력을 공급하겠다면서 이를 뒷받침할 전원을 제약하는 것은 정책적 자기모순이다.
원전의 계속운전 제도도 문제다. 현행 제도상 계속운전 기간은 10년이지만 심사가 설계수명 종료 뒤까지 이어지면 허가가 날 때까지 원전은 멈춰야 한다. 더구나 심사 기간까지 10년에 포함돼 실제 운전 기간은 그만큼 줄어든다. 고리 2호기의 실제 계속운전 기간이 7년6개월에 불과한 이유다.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 전력 공급의 핵심 축인 한빛원전의 계속운전 차질은 곧 반도체 경쟁력 하락을 의미한다.
원전의 계속운전 제도를 합리적 방향으로 개선해야 한다. 계속운전 기간을 20년으로 정하고, 계속운전 심사 중에는 기존 허가의 효력을 연장해 원전의 중단 없는 가동이 가능한 미국 제도를 참조할 만하다. 반도체 클러스터의 성공은 입지보다 국가 정책의 정합성에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