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유럽 등 서방 국가들이 중국 의존 공급망을 대체하려면 2050년까지 모두 23조달러가 넘는 추가 투자가 필요한 것으로 분석됐다. 중국 중심 공급망을 재편하는 과정에서 막대한 재정 부담과 물가 상승이 불가피해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14일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컨설팅업체 EY-파르테논은 현재 중국에 의존하는 인프라와 연구개발, 소프트웨어, 제조시설, 공급망을 서방 국가들이 자체적으로 구축하려면 미국은 13조7000억달러, 유로존은 9조1000억달러, 영국은 8000억달러를 각각 2050년까지 투자해야 한다고 추산했다. 전체 규모는 약 23조6000억달러에 달한다.
미국의 경우 중국과 공급망을 분리하기 위해 정부와 기업이 연평균 5500억달러를 추가로 투자해야 한다. 이는 미국 대형 기술기업들이 지난해 데이터센터에 투자한 약 6000억달러와 비슷한 수준이다. 유럽연합(EU)의 경우 필요한 투자 규모가 현재 연간 EU 예산에 거의 맞먹는 수준으로 평가됐다.
EY-파르테논은 향후 25년 동안 연평균 9400억달러의 추가 투자가 이론적으로는 감당할 수 있는 규모라고 평가했다. 다만 이 자금은 에너지 전환과 첨단기술, 국방, 사회기반시설 등에 이미 계획된 투자와 별도로 집행돼야 하는 만큼 실제 부담은 훨씬 커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초기 투자 규모는 상대적으로 작겠지만 공급망 재편이 본격화할수록 투자 부담도 빠르게 확대될 것으로 전망했다.
매츠 페르손 EY-파르테논 고문은 "납세자와 소비자에게 과도한 부담을 지우지 않으면서 공급망을 현지화하는 일은 앞으로 기업과 정부가 직면할 가장 어려운 과제 가운데 하나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공급망 재편이 단순한 제조시설 이전이 아니라 연구개발과 소프트웨어, 원재료 확보, 물류체계까지 모두 새롭게 구축하는 작업이라고 설명했다.
중국 의존에 따른 서방의 취약성은 지난해 희토류 수출 통제 과정에서도 확인됐다. 중국 정부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중국산 제품에 145%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위협하자 핵심 희토류에 대한 수출 통제에 나섰다. 이에 미국과 유럽 자동차 업계 생산라인이 가동 중단 직전까지 몰렸고, 이후 베이징과 워싱턴이 휴전에 합의하면서 사태가 진정됐다. 이 사건은 미국과 유럽이 중국 리스크를 줄이기 위한 '디리스킹(de-risking)' 정책을 서두르는 계기가 됐으며, EU는 희토류 비축 계획도 추진하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중국은 2035년까지 전 세계 정제 리튬과 코발트의 60% 이상을 공급할 것으로 예상된다. 배터리용 흑연과 희토류 공급 비중도 약 80%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이들 광물은 전기차와 배터리, 청정에너지 전환에 필수적인 핵심 원자재다.
중국 제조업의 가격 경쟁력도 공급망 재편의 걸림돌로 꼽힌다. EY-파르테논은 중국산 제품의 공장 출고가격이 서방 경쟁업체보다 통상 20~100% 낮아 중국 생산을 대체할 경우 제조원가 상승이 불가피하다고 분석했다. 이에 따라 제품 가격과 소비자 물가도 함께 오를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유럽의 경우 중국 의존을 줄이면 핵심 산업 가격이 1~2.5%가량 추가 상승할 수 있는 것으로 추산됐다. 보고서는 이 같은 비용 증가가 유럽중앙은행(ECB)과 영국 중앙은행(BOE)의 물가 목표인 2%를 지속해서 웃도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공급망 재편은 경제 안보 강화라는 전략적 목적을 갖고 있지만, 상당한 재정 부담과 구조적인 인플레이션 압력을 함께 감수해야 하는 정책 과제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김주완 기자 kjw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