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산 카운트다운'…30년 홈플러스, 역사 속으로 사라지나

입력 2026-07-14 07:00
수정 2026-07-14 07:07

회생절차가 폐지된 홈플러스가 운영자금 고갈로 전국 대형마트의 문을 닫으면서 파산을 향한 '카운트다운'에 들어갔다. 오는 20일까지 긴급운영자금 2000억원을 마련하지 못하면 삼성그룹에서 출발해 국내 대형마트 시장의 한 축을 담당했던 홈플러스가 출범 29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질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홈플러스는 지난 13일 본사와 전국 67개 대형마트 점포의 영업을 이날부터 임시 중단했다. 올해 5월 영업을 멈춘 37개 점포에 이어 남아 있던 핵심 점포까지 사실상 문을 닫은 것이다. 홈플러스는 "운영자금이 모두 고갈돼 상품 대금은 물론 전기·수도 등 매장을 유지하기 위한 비용조차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보안과 안전 유지를 위해 본사와 대형마트 매장 모두 임시휴업에 들어간다"고 설명했다.

유통업계에서는 전국 2곳의 홈플러스 물류센터와 배송 차량이 멈추면서 각 매장 물품 공급이 중단됐고 공과금을 장기 미납한 일부 점포에는 오는 16일부터 단전·단수도 예고돼 영업 중단이 불가피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홈플러스는 입점업체가 원할 경우 쇼핑몰 영업은 이어간다는 방침이지만, 마트가 영업을 멈춘 만큼 실효성에는 의문이 따른다.

다만 갑작스러운 휴업 발표로 현장에서는 혼란이 빚어졌다. 홈플러스는 이날 오전 10시께 휴업을 발표했지만, 상당수 직원은 이를 알지 못한 채 정상 출근했다. 일부 점포에서는 직원들이 매장 문을 열었다가 뒤늦게 본사 지침을 전달받고 카트로 입구를 막는 상황도 연출됐다. 휴업 사실을 모르고 매장을 찾은 고객들도 직원 안내를 받아 발길을 돌렸다.

한 직원은 "출근해 영업 준비하다가 뒤늦게 휴업 사실을 알게 됐다"며 "본사와 제대로 상황을 공유하지 못한 채로 고객들을 마주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갑작스러운 휴업 발표에 상품권 사용을 두고 항의하는 소비자들도 속출했다. 회생절차 폐지 결정에 대한 즉시항고 기한인 이달 20일까지 홈플러스가 계속 문을 닫으면 소비자들이 가지고 있는 홈플러스 상품권은 사실상 휴지 조각이 되는 탓이다.

앞서 서울회생법원은 지난 3일 홈플러스 회생절차 폐지를 결정했다. 회생에 필수적인 최소 긴급운영자금 2000억원을 조달할 방안이 없다는 이유다. 다만 20일까지 홈플러스가 자금 확보 방안을 제출하면 회생절차 연장 여부를 다시 검토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현재까지 구체적인 자금 조달 방안은 나오지 않았다. 홈플러스 경영권을 쥔 대주주 MBK파트너스는 추가 자금 투입에 나서지 않고 있다. MBK와 홈플러스가 대출을 요청한 채권자 메리츠금융그룹도 배임 우려로 신규 대출을 수용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대출을 두고 MBK와 메리츠가 평행선을 걸으면서 홈플러스가 자금을 마련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힘을 얻는다.

홈플러스의 역사는 1997년 삼성물산 유통부문이 대구에 '삼성홈플러스' 1호점을 열면서 시작됐다. 이마트에 이어 국내에서 두 번째로 등장한 대형마트 브랜드였다. 그해 외환위기가 터지면서 홈플러스 경영권과 지분 49%는 1999년 영국 유통기업 테스코로 넘어갔다. 이후 삼성물산이 지분을 단계적으로 매각하면서 홈플러스는 2011년 테스코의 100% 자회사가 됐다.

홈플러스가 빠르게 성장한 것도 테스코 시절이었다. 2000년 안산점을 시작으로 수도권에 진출했고 2004년에는 기업형 슈퍼마켓인 홈플러스 익스프레스를 선보였다. 2008년에는 이랜드 홈에버(옛 까르푸)를 인수하며 점포망을 확대했다. 2015년에는 대형마트 140개, 기업형 슈퍼마켓 375개, 편의점(365플러스) 327개를 거느린 대형 유통기업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홈플러스의 성장은 거기까지였다. 그해 테스코가 한국 사업을 매각하면서 홈플러스는 7조2000억원에 MBK로 넘어갔다. 당시 MBK는 2조2000억원을 자체 조달하고 약 5조원은 차입에 의존했다. 이후 홈플러스는 점포 매각과 자산 유동화를 통한 차입 상환에 집중했다. 채무는 상당 부분 갚았지만, 점포망과 영업 기반은 무너졌다.

여기에 코로나19 이후 유통 시장의 무게중심이 온라인 쇼핑으로 급격하게 기울면서 △2021년 1335억원 △2022년 2602억원 △2023년 1994억원 △2024년 3141억원 영업손실을 내는 등 적자가 누적됐다. 결국 지난해 3월 기업회생절차를 신청했지만, 이후로도 상황이 악화하여 매장 운영비조차 감당하지 못하는 처지에 이르렀다.

오는 20일까지 자금 확보에 실패해 회생절차 폐지 결정이 확정되면 홈플러스는 파산과 청산 절차로 넘어갈 가능성이 크다. 기존 회생사건과 연계해 법원이 파산을 선고하는 '견련파산' 가능성도 거론된다. 파산이 현실화하면 법원이 선임한 파산관재인이 점포와 물류시설, 설비 등 자산을 처분해 채권자들에게 배분한다. 다만 메리츠 측이 홈플러스 주요 62개 점포에 담보권을 설정한 만큼 해당 점포 처분 과정에서는 메리츠의 영향력이 클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즉시항고 기한이 남아 있고 법원이 아직 파산을 선고하지 않은 만큼 파산이 확정된 것은 아니다. 홈플러스는 오는 20일까지 자금 조달 상황과 법원의 최종 결정을 지켜본 뒤 영업 재개 여부를 결정한다는 입장이다.

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ses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