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을 덮친 올해 가장 강력한 열대폭풍인 제9호 태풍 '바비(Bavi)'가 중국 동부 해안가를 휩쓸고 지나가면서 막대한 피해가 발생했다. 태풍 상륙을 앞두고 긴급 대피한 주민 수만 약 200만명에 달하며, 수천 편의 항공기 운항이 전면 중단되는 등 물류와 교통망도 마비됐다. 태풍의 간접 영향권에 들었던 대만과 일본, 필리핀 등 아시아 주변국에서도 인명 피해와 정전 사태가 속출했다.
12일 로이터·AP·AFP통신 등 외신과 중국 관영 매체에 따르면 태풍 바비는 전날 오후 11시 20분께 저장성 위환시에 처음 상륙했다. 당시 중심부의 최고 풍속은 시속 144㎞에 육박할 정도로 강력한 위력을 지니고 있었다. 육지를 잠시 벗어났던 태풍은 약 20분 뒤인 자정 무렵 원저우시 웨칭 지역에 재차 상륙하며 동부 연안을 거세게 몰아쳤다.
강풍과 폭우를 동반한 태풍이 내륙을 관통하면서 저장성 일대는 순식간에 난장판으로 변했다. 웨칭 지역에서만 가로수 1300여 그루가 쓰러졌고 이 중 절반 이상은 뿌리째 뽑혀 나갔다. 도심 일부 구역은 성인 무릎 높이까지 물이 차오르는 침수 피해를 보았으며, 산악 지대에서는 폭우로 유실된 대형 바위가 도로를 가로막는 산사태가 발생했다. 하천 범람과 농경지 침수 우려가 커지면서 저장성 당국은 즉각 휴업 및 휴교령을 내리고 대중교통 운행과 야외 활동을 전면 통제했다.
태풍의 직접적인 타격이 예상되면서 중국 전역에서는 대규모 피난 행렬이 이어졌다. 당국이 사전에 대피시킨 주민은 최소 200만명으로 집계됐다. 경제·기술 거점인 저장성에서만 가장 많은 172만명이 안전지대로 몸을 피했다. 수도 베이징에서도 폭우 우려로 10만명 이상이 피난길에 올랐고, 푸젠성 13만명, 상하이 해안가 주민 3만 4000여명 등이 각각 긴급 대피했다. 다행히 태풍으로 인한 직접적인 사망자는 아직 보고되지 않았으나, 구조대가 굴착기와 전기톱을 동원해 잔해를 치우는 등 복구 작업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교통망도 전면 마비됐다. 태풍의 영향으로 12일 하루 동안 중국 전역에서 2800편이 넘는 국내외 항공편이 결항을 예고했다. 중국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 계열의 글로벌타임스는 항공정보 플랫폼 유메트립을 인용해 베이징, 상하이, 항저우 등 전국 45개 공항이 일제히 뇌우 경보를 발령했다고 전했다.
특히 상하이 푸둥국제공항과 훙차오국제공항은 기상 악화로 운항 능력이 급감하면서 전체 스케줄의 30%가량이 전면 취소됐다. 두 공항에서 운항이 무산된 항공편은 각각 458편, 195편에 달한다. 동남부 지역의 철도망도 가동을 멈췄다. 항저우서역은 승객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이날 모든 열차 운행을 일시 중단했으며, 장시성과 푸젠성을 오가는 일부 여객 열차 역시 멈춰 섰다.
태풍 바비가 중국에 상륙하기 전 거쳐 간 주변국들의 피해도 가볍지 않다. 대만 중앙통신사(CNA)와 재해대응센터에 따르면 대만 북부를 비껴간 태풍으로 인해 외국인 5명을 포함해 총 134명이 부상을 입었다. 대만 전역에서 1만 4000명 이상이 급히 대피했고, 북부 먀오리현 등 일부 지역에는 최고 80㎝가 넘는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졌다. 아울러 199편의 항공 노선이 취소됐으며 17만 가구가 넘는 지역에 전력 공급이 끊기는 등 극심한 혼란을 겪었다. 대만 기상청은 해안가에 최고 10m의 집채 만한 파도가 일 수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일본 오키나와 등 남서부 영토에서도 수천 가구와 주요 시설이 정전되는 사태를 맞았다. 필리핀의 경우 태풍 여파에 따른 집중호우와 산사태가 겹치면서 18명이 목숨을 잃고 1만 1000여명의 이재민이 발생하는 등 인명 피해가 가장 컸다.
기상 전문가들은 이번 태풍 바비의 강력한 위력이 해수면 온도 상승과 무관하지 않다고 분석했다. 지구 온난화로 따뜻해진 바다가 태풍에 막대한 열에너지를 공급하면서 폭우와 강풍의 세기를 비정상적으로 키웠다는 지적이다. 여기에 올해 발생한 엘니뇨 현상까지 더해지면서 향후 더욱 극단적인 기상 이변이 잦아질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쏟아지고 있다.
중국 기상 당국은 태풍 바비가 12일 오전 들어 열대 폭풍으로 세력이 다소 약화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태풍 고유의 규모가 워낙 거대해 동부와 북부 지역을 중심으로 장기간 폭우가 지속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실제로 중국에서는 이번 태풍 상륙 전에도 이미 일주일간 남부와 중부 지역을 강타한 기습 폭우로 최소 39명이 숨지고 하천 범람, 저수지 붕괴 등 수해가 누적된 상태다. 당국은 태풍의 잔재로 인해 오는 15일까지 강한 비가 이어질 것으로 보고 추가 재해 방지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
김예랑 한경닷컴 기자 yesr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