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아프리카 항만을 중심으로 해상 물류망에 대한 영향력을 빠르게 확대하고 있다. 원유·천연가스·핵심광물 등 전략 자원의 안정적인 수송로를 확보하고 중국 기업의 해외 진출과 자국 기술 표준을 확산하기 위해서다.
중국은 기존 항만 건설과 금융 지원을 넘어 5세대 이동통신(5G)·자동화·인공지능(AI) 시스템까지 패키지로 공급하면서 아프리카 무역망을 자국 중심 네트워크에 편입시키고 있다.
미국·유럽도 핵심광물 공급망과 수송로 확보를 위해 아프리카 투자를 확대하고 있어 아프리카를 둘러싼 국가간 패권 경쟁은 치열해질 전망이다.아프리카 항만 78곳에 中 참여 14일 아프리카전략연구센터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중국 기업은 아프리카 전체 항만의 약 3분의 1을 운영하거나 금융 지원·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중국 기업이 건설·금융·운영 주체로 참여한 항만은 아프리카 32개국 78곳에 달한 것으로 집계됐다.
지역별로는 서아프리카가 35곳으로 가장 많고 동아프리카 17곳, 남부 아프리카 15곳, 북아프리카 11곳이다. 아프리카 전체 상업항이 약 231개라는 점을 고려하면 중국 기업이 관여한 항만 비중이 33%를 웃돈다는 의미다.
중남미·카리브해 지역의 중국 건설 항만이 10곳 안팎이라는 점과 비교해봐도 아프리카에 대한 집중도는 두드러지고 있다.
중국 기업의 아프리카 항만 진출은 토목공사에만 그치지 않고 있다. 중국 기업들은 항만과 연결되는 도로와 철도, 내륙 물류기지, 산업단지, 자유무역지대의 자금 조달과 건설·운영에도 참여하고 있다.
아프리카 서부와 북부, 남부의 항만 클러스터를 중국 산둥성 칭다오·옌타이와 톈진 등 주요 항만·자유무역시험구에 직접 연결하는 해운 회랑도 구축하고 있다. 중국과 아프리카 사이에 이미 운영 중인 수십 개의 직항 노선에 새로운 회랑을 추가해 아프리카의 원자재와 상품이 중국 항만·산업단지로 곧바로 이동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고 있는 셈이다.
중국의 아프리카 해양 영향력은 아덴만과 기니만, 희망봉 등 세계 주요 항로에도 걸쳐 있다. 이들 항로는 중국이 중동과 아프리카에서 원유·가스와 광물을 들여오는 핵심 통로가 되고 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해당 항로를 통과하는 연간 교역 규모가 약 3500억달러(약 526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됐다"며 "중국은 2013년 일대일로(육해상 실크로드)를 출범시킨 이후 아프리카 항만 인프라에 약 500억달러를 투입한 것으로 분석됐다"고 전했다.
중국과 아프리카의 교역 확대는 이같은 항만 투자의 기반이 되고 있다. 지난해 중국과 아프리카의 교역은 전년보다 약 18% 증가했다. 중국은 올 5월부터 아프리카 53개국의 수입품에 무관세 혜택을 적용했다. 미·중 공급망 경쟁 격화 불붙어 중국이 아프리카 항만에 공을 들이는 가장 직접적인 이유는 자원 안보에 있다. 중국은 제조업과 전기차·배터리 산업에 필요한 구리, 코발트, 리튬, 망간과 함께 원유·천연가스의 상당량을 해외에서 조달하고 있다.
콩고민주공화국과 잠비아, 기니, 앙골라, 남아프리카공화국이 핵심광물과 에너지의 주요 공급국이다. 중국으로서는 광산 지분만 확보하는 것보다 광산에서 항만까지 이어지는 철도와 도로, 항만 터미널을 함께 장악하면 공급망의 안정성과 비용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
중국이 항만에 소프트웨어와 자동화 시스템을 함께 공급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동안 지멘스 등 서방 기업이 전통적인 항만 운영 소프트웨어와 자동화 시장을 주도해왔지만 화웨이를 비롯한 중국 기업들은 5G 통신망과 크레인·하역장비 제어 소프트웨어, 센서 인식, 자율주행 시스템을 묶은 스마트항만 패키지를 적극 제공하고 있다.
정책금융기관의 저리 자금과 건설공사, 장비, 소프트웨어, 교육까지 하나의 계약으로 묶을 수 있다는 점은 중국 기업의 경쟁력이다. 현지 국가가 중국 규격에 맞춰 항만과 통관망을 구축할수록 이후 추가 장비와 시스템 조달에서도 중국 기업을 선택할 가능성은 커질 수밖에 없다.
중국의 대아프리카 직접투자는 2024년 33억7000만달러를 기록해 2004년 3억2000만달러의 열 배를 넘었다.
중국은 광산과 항만뿐 아니라 아프리카의 태양광·배터리, 전기차, 이동통신, 전자상거래와 디지털 결제 시장에도 진출하고 있다. 아프리카 내 중국 위안화의 영향력도 키우고 있다. 중국 인민은행은 지난달 남아프리카공화국 스탠더드은행과 중국공상은행을 아프리카 위안화 청산은행으로 승인했다. 두 은행은 아프리카 19개국을 대상으로 위안화 결제를 처리하게 됐다.
케냐는 중국에서 빌린 철도 차관 일부를 위안화 대출로 전환했고, 잠비아는 중국 기업이 위안화로 세금을 낼 수 있도록 했다. 아프리카 국가의 중국과 무역·차입 비중이 커질수록 위안화 사용도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
중국의 아프리카 영향력 확대는 미국과 패권 경쟁과도 맞물려 있다. 미국과 유럽은 중국이 선점한 핵심광물 공급망에 대응하기 위해 앙골라 로비투항에서 콩고민주공화국과 잠비아 광산지대를 연결하는 로비투 회랑에 투자하고 있다. 이에 맞서 중국은 잠비아와 탄자니아를 연결하는 탄자니아·잠비아 철도, 이른바 타자라 철도 현대화에 대규모 자금을 지원해 광물을 인도양 항만으로 운송하는 동부 회랑을 강화하고 있다.
아프리카 중앙의 동일한 구리·코발트 지대를 놓고 서쪽으로 향하는 미국·유럽 회랑과 동쪽으로 향하는 중국 회랑이 경쟁하는 셈이다.
전문가들은 중국이 과거엔 광범위하게 아프리카에 진출해왔는데 최근 들어선 수익성과 전략적 가치가 높은 국가·광물·물류 프로젝트를 선별하는 방향으로 접근법을 달리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다만 이와 관련 한 업계 관계자는 "일부 아프리카 국가에선 과도한 부채와 불투명한 계약, 중국산 제품의 시장 잠식에 대한 불만이 커지고 있어 중국의 일방적인 영향력 확대가 계속 이뤄질 지는 미지수"라고 말했다.
베이징=김은정 특파원 ke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