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비통·구찌가 핵심 입지에 카페 내는 이유 [안혜원의 명품의세계]

입력 2026-07-11 16:00
수정 2026-07-13 09:25
지난 10일 오후 서울 청담동 루이비통 메종 서울 4층. 매장 안쪽으로 들어서자 가방, 옷 등 판매 제품 대신 돔 형태의 벽면을 가득 메운 수많은 책이 눈에 들어왔다. 건축 거장 프랭크 게리가 설계했다는 곡선 형태의 유려한 외관이 특징인 이 곳은 루이비통의 국내 첫 상설 미식 공간인 ‘르 카페 루이비통’이다. 커피나 차, 간단한 요리를 맛볼 수 있다. 내부 공간을 꽉 채운 책장엔 북 큐레이터가 선별한 책과 윤태균 총괄 셰프가 직접 고른 요리 서적, 루이비통이 펴낸 여행·스타일 관련 아트북 등이 비치돼 있다. 카페라기보다 현대식 도서관에 들어선 듯한 느낌이다. 꼭 제품을 사지 않더라도 차나 커피를 마시면서 루이비통의 세계관을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이다.
'한 입'에 체험하는 루이비통 세계관오후 시간 대에 방문한 망큼 애프터눈 티 세트를 주문했다. 테이블 위엔 루이비통의 여행용 트렁크 손잡이를 연상시키는 곡선형 프레임의 3단 티 스탠드가 놓였다. 이 카페가 최근 새로 선보였다는 ‘정교한 풍미의 여정’ 세트 메뉴다. 통상 애프터눈 티 세트가 단 맛의 디저트 중심으로 구성된 것과 달리 루이비통은 간단한 한입 요리인 세이보리 중심으로 세트를 꾸몄다. 가벼운 식사를 즐길 수 있을 만한 구성이다. 한우를 복분자청과 매실청으로 조리한 ‘청담 산도’, 트러플 치킨에 된장 마요를 더해 짭짤한 맛이 일품인 ‘블랙 트러플 치킨 마카롱’, 한국식 프라이드치킨을 재해석한 ‘메종 치킨 위드 파르메산 튀일’ 등이다.


프렌치 다이닝 메뉴를 한국 장이나 청으로 조리해 익숙한 맛이 느껴지면서도 이국적인 형태의 요리가 흥미롭다. 루이비통은 작은 음식 하나하나에 루이비통과 한국의 연결성을 잘 담아냈다. 매장이 자리한 지역명을 메뉴명으로 정한 청담 산도가 대표적이다. 캐비어와 해초 마요네즈를 곁들인 참치 타르타르, 유자 드레싱을 넣은 시저 샐러드 바이트도 프랑스식 조리법에 한국적인 풍미를 잘 조화했다. 파리 카페의 단순한 복제본이 아닌 ‘서울에서만 먹을 수 있는 루이비통 메뉴’를 만들고자 한 목적이 뚜렷하게 드러난다.

세이보리를 비운 뒤엔 바닐라·초콜릿·헤이즐넛 미니 앙트르메와 마블 케이크를 즐기면 된다. 코트디부아르산 코코아, 헤이즐넛 프랄린, 캐러멜라이즈드 밀크 잼 등 정통 프렌치 디저트 재료와 기법이 활용됐다. 르 카페 루이비통의 미식 디렉팅을 맡은 윤태균 셰프는 '루이비통 컬리너리 커뮤니티'에서 멘토로 활동 중인 셰프 '아르노 동켈레', 페이스트리 셰프 '막심 프레데릭'과 협업해 루이비통만의 독창적인 메뉴를 만들어 냈다. 세이보리 여섯 종에 미니 앙트르메 세 종, 마블 케이크, 차 또는 커피를 포함한 이 메뉴의 가격은 1인당 9만8000원이다.


루이비통 측은 ‘여행의 예술’을 미각으로 옮기는 일에 초점을 맞췄다고 설명했다. 그 의도대로 트렁크를 닮은 티 스탠드에서 음식을 하나씩 꺼내 먹고, 여행과 요리 서적에 둘러싸여 시간을 보내는 과정 전체가 하나의 브랜드 체험으로 잘 설계돼 있다. 제품을 진열해 놓고 구매를 기다리던 전통적인 명품 매장에서 벗어나, 먹고 마시고 머무는 동안 브랜드의 취향을 자연스럽게 익히게 하는 전략이다.
디올·구찌는 왜 서울 강남서 카페를 열었을까 이처럼 명품 브랜드가 카페나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것은 주요 마케팅 전략으로 자리 잡는 모습이다. 디올은 성수동 콘셉트 스토어에서 '카페 디올’을 운영하고 있으며, 구찌는 청담동에서 레스토랑 ‘구찌 오스테리아 서울’을 두고 있다. 국내에서 임대료가 가장 높은 강남·성수 등 부촌 한복판 노른자 땅 위에서 카페를 운영한다는 건 수익성만 놓고 보면 선뜻 이해하기 어려운 전략일 수 있다. 수만원대 요리를 팔기 위해 유명 셰프를 영입하고 최고급 식재료를 사용하는 데 드는 비용도 만만치 않다. 그럼에도 명품 브랜드들이 미식 공간을 확대하는 것은 카페 자체의 매출보다 브랜드를 경험하는 접점을 넓히는 효과가 더 크다고 보기 때문이다.


적게는 수백만원에서 수천만원대에 달하는 가방이나 의류는 구매 빈도가 낮고 가격 장벽도 높지만, 커피와 디저트, 식사는 상대적으로 부담이 적다. 아직 제품을 사보지 않았던 소비자까지 매장으로 끌어들이고, 머무는 시간을 늘려 인테리어와 식기, 서비스, 메뉴에 담긴 브랜드의 미감과 철학을 자연스럽게 체험하게 할 수 있다. 카페에서 촬영한 사진과 영상이 SNS를 통해 확산되면 별도의 광고 없이도 브랜드 노출을 확대하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결국 명품 카페는 음식 판매로 직접 이익을 내는 매장이라기보다 고객과의 관계를 넓히기 위한 일종의 ‘체험형 쇼룸’에 가깝다. 기존 고객에게는 브랜드 충성도를 높이는 공간이 되고, 젊은 소비자에게는 훗날 제품 구매로 이어질 수 있는 입문 경로가 된다. 명품 브랜드가 패션을 넘어 여행과 미식, 문화 전반을 아우르는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로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전략이기도 하다.

특히 한국이 주요 명품 시장으로 자리 잡은 만큼 이 같은 흐름은 럭셔리 브랜드의 국내 시장 공략 방식으로 활용되고 있다. 르 카페 루이비통은 서울을 포함한 파리·뉴욕·도쿄·밀라노·방콕 등 전세계 6곳의 도시에서만 운영한다. 구찌 오스테리아 서울은 피렌체·로스앤젤레스·도쿄에 이은 네 번째 매장으로, 이탈리아 요리에 서울의 지역성을 더한다.

한 명품업계 관계자는 "치열한 경쟁 속 제품만으로 차별화하기 어려워지고 젊은 소비자의 브랜드 충성도가 낮아진 상황에서 미식은 명품의 미감과 이야기를 가장 일상적이고 공유하기 쉬운 방식으로 전달하는 매개가 된다"며 "커피 한 잔이 신규 고객에게는 명품 세계로 들어가는 낮은 문턱이 되고, 기존 고객에게는 브랜드와의 관계를 이어주는 접점이 되는 셈"이라고 소개했다.

안혜원 기자 an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