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선 3만원인데…" 日 '7000원 라멘'에 숨은 뼈아픈 비밀 [도쿄나우]

입력 2026-07-11 09:14
수정 2026-07-11 09:20


일본에서 ‘라멘 한 그릇’의 가격을 둘러싼 논쟁이 확산되고 있다. 발단은 전 일본 축구대표 혼다 게이스케가 “이 정도 맛인데 730엔은 너무 싸다. 조금 더 가격을 올려야 한다. 다음에는 2000엔을 내겠다”며 일본 사회 전반의 저가 구조를 지적한 것이다. 이에 “1000엔도 비싸다”는 반론과 함께 “문제는 라멘값이 아니라 낮은 임금”이라는 의견이 맞서며 ‘너무 싼 일본’에 대한 논의로 이어지고 있다.

11일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외국인 관광객들은 일본 라멘의 가격 경쟁력을 높게 평가하고 있다. 미국 뉴욕에서 온 한 관광객은 잇푸도 긴자점에서 990엔짜리 라멘 세트를 먹은 뒤 “뉴욕에서는 같은 라멘이 18달러(약 2300엔) 이상이고 세금과 팁까지 더하면 3000엔 가까이 든다”며 “일본은 음식뿐 아니라 모든 것이 싸다”고 말했다. 실제로 엔화 약세까지 겹치면서 방일객들은 일본에서 소비를 늘리고 있으며, 일본 관광청 조사에서도 라멘은 육류 요리에 이어 외국인 만족도가 높은 음식으로 꼽혔다.

라멘 업체들도 늘어나는 외국인 관광객 수요를 적극 공략하고 있다. 잇푸도는 영어·중국어·한국어 주문이 가능한 태블릿을 도입하는 한편, 지난해 원재료와 물류비 상승을 반영해 대표 메뉴 가격을 30~40엔 인상했다. 그러나 여전히 일본 소비자들은 라멘 가격이 1000엔을 넘는 데 강한 거부감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 회사 측 설명이다.

반면 고급 호텔에서는 라멘이 프리미엄 상품으로 자리 잡고 있다. 더 페닌슐라 도쿄는 잇푸도가 프로듀스한 5000엔짜리 라멘을 룸서비스로 제공하고 있으며, 12가지 토핑과 객실에서 직접 국물을 붓는 방식 등 차별화된 서비스를 내세우고 있다. 더 리츠칼튼 닛코 역시 AFURI와 공동 개발한 5800엔짜리 유자 소금 라멘을 선보이며 해외 부유층 고객을 겨냥하고 있다. 호텔들은 식재료와 서비스, 연출까지 포함한 ‘경험 가치’가 가격을 결정한다고 설명한다.

해외에서 근무하는 일본인들은 일본과 해외의 ‘라멘 가격 격차’를 더욱 실감하고 있다.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근무하는 일본인 회사원은 “현지에서는 라멘 한 그릇이 2000엔 수준인 것이 자연스럽지만 일본에서 받던 급여는 거의 오르지 않았고 엔화 약세까지 겹쳐 부담이 크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라멘 가격 논쟁의 본질은 음식값이 아니라 일본 경제의 구조적 문제에 있다고 지적한다. OECD에 따르면 2021년 일본의 평균 임금은 1990년보다 6.3% 증가하는 데 그쳤다. 같은 기간 미국은 53%, 영국은 50% 증가했다. 해외에서 일하는 일본인들 사이에서는 “일본 외식 가격이 저렴한 것은 소비자 입장에서는 반갑지만, 그만큼 서비스업 종사자의 임금이 낮다는 뜻이기도 하다”며 일본 경제의 저성장과 정체된 임금 구조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도쿄=최만수 특파원 bebo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