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 나와라" 가슴 졸인 기업들…대법원 판단에 한숨 돌렸다 [김대영의 노무스쿨]

입력 2026-07-11 18:00
수정 2026-07-11 18:57
대법원이 옛 노동조합법을 기준으로 명시적·묵시적 근로계약 관계가 없을 경우 원청이 하청 노조의 교섭 요구에 응할 의무가 없다고 연이어 선을 그었다. 원청이 근로조건을 실질적으로 지배·결정한다는 이유만으로는 하청 노조의 교섭 상대가 될 수 없다는 취지다. 경영계에선 개정 노동조합법 시행 이후 '실질적 지배력'을 둘러싼 현장 혼란이 이어지는 만큼 사용자 범위를 다시 손질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CJ대한통운·택배노조 '혼전'…法 "교섭 상대 아냐" 11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3부(주심 이흥구 대법관)는 이틀 전 CJ대한통운이 중앙노동위원회를 상대로 낸 부당노동행위 구제 재심판정 취소소송에서 원고패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전국택배노동조합은 2020년 3월부터 5월까지 세 차례 CJ대한통운에 단체교섭을 요구했다. 회사가 집배점 택배기사의 사용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거부하자 노동위원회에 구제를 신청했다.

CJ대한통운은 당시 전국 허브터미널 13곳·서브터미널 270여곳을 운영하면서 약 1800개 집배점과 위수탁계약을 맺었다. 전체 택배기사 약 1만8000명 가운데 집배점과 계약한 기사는 1만7000여명. 택배노조엔 CJ대한통운 167개 집배점 소속 기사를 포함해 약 1200명이 가입한 상태였다.

서울지방노동위원회는 CJ대한통운을 택배노조의 교섭 상대가 되는 사용자로 볼 수 없다고 봤다. 하지만 중노위는 2021년 6월 회사가 교섭 요구사항을 실질적·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다면서 이를 뒤집었다. 1·2심 법원도 같은 이유로 CJ대한통운의 교섭 의무를 인정했다.

대법원에선 이 판단이 또다시 뒤집혔다. 지난해 개정된 노동조합법은 근로계약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근로조건을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자를 사용자로 보는 조항을 신설했다. 다만 경과규정이 없어 2020년 교섭 거부로 문제가 된 이번 사건에는 옛 노동조합법이 적용됐다.

옛 노동조합법에 따라 단체교섭 의무를 부담하는 사용자는 '근로자를 지휘·감독하면서 근로를 제공받고 임금을 지급할 목적으로 명시적 또는 묵시적 근로계약 관계를 맺은 자'라는 기존 법리가 유지됐다. CJ대한통운과 집배점 택배기사 사이에 이런 관계를 인정하기 어려운 만큼 회사를 단체교섭 의무를 부담하는 사용자로 볼 수 없다는 결론이다. 실질적 지배력을 근거로 교섭 의무를 인정한 원심에 대해선 "법리 오해"라고 못 박았다. '교섭 상대' 범위로 갈등…대법, 기존 법리 유지옛 노동조합법상 원하청 교섭을 둘러싼 핵심 쟁점은 단체교섭 상대방이 되는 사용자의 범위를 어디까지 볼 것인지였다. 하급심은 노동3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하려면 근로조건을 지배·결정하는 원청도 교섭 당사자에 포함할 수 있다고 봤던 것. 회사의 단체교섭 거부, 노조 운영에 대한 지배·개입은 모두 부당노동행위인 만큼 사용자 개념을 달리 볼 이유가 없다는 판단도 제시됐다. 교섭에 응할 의무와 노조 요구대로 단체협약을 체결할 의무는 구분된다고도 판시했다.

반면 원청 측은 단체교섭과 단체협약이 근로계약의 내용을 형성·변경하는 제도이기 때문에 반드시 '계약 관계'가 전제돼야 한다고 맞섰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지난 5월 HD현대중공업 사건에서 이 논쟁에 먼저 마침표를 찍었다. 사내하청 노조가 원청을 상대로 단체교섭을 청구한 사건에서 원고패소 판결을 확정했다. 사내하청업체들이 별도 급여체계, 취업규칙, 인사관리 규정을 운영하면서 근로자에게 직접 임금을 지급한 점 등을 이유로 들었다. HD현대중공업과 하청 근로자 사이에 묵시적 근로계약 관계가 없어 교섭 상대가 되지 않는다고 판단한 것이다.

전원합의체는 노조 운영에 지배·개입한 부당노동행위의 주체와 단체교섭 의무를 부담하는 사용자를 달리 봐야 한다고 판단했다. 단체교섭은 계약 관계에 관한 근로조건의 유지·개선을 위한 '단체협약 체결'을 전제로 한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면서 교섭 상대의 범위는 개별 근로계약 관계의 존재 여부와 밀접하게 연관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실질적 지배력' 사실상 부정…"보완입법 필요"CJ대한통운과 HD현대중공업 판결은 옛 노동조합법이 적용되는 사건의 경우 실질적 지배력만으로 원청의 교섭 의무를 인정할 수 없다는 기준을 재확인했다. 법원이 해석을 통해 개정 노동조합법과 사실상 같은 법리를 만들어 과거 사건에 적용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지적이다. 다만 개정법 시행 이후 사건은 신설 조항의 문언과 취지에 따라 별도로 판단해야 한다. 이 때문에 원하청 간 교섭 불확실성은 여전한 상황이다.

대법원의 거듭된 판결로 옛 노동조합법이 적용되는 현대제철, 한화오션, 백화점·면세점 업계 등의 유사 분쟁에선 기업 측에 유리한 기준이 굳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법 개정 전 제기된 원하청 교섭 소송과 노동위원회 사건에서 대법원 법리가 핵심 판단 기준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다만 원하청 근로자 사이에 실제로 명시적·묵시적 근로계약 관계가 인정되는지 여부는 사업 구조, 지휘·감독 방식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CJ대한통운 사건도 아직 파기환송심 판단이 남은 상태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는 이번 판결을 계기로 보완입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경총은 전날 입장문을 통해 "대법원이 단체교섭 의무의 근거가 '명시적·묵시적 근로계약'임을 재차 확인함에 따라 보완 입법의 필요성이 더욱 커졌다"며 "개정 노조법은 시행 4개월이 되었지만 산업현장에서는 실질적 지배력 유무와 범위에 대한 다툼이 끊이지 않고 있다. 정부와 국회는 사용자 범위를 명확히 하고 노동쟁의 대상도 인사·경영권 등 고도의 경영상 의사결정은 제외하도록 재조정하는 등 보완 입법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김대영 한경닷컴 기자 kd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