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가서도 생각날 맛" 외국인도 반했다…MZ 줄 세운 음식 [김기자의 알고리즘]

입력 2026-07-12 16:00
수정 2026-07-12 17:11
학교 앞 분식집에서 컵떡볶이를 사 먹던 아이들이 자라 이제는 망원동 묵집 앞에 섰다. 종이컵에 담긴 떡볶이를 들고 먹던 손에는 이제 '컵묵밥'이 들려 있다.

서울 마포구 망원동 묵 전문점 '묵사랑'의 이야기다. 최근 이곳은 도토리묵을 반찬이나 술안주가 아니라 컵에 담아 간편하게 즐기는 한 끼 메뉴로 선보이며 젊은 세대 사이에서 빠르게 입소문을 타고 있다. ◇ "일본 가서도 생각날 맛"…외국인까지 사로잡은 '컵묵밥'평일 점심시간이 조금 지난 오후, 묵사랑 매장은 이미 매일 아침 직접 쑤는 묵이 모두 동난 상태였다. 주문할 수 있는 메뉴는 컵묵밥뿐이었지만 매장 안은 여전히 활기로 가득했고, 젊은 손님들의 발길도 끊이지 않았다.

더운 날씨 탓인지 손님들은 살얼음이 동동 뜬 컵묵밥을 한 입 넣을 때마다 연신 감탄사를 터뜨렸다. 한 그릇을 깔끔하게 비운 손님이 그 자리에서 곧장 한 컵을 더 주문하는가 하면, 길을 지나가다 신선한 간판에 이끌려 들어오는 손님도 눈에 띄었다.

손님들이 이곳을 찾은 이유는 거창하지 않다. 매장에서 만난 한 손님은 "날이 더워서 시원해 보였고, 묵을 이렇게 파는 게 신기해서 들러봤다"며 "페스티벌 같은 곳에 있으면 가볍고 시원하게 먹기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외국인 관광객의 입맛도 사로잡았다. 일본에서 왔다는 한 손님은 컵묵밥을 먹은 뒤 "맛있다. 일본에 가서도 생각날 것 같다"고 했다. 그는 "일본에서 한국 사람이 좋아하는 건강한 음식으로 소개하면 일본에서도 인기가 있을 것 같다"고 했다.

이 작은 묵집이 까다로운 젊은 세대의 발길을 사로잡은 배경에는 가업을 이어받은 2세 대표의 판단이 있었다. 허혁진 대표는 묵의 맛을 바꾸기보다, 소비자가 묵을 만나는 방식을 바꿔야 한다고 봤다.

◇ 잘나가던 주얼리 사업 접고 묵집 차린 사장의 한 수수년간 주얼리 사업을 해온 허 대표가 처음부터 충남 공주에서 20년 넘게 묵 가게를 운영해 온 아버지의 가업을 이어받을 생각을 한 것은 아니다.

마음을 바꾼 결정적인 계기는 아버지의 건강 악화였다. 아버지가 가게를 그만둘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서야, 평생 곁에 있을 것 같던 묵집이 영영 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이 피부로 와닿았다.

허 대표는 "아버지가 가게를 그만한다고 이야기하셨고, 그 얘기를 들으니 너무 아까웠다"며 "어릴 때부터 묵을 먹고 자랐는데, 그런 공간이 사라진다는 게 아쉬웠다"고 말했다.

아버지는 처음엔 아들의 결정을 말렸다. 허 대표는 "아버지가 굳이 왜 잘하는 일을 그만두고 힘든 일을 하려느냐고 하셨다"고 전했다. ◇ "싫어해서 안 먹는 게 아니다"…시장 공백에 주목도토리묵은 한국인에게 그리 낯선 음식이 아니다. 막걸리집이나 등산로 초입의 식당, 밥상 위 반찬으로 익숙하다. 그러나 젊은 세대가 '굳이' 찾아 먹는 메뉴는 아니었다.

허 대표는 이 지점에서 가능성을 봤다. 사람들이 묵을 싫어해서 안 먹는 것이 아니라, 일상에서 쉽게 사 먹을 만한 접점이 없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었다.

그는 "서울에는 오롯이 묵에만 주력하는 전문점이 거의 없다"며 "시장에 이런 가게가 없는 이유가 사람들이 안 먹어서일까, 아니면 없어서 못 먹는 걸까 고민했다"고 말했다.

어릴 때부터 아버지의 묵을 먹고 자라며 주변 사람들과 도토리묵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많았던 그는 "묵이 별로라며 거부감을 보인 사람은 거의 없었다"며 "그렇다면 결국 없어서 못 먹는다는 방증 아니겠느냐"고 강조했다.

◇ 맛은 그대로, 그릇만 바꿨다허 대표가 서울에서 바꾼 것은 묵의 맛이 아니었다. 그는 "아버지의 묵과 제가 팔고 싶은 묵은 완전히 같다"며 "저는 묵을 새로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전달하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대신 그는 묵을 담아내는 형식을 바꿨다. '컵묵밥'이라는 아이디어는 그의 아내에게서 나왔다. 허 대표는 "아내가 우연히 컵에 냉면을 담아 파는 것을 보고 묵밥에 적용해 보자고 제안했다"며 "그렇게 만든 메뉴를 숏폼(릴스) 영상으로 올렸는데 예상보다 뜨거운 반응이 왔다"고 전했다.

사실 묵밥 자체는 세상에 없던 음식이 아니다. 달라진 것은 소비자가 묵을 소비하는 '맥락'이다. 커다란 대접에 담겨 요리로 나오던 묵이 한 손에 쏙 들어오는 컵에 담기자, 가볍게 들고 다니며 먹을 수 있는 캐주얼한 한 끼 식사로 바뀐 것이다.

허 대표는 이 같은 변화를 '적당한 낯섦'이라는 단어로 설명했다. 그는 "소비자에게 너무 높은 벽이 있어도 안 되지만, 반대로 벽이 너무 낮아도 매력이 없다"며 "컵묵밥이 가진 적당한 변주가 대중에게 매력적인 벽의 높이였던 것 같다"고 분석했다.

완전히 생소한 음식이었다면 거부감이 컸을 테고, 기존의 익숙한 방식 그대로였다면 화제를 모으기 어려웠을 것이다. 누구나 아는 맛인 묵을 컵에 담아낸 작은 '한 끗'이 대중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데 성공한 셈이다.

동시에 허 대표는 단순히 '맛'만을 앞세우는 시대는 지났다고 덧붙였다. 그는 "요즘은 맛있는 음식이 차고 넘치는 세상"이라며 "맛은 기본이고, 이제는 콘텐츠, 문화, 그리고 소비자가 느끼는 경험이 훨씬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렇다고 묵을 지나치게 웰빙이나 건강식으로만 포장하고 싶지는 않다고 했다. 그는 "묵을 건강식으로 거창하게 홍보할 생각은 없다"며 "묵은 원래 그 자체로 맛있는 음식이며, 손님들도 그저 맛있어서 찾는 음식이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 약과와는 다르다…조연에서 주인공 된 묵과 우뭇가사리이처럼 익숙한 전통 재료의 형식을 바꿔 성공한 사례는 이미 제주에서도 증명된 바 있다. 우뭇가사리로 만든 푸딩 브랜드 '우무(umu)'다. 우뭇가사리는 묵으로 만들어 콩국에 말아 먹거나 곁들이는 재료로 쓰였다. 우무는 이를 '푸딩'이라는 디저트로 독립시켜 주인공으로 끌어올렸다.

두 사례의 공통점은 세상에 없던 새로운 재료를 내놓은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미 존재하던 식재료를 반찬이나 곁들임 수준에 묶어두지 않고, 하나의 독립된 상품으로 재정의해 시각적인 변화를 줬다.

이 흐름은 최근 화제가 된 약과, 흑임자 등 열풍의 흐름과는 조금 다르다. 이들은 도넛, 스콘, 쿠키 등 이미 대중화된 디저트 형식에 올라타며 퍼졌다. 기존 유통 경로와 소비 방식 위에 익숙한 맛을 얹은 방식이었다.

반면 도토리묵이나 우뭇가사리는 기존 시장에서 독립된 메뉴로 소비되는 접점 자체가 매우 약했다. 묵사랑과 우무가 해낸 일은 기존 과자류나 빵집 부류에 편입된 것이 아니라, '컵'과 '후식'이라는 새로운 형식을 통해 자신들만의 독자적인 영역을 개척했다는 분석이다.

◇ "대량 생산"이라는 다음 관문다만 허 대표는 향후 사업 확장의 가장 큰 걸림돌로 '생산성'을 꼽았다. 전통 방식의 맛있는 묵을 만들기 위해서는 소량 생산이 불가피하고 신선도 유지를 위한 보관과 유통에도 물리적인 한계가 따르기 때문이다.

그는 "맛있는 묵을 제대로 만들려면 소량 생산이 될 수밖에 없다"면서도 "하지만 아무도 하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에 방법을 찾아내지 못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저는 한다면 하는 사람이다. 치열하게 고민한다면 분명 해결책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묵이 더 많이 선택받기 위해 필요한 것으로는 접근성을 꼽았다. 허 대표는 "묵이 많이 보여야 한다"며 "묵이라는 음식을 다루는 사람들이 많아져야 하고, 사람들이 자주 묵에 노출돼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지금의 화제성이 꼭 바라던 방향은 아니라고 했다. 허 대표는 "제가 이렇게 잘되는 게 저한테는 그렇게 좋은 일은 아니다. 제가 원하던 그림도 아니다"라며 "그냥 잔잔하게 오래가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가 묵을 알리고 싶은 방식도 비슷하다. 허 대표는 "힙한 묵집"이라는 반응에 대해서도 "힙한 건 언제든지 다시 트렌드가 바뀔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맛있는 건 영원하다"며 "그냥 '여기 묵집 맛있다'는 걸로 인식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김희선 한경닷컴 기자 gimme_s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