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저장장치(ESS)를 미래 먹거리로 점찍고 투자를 늘리고 있는 배터리업계가 ‘후공정 병목’이란 예상치 못한 암초를 만났다. ESS 배터리셀 생산 후 협력업체가 이를 조립하는 작업이 지연되면서 생산량이 기대만큼 늘지 않고 있다는 분석이다. 배터리사는 후공정 업체의 기술·인력 구성이 안정화하는 올해 4분기 이후 생산이 본궤도에 오를 것으로 보고 있다. ◇시장 기대 못 미치는 ESS 매출
9일 배터리업계에 따르면 LG에너지솔루션과 삼성SDI, SK온 등 배터리 3사는 후공정 병목 현상을 겪고 있다. 그 결과 지난 2분기 ESS 매출이 시장 기대치를 밑돌았다. NH투자증권은 LG에너지솔루션의 지난 분기 ESS 부문 매출이 2136억원으로 전 분기(1606억원) 대비 33.0% 늘어나는 데 그쳤다고 분석했다. 증권업계가 예상한 LG에너지솔루션의 ESS 부문 매출 증가율은 전 분기 대비 최소 40% 이상이었다.
배터리 후공정은 ESS용 배터리셀을 모듈화해 팩 형태로 조립하는 과정이다. 배터리셀 생산은 배터리 제조사가, 후공정은 협력업체가 맡는다. 배터리사가 소재사에서 받은 양극재와 음극재, 분리막, 전해액 등을 활용해 배터리의 기본 단위인 셀을 생산해 협력사에 넘기는 방식이다. 협력사는 셀을 모듈과 팩으로 조립한 뒤 배터리관리시스템(BMS)을 장착하고 추가 작업을 해 ESS 완성품을 제조한다.
업계는 후공정이 지연되는 1차 원인으로 숙련 인력 부족을 지목했다. LG에너지솔루션은 미국 미시간주 홀랜드 공장 등 북미 주요 거점 다섯 곳에서 ESS셀을 생산하고 있고, 피플웍스 등 후공정 업체 역시 이들 공장 근처에 미국 현지 공장을 세웠다.
하지만 이들은 미국에서 숙련 인력 투입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장비 설치와 공정 세팅, 불량 원인 분석은 경험 많은 한국 엔지니어가 맡아야 하는 경우가 많지만, 비자 문제 등으로 전문 인력을 투입하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해 9월 LG에너지솔루션과 협력사 직원들이 미국 현지에서 이민당국에 구금된 사건 이후 출장 인력 운용이 더 조심스러워졌다는 설명이다. ◇LFP 후공정에 어려움기술적인 난관도 있다. 협력사들은 삼원계 배터리 중심으로 후공정을 해오다 보니 리튬·인산철(LFP) 배터리팩 조립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배터리 후공정은 단순 조립이 아니라 셀의 화학적 특성과 용도에 맞춰 모듈과 팩 구조를 새로 설계하고 검증하는 작업”이라며 “LFP는 셀 특성과 열관리 방식, 팩 설계 기준이 삼원계와 달라 속도가 나지 않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전기차용 배터리팩과 달리 컨테이너 안에 수많은 모듈을 쌓아 대용량 시스템으로 구성하는 ESS만의 조립 기술도 필요하다.
삼성SDI와 SK온의 미국 현지 공장에서도 비슷한 일이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도 기존 공장을 ESS 생산 라인으로 활용하기로 했다. 병목 현상은 4분기 이후 풀릴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 본사와 협력사 엔지니어 투입을 늘리고, 현지 인력의 숙련도가 올라가면 생산 속도가 빨라질 수 있다는 게 업계 설명이다. LFP 기반 ESS 팩 설계와 컨테이너 시스템 통합도 시행착오를 거쳐 연말부터 안정화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나온다.
김우섭 기자 dut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