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프리즘] 두 점의 무게, 도전자 된 인간

입력 2026-07-09 17:35
수정 2026-08-14 09:13
흑돌 두 개. 신진서 9단이 오는 17일부터 세 번의 대국(한국경제TV, 바둑TV)에서 바둑판에 먼저 내려놓을 이 두 점은 인류가 인공지능(AI)에 접근할 수 있는 물리적 한계 거리다. 10년 전 이세돌 9단은 알파고와 맞바둑을 뒀다. 당시 도전자로 나선 알파고는 세계 최강 이세돌과 동등한 조건으로 마주 앉았고, 세계는 숨죽인 채 지켜봤다. 하지만 2026년 7월, 현재 세계랭킹 1위 신 9단은 두 점을 먼저 깔고 앉는다. 달라진 건 바둑판의 돌 두 개만이 아니다. ‘알파고 쇼크’ 이후 지난 10년간 놀라운 속도로 발전한 AI는 이제 직관과 추론 영역에서마저 인간을 압도한다.

10년 만에 인간은 도전자로 내려왔다. 수천년간 인간계 최고 자리에서 바둑의 신을 향한 도전을 꿈꿔온 인류가 이제 상대가 핸디캡을 받아야만 싸울 수 있는 처지가 된 것이다. 이 역전의 속도와 폭을 직시하지 않으면 이번 대국의 의미와 그 너머의 함의를 읽을 수 없다.

2016년 3월, 알파고는 이 9단과의 다섯 번 대국에서 네 번 이겼다. 세계에 충격을 안긴 대결에서 인간은 단 한 번 승리했다. 이 9단의 78번째 수, ‘신의 한 수’는 인류가 AI와의 맞바둑에서 이긴 마지막 기록으로 바둑 역사에 남아 있다. 그 이듬해 알파고는 당시 세계 1위 중국 커제 9단마저 3전 전승으로 꺾고 바둑계를 은퇴했다. 여기까지가 일반이 기억하는 ‘알파고 쇼크’의 전말이지만 AI는 그 이후 무섭게 진화했다.

오픈소스 기술을 기반으로 등장한 바둑AI 카타고는 ‘신공지능’(신진서+인공지능)으로 불리는 신 9단조차 맞바둑으로 상대할 수 없는 수준으로 발전했다. 이전의 알파고가 증기기관차라면 카타고는 자기부상열차라고 할 만한 기력 차다. 이제 세계 프로기사들은 카타고로부터 바둑을 배운다. 스승이 된 AI 앞에서 인간은 이미 학생이다. 바둑판에서 벌어지는 일만이 아니다. AI는 법률 회계 의료 금융 등 전문직 영역부터 하나씩 점령해나가고 있다. 바둑은 이런 현실의 상징이자 거울이다.

그렇다면 이번 대국은 패배를 알면서 뛰어드는 의미 없는 도전일까. 그렇지 않다. 2점 접바둑은 한계를 받아들이는 표시가 아니라 그 경계에서 얼마나 버틸 수 있는지를 가늠해보는 인간의 응전이다. 신 9단이 이를 수용한 것은 인간 능력의 한계를 직접 확인해보겠다는 의지의 천명이다. 그는 인터뷰에서 “바둑의 신 AI에 두 점으로 버틸 수 있음을 증명하고 싶다”고 했다. 이번 대국의 증명 대상은 AI가 아니라 인간 자신이다. 카타고는 수당 20초, 신 9단에게는 초읽기 제한 없이 합산 5시간이 허용된다. 속도가 아니라 깊이로 싸우겠다는 의미다.

AI에 핸디캡을 줘야 인간 최강과의 게임이 성립한다는 것 자체가 AI 혁명의 현주소를 가장 솔직하게 보여주는 장면이다. AI가 등장하기 전 초일류 고수 사이에서는 “만약 바둑의 신과 겨룬다면 석 점을 깔고 두겠다”는 말이 있었다. 이제 그 신은 실재한다. 인간 최강은 석 점이 아니라 두 점으로 도전한다. 한 점의 차이가 작아 보이지만 그 한 점을 줄여 다시 도전하는 데 10년이 걸렸다. 두 점은 인류가 AI에 대해 갖고 있는 자존심의 마지막 거리인지 모른다.

두 점 승부의 끝에 어떤 결과가 기다리든, 이번 대국의 진정한 가치는 그 전개 과정에 있다. 어떤 상황에서 카타고가 흔들리고, 신 9단의 어떤 묘수가 예상 밖 국면을 만들어내는지를 지켜보는 것 자체가 AI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를 돌아볼 기회다. 10년 전 완패의 끝자락에서 인간 창의성에 영감을 불어넣은 이세돌의 78수처럼 두 점을 깔고 앉아 바둑의 신을 향해 돌을 놓는 신 9단은 격변의 AI 시대를 헤쳐나가는 우리 모두의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