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또 전문가들만 모인 정보보호의 날

입력 2026-07-09 17:30
수정 2026-07-10 00:10
“인공지능(AI)을 활용한 공격이 더욱 정교해지면서 국가 산업 전반과 국가 안보를 위협하는 수준으로 확대되고 있습니다.”

지난 8일 서울 장충동 신라호텔에서 열린 ‘제15회 정보보호의 날’ 기념식에서 송기호 국가안보실 3차장이 대독한 이재명 대통령 축사다. AI 시대 사이버 위협이 국가 안보의 핵심이라는 사실을 짚었다.

행사장 안팎의 풍경은 축사의 무게와는 다소 달랐다. 담당 부처 수장도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도 보이지 않았다. 거창한 포부와 달리 현장은 보안 전문가들만 모인 ‘그들만의 축제’였다.

이번 행사는 여느 해와 다를 것으로 기대됐다. 지난해 연이어 발생한 SK텔레콤, KT, 쿠팡 등의 대형 해킹 사고와 연초부터 전 세계를 뒤흔든 ‘미토스 사태’를 겪은 직후였기 때문이다. 보안이 국가 안보와 직결된다는 것을 체감한 만큼 올해는 정부와 산업계의 각성이 행사의 격(格)을 높여줄 것으로 생각됐다. 실제로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수장인 배경훈 부총리 겸 장관이 참석을 확정하면서 통신 3사 최고경영자(CEO)도 행사에 오기로 했다. 정보보호가 단순한 정보기술(IT) 보안 실무가 아니라 CEO들이 모여 논의해야 할 국가적 과제라는 공감대가 형성되는 듯했다.

하지만 행사를 하루 앞두고 분위기가 달라졌다. 배 부총리가 이 대통령의 해외 순방에 동행하게 된 게 도화선이었다. 배 부총리가 빠지고 류제명 2차관이 온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CEO들도 뒤따라 개인 일정을 핑계로 ‘불참’을 통보했다. CEO가 빠진 자리는 최고정보보호책임자(CISO)가 차지했다. 정보보안을 가장 잘 알고, 그 일만 하는 인사들이었다.

결국 이날 기념식은 관례를 반복했다. 대통령 축사는 송 차장이 대독했고, 배 부총리의 무게는 류 차관이 짊어졌다. CEO 대신 보안의 중요성에 대해 잘 아는 CISO들이 이 얘기를 들었다. 김승주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이번 행사는) 지금 우리 정보보호 분야의 현실이자 위상을 그대로 보여준다”며 안타까워했다.

정보보호의 날은 국가 기능이 마비된 2009년 7·7 디도스(DDoS) 사태를 계기로 정해진 법정기념일이다. 당시 수많은 정부 기관과 포털 사이트가 마비되며 정보보호 분야에 소홀했던 대가를 혹독히 치렀다. 그로부터 17년이 흐른 지금 우리가 마주한 위협은 디도스 수준을 아득히 넘어선다. AI를 무기로 삼은 해커와 해커가 아예 없는 첨단 AI가 개인정보와 국가정보를 수시로 털고 있다. 정보보호는 특정 분야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안보와 산업 경쟁력을 좌우하는 인프라가 된 지 오래다. 내년 정보보호의 날엔 달랐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