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서재를 정리하다가 우연히 윤오영 작가의 소설 ‘방망이 깎는 노인’을 펼쳐 들었다. 손님의 눈에는 이미 다 깎인 듯 매끈해 보이는 방망이였지만, 노인은 몇 번이고 손으로 쓸어보고 다시 칼을 댄다. 손님에게는 그저 고집스러워 보였던 그 집요함이, 훗날 방망이를 직접 써본 뒤에야 명품을 만들기 위한 장인의 정성이었음을 깨달았다.
책장을 덮으며 노인에게 왠지 모를 동질감이 느껴졌다. 노인의 장인 정신은 자구 하나, 문장 한 줄을 치밀하게 들여다보고 가다듬는 법제처의 업무와 닮았다. 아무리 좋은 뜻을 품은 정책이라도 법령으로 구현되는 과정이 정교하지 못하면 현장에서는 혼선이 생기고 국민은 불편을 겪는다. 법제처가 조문 하나하나에 정성을 들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법제처는 각 부처가 입안한 법령안이 헌법과 상위법에 부합하는지, 입법 목적과 법적 타당성을 충분히 갖췄는지 등을 다각도로 검토한다. 국민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어려운 용어와 복잡한 문장을 다듬고, 해석상 혼란이 생길 수 있는 표현을 명확히 하는 등 자구와 체계를 심사한다. 법령심사 과정에서 불합리하거나 불명확한 규정을 발견하면 관계 부처와 협의해 수정하거나 삭제하기도 한다.
치밀한 장인정신은 현 정부의 핵심정책과 개혁 입법이 민생 현장에 신속히 안착하도록 돕는 전방위적 입법 지원으로 이어진다. 지난해 정부가 발표한 ‘노동안전 종합대책’의 법제화 과정이 대표적이다. 법제처는 산업재해 예방대책 마련을 위한 관계 부처 회의에 여러 차례 참석해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또 소관 부처와 실무 간담회를 통해 정책 목표와 현장의 목소리를 산업안전보건법 등에 조화롭게 반영했다. 동시에 과징금 등 새로운 제도가 과도한 규제로 작용하지 않도록 균형 잡힌 시각으로 규정을 조율했다. 올해도 산업안전보건법 시행규칙 심사를 신속히 완료해 국정과제가 현장에서 조속히 실현되도록 뒷받침했다.
국민에게 필요한 좋은 법령을 적기에 만들어내는 것이 법제처의 핵심 역할이다. 법제처는 민생정책이 시의성 있게 집행될 수 있도록 통상적인 절차보다 한발 빠르게 입법예고 단계부터 법령 심사를 진행하기도 한다. 아픈 노동자의 산업재해보상 처리 기간을 단축하기 위한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시행령·시행규칙 개정도 입법예고 기간에 미리 심사해 법적 쟁점을 사전에 해소하고 차질 없이 마무리하도록 했다. 정성을 들이면서도 시기를 놓치지 않는 이런 노력은 국민이 정책의 온기를 하루라도 빨리 체감하도록 돕는다.
법제처의 역할은 소관 부처의 입안 작업이 끝난 뒤에야 시작되는 게 아니다. 입안 초기부터 법적 쟁점을 함께 고민하고 법안 작성의 부담을 덜어주는 법령입안 지원도 활발하게 펼치고 있다. 1~2주 단위의 단기 육아휴직 제도를 도입하기 위한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남녀고용평등법) 개정 과정에서 법제처는 소관 부처에 조문 구성 등 맞춤형 자문을 선제적으로 제공했다. 이를 통해 입법 속도를 높이고 법안의 완성도를 끌어올릴 수 있었다.
법은 비록 종이 위에 차가운 활자로 존재하지만 그 본질은 국민의 삶과 일터를 감싸는 따뜻한 품이어야 한다. 이는 공직에 몸담으며 늘 가슴 깊이 새겨온 다짐이다. 법제처를 거쳐 간 조문 하나하나가 튼튼한 사회안전망이 되도록, 법제 장인의 자세로 묵묵히 소임을 다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