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임신한 여성의 입국을 제한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출생시민권을 제한하려던 행정명령이 연방대법원에서 위헌 결정을 받은 데 대한 대응이다.
미국 온라인매체 액시오스는 1일(현지시간) 트럼프 정부가 임신한 여성의 미국 입국을 차단하는 ‘플랜B’ 정책을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액시오스는 “임신, 여행, 시민권을 둘러싼 새로운 이민 논쟁이 촉발될 것”이라며 “논의의 초점이 미국에서 태어난 아이의 권리를 문제 삼는 것에서 누구를 미국에 입국시킬지 제한하는 문제로 옮겨가게 됐다”고 전했다. ◇ “원정출산, 법으로 처벌”전날 미 연방대법원은 수정헌법 14조에 기반해 속지주의 원칙의 출생시민권 제도를 유지한다고 결정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1월 취임 직후 영주권이 없는 임시 체류자와 불법 체류자가 낳은 아이에게 시민권 부여를 금지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트럼프 행정부 각료들은 대법원 결정에 비판을 쏟아냈다. 스티븐 밀러 백악관 부비서실장은 “비(非)시민권자에게서 태어난 아이도 미국 시민권을 취득하고 사회 안전망 혜택을 누릴 수 있다”며 “설령 일시적인 방문이라도 누구를 입국시킬지 매우 신중하게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애비게일 잭슨 백악관 대변인은 액시오스에 “트럼프 행정부는 미국 시민권을 보호할 다양한 도구를 보유하고 있다”며 “우선적으로 법무부가 출생관광(원정출산) 조사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미 법무부는 즉각 행동에 나섰다. 연방대법원 결정이 나온 후 콜린 맥도널드 법무차관은 ‘사기적 출산관광 행위에 대한 기소’ 문서를 법무부 소속 모든 직원에게 발송했다. 맥도널드 차관은 이 문서에서 “미국 시민권의 특권을 악용해 매년 수천 명의 외국인이 허위 사유로 미국에 입국해 출산한 후 자녀의 시민권을 확보한다”며 “이미 존재하는 연방법(비자 사기)으로 처벌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미국 전역의 모든 검사 및 형사국에 국토안보부(DHS)와 협력해 원정출산 문제를 수사·기소에서 우선순위로 삼도록 지시했다. 비자 사기 외에 자금세탁, 신원 확인 수단 부정 사용 등 다른 연방법 위반 여부도 검토하라고 권고했다.
구체적인 원정출산 사례도 제시했다. 이 문서에 따르면 뉴욕에서 튀르키예어로 SNS 광고를 통해 원정출산을 유도한 사람이 2022년 의료보험사기와 전신사기 공모 혐의로 징역 27개월에 배상금 및 몰수금 판결을 받았다. 또 USA해피베이비라는 법인을 설립해 중국인에게 원정출산 관광을 알선한 부부에게 징역 41개월을 선고한 사례가 있다. ◇ 임신부 어떻게 구분하나트럼프 대통령은 이민자가 미국에서 아이를 낳은 뒤 ‘미국인’ 아이를 앞세워 전 가족의 이주를 추진하는 이른바 ‘앵커베이비’ 문제를 오랫동안 비판해 왔다. 미국에서 태어나는 아기는 연 360만 명 수준이다. 이 중 영주권이나 시민권이 없는 외국인 부모에게서 태어나는 아기는 약 32만 명으로 추정된다. 모두 불법은 아니며 일부는 학업, 직장, 사업 등의 이유로 합법적인 체류 중에 아이를 낳는다. 의도적인 원정출산으로 태어난 아기 수와 관련해서는 공식 집계가 없다. 퓨리서치센터는 9000명, 이민정책연구소(MPI)는 2만6000명 선으로 기관마다 다양한 추정치가 존재한다.
원정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임신한 여성의 입국을 임의로 차단할 수 있다는 트럼프 정부의 구상이 실현되면 현장에서 적지 않은 문제가 발생할 것으로 예상된다. 임신 여부를 정부가 확인하거나 출산 예정 시기를 파악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기 때문이다. 당사자가 임신을 인지하지 못했을 가능성도 있다.
육안으로 임신 여부를 판단하기 쉽지 않은 가운데 미국 여권 발급을 위해 임신과 관련한 의료 기록을 여성에게 요구하게 될 수도 있다. 케이티 오코너 미국 여성법센터 낙태정책 담당 수석이사는 액시오스에 “누가 임신했는지, 임신한 지 얼마나 됐는지에 대한 데이터가 연방정부와 주정부 손에 들어간다는 것은 정말 위험한 일”이라고 비판했다.
원정출산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 외국인의 여행도 제한될 수 있다. 한국의 경우 하와이 신혼여행과 괌 태교여행 등이 크게 줄어들거나 사라질 수 있다. 당장 업계 종사자 및 지역 거주자의 반발을 부를 수 있는 사안이다.
워싱턴=이상은 특파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