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2년 오스트리아의 한 법정. 재판장은 증거물로 제출된 한 장의 그림을 사람들 앞에서 직접 불태운다. 그림을 그린 이는 스물두 살의 젊은 화가였다. 그의 죄목은 '외설'. 노골적인 나체 그림을 그렸다는 것이다. 법은 그 그림이 공공의 도덕을 타락시킨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한 세기가 흐른 지금, 그림을 남긴 화가는 세계 미술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거장이 됐다. 바로 에곤 실레다. 그렇다면 변한 것은 그림일까, 아니면 그림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일까.
신간 <선 넘는 미술사>는 바로 이 질문에서 출발한다. 저자 이지호는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중반까지 모더니즘 시대를 중심으로 누드화를 둘러싼 예술과 검열의 역사를 추적한다. 오늘날 미술관에서 아무렇지 않게 감상하는 작품들이 한때는 법정에 서고, 압수되고, 전시가 금지됐다는 사실은 독자의 호기심을 단번에 붙든다.
오랫동안 서양 미술에서 누드는 신화와 종교라는 안전한 틀 안에서 존재했다. 비너스와 성인들의 육체는 아름다움과 숭고함의 상징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근대에 들어 화가들은 더 이상 이상적인 몸만을 그리지 않았다. 욕망하고, 늙고, 뒤틀리고, 현실을 살아가는 인간의 몸을 화폭에 담기 시작했다. 그 순간 누드는 미의 대상에서 사회적 논쟁의 대상으로 바뀌었다.
책은 이런 변화를 미술사의 흐름으로 설명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에곤 실레를 비롯해 구스타프 클림트, 에두아르 마네, 귀스타브 쿠르베, 앙리 드 툴루즈 로트레크, 아메데오 모딜리아니 등 시대를 대표하는 예술가들의 작품이 왜 위험한 것으로 간주됐는지, 당시 사회가 무엇을 두려워했는지를 역사적 사건과 재판 기록, 사회 분위기를 함께 엮어 입체적으로 풀어낸다. 그리고 그 도전들이 결국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야를 넓혀왔다는 것이다.
책은 '예술은 무조건 자유로워야 한다'는 주장으로만 흐르지 않는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오히려 '예술은 언제 외설이 되는가', '그 경계는 누가 결정하는가'라는 질문을 독자에게 되돌린다.
시대마다 검열의 주체는 달라졌다. 과거에는 교회와 국가, 판사와 배심원이 그 역할을 맡았다면 오늘날에는 플랫폼의 알고리즘과 커뮤니티 가이드라인이 새로운 심판자가 됐다. 표현의 자유를 둘러싼 논쟁이 현재진행형임을 환기하는 대목이다.
저자는 미국 스쿨오브비주얼아트에서 현대미술사와 조소, 회화를 공부하고 서던캘리포니아대에서 아트&테크놀로지를 전공했다. 이후 국내 현대미술 기획사에서 다수의 국제 전시 프로젝트에 참여했으며, 한경아르떼 칼럼니스트로도 활동하고 있다. 이런 이력을 바탕으로 전문성을 갖추면서도 어렵지 않게 썼다.
작품 자체보다 작품이 세상과 충돌했던 순간들에 초점을 맞춰, 미술사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도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다. 다만 학술적인 미술사 연구서나 작품 분석을 기대하는 독자라면 다소 아쉬울 수도 있다.
설지연 기자 sj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