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칭의 낙관, 3인칭의 위험 [EDITOR's LETTER]

입력 2026-07-05 04:52


하는 일이 하는 일이다 보니 여러 기사를 읽게 됩니다. 그러다 크게 보도되진 않았지만 눈에 확 들어온 기사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AI 회사 앤트로픽이 9700명의 AI 사용자를 대상으로 사람들이 AI를 어떻게 쓰고, 그 결과 자신의 일과 미래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들여다본 보고서에 관한 기사였습니다. 앤트로픽은 요즘 가장 주목받는 AI 서비스 ‘클로드’를 만든 회사입니다. 내친김에 보고서를 직접 찾아 읽었습니다. 마침 앤트로픽이 서울에 사무실을 열고 한국 AI 생태계와의 파트너십을 발표한 시점과도 겹쳐 있었습니다. ‘먼 나라의 기술’이 ‘내 산업의 현실’로 자리를 옮긴 신호처럼 읽혔습니다.

보고서에서 가장 먼저 눈에 걸린 것은 상식을 뒤집는 결과였습니다. AI에게 일을 많이 맡기는 사람일수록 자기 미래를 더 낙관한다는 점입니다. 응답자의 86%는 AI 덕분에 생산성이 올랐다고 답했고, 35%는 앞으로 12개월 안에 AI가 자기 업무의 대부분을 처리할 것으로 봤습니다. 그런데 보수, 고용 안정, 새 일자리를 찾을 가능성까지 좋아질 것이라 답한 쪽은 AI를 조심스럽게 쓰는 사람들이 아니라 AI에 더 많은 판단과 실행을 맡긴 사람들이었습니다. “AI가 일자리를 빼앗는다”는 익숙한 공포 서사와는 정반대의 풍경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안도하면 안 됩니다. 진짜 질문은 그다음에 나오기 때문입니다. 그 낙관은 누구를 향한 것인가.

같은 조사에서 사람들은 자기 자신보다 남의 실직을 훨씬 크게 걱정했습니다. 특히 후배를 걱정했습니다. 응답자의 33%는 “내 주니어 동료가 내년에 일자리를 잃을 확률이 60%를 넘는다”고 봤습니다. 자신에 대해 그렇게 답한 사람은 약 10%에 그쳤습니다.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나는 AI 덕분에 더 강해진다. 하지만 내 후배는 위험하다.” 낙관은 철저히 1인칭이었고, 위험은 언제나 3인칭이었습니다.

이 대목에서 칼럼을 닫으면 그저 남 이야기가 됩니다. 저를, 그리고 우리를 겨누는 문장은 그다음에 숨어 있었습니다. 소득이 높은 나라일수록, 경력이 오래된 사람일수록 ‘AI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더 낮게 평가했다는 대목입니다. 고소득국은 저소득국보다, 경력 15년 이상은 신입보다 각각 10%포인트가량 AI의 현재 역량을 박하게 봤습니다.

이유는 그럴듯합니다. 오래 일한 사람은 AI가 쉽게 흉내 낼 수 없는 판단력과 맥락, 사람을 다루는 감각을 몸에 쌓았다는 논리입니다. 응답자들은 ‘AI가 끝내 못할 일’로 판단력과 상황 감각, 신뢰와 사람 관리 능력을 꼽았습니다.

문제는 바로 그 ‘그럴듯함’입니다. 나를 안전하게 만들어준다고 믿는 숙련이 동시에 변화를 정면으로 보지 못하게 하는 렌즈가 될 수도 있다는 위험입니다. 오랜 경험은 분명 힘입니다. 그러나 그 힘은 자기 확신으로 굳고, 자기 확신은 시야를 좁힙니다. 우리를 대체 불가능하다고 느끼게 하는 숙련과 지위가 곧 우리의 사각지대가 되지 않을까 하는 겁니다. 낯설지 않은 착시입니다. 팬데믹 때도 사람들은 나라 경제는 어둡게 보면서 “내 형편만은 괜찮다”고 답하곤 했습니다. 위험은 늘 저 바깥에 있었고, 위기는 늘 남들의 것이었습니다.

물론 이 보고서가 노동시장의 예언서는 아닙니다. 응답자는 이미 AI를 쓰는 사람들, 그중에서도 기술직과 관리직이 많은 표본입니다. 그러나 바로 그래서 더 흥미롭습니다. 가장 먼저 AI를 몸으로 쓰는 사람들조차 어떤 착시 속에 들어가 있는지를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같은 보고서의 또 다른 발견은 출구를 가리킵니다. 임금이 높은 업무일수록 AI는 사람을 밀어내기보다 사람과 함께 더 많이 만들어냈습니다. AI가 더 많이 생산하는 동안 사용자도 더 깊이 관여했습니다. 관여를 놓지 않는 자에게 AI는 보완이었고, 손을 놓은 자에게는 대체였습니다.

결국 AI 시대의 핵심 질문은 “AI가 내 일을 빼앗을 것인가”가 아니라 “나는 여전히 문제를 정의하고 있는가”입니다. AI는 대답을 빠르게 만듭니다. 그러나 어떤 질문을 던질지, 어떤 맥락을 붙일지,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남길지는 아직 사람의 몫입니다. 숙련자의 가치는 이제 더 오래 해봤다는 데 있지 않습니다. 더 좋은 질문을 던질 수 있느냐에 있습니다.

조직의 과제도 여기서 나옵니다. 후배의 미래를 걱정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AI가 없애는 업무와 키우는 업무를 구분하고, 후배에게만 AI 실험을 맡길 것이 아니라 의사결정권자 자신이 AI로 일하는 방식을 바꾸고, 숙련자의 역할을 검토자가 아닌 문제 정의자로 다시 설계해야 합니다. AI 시대에 사라지는 것은 일이 아니라 문제를 정의하지 못하는 숙련일 것입니다.

저 역시 이 칼럼을 쓰는 동안 몇 번이나 손을 멈췄습니다. 제 얼굴이 자꾸 화면에 겹쳤기 때문입니다. 나는 정말 AI를 쓰고 있는가, 아니면 AI를 쓰는 후배들을 평가하고만 있는가. 거울은 언제나 가장 자신 있는 얼굴 앞에서 가장 정직합니다. 숙련이 자부심으로 남을지 사각지대로 굳을지는 결국 그 거울 앞에서 얼마나 오래 버틸 수 있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이홍표 한경비즈니스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