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질 때마다 다시 선 코스피, 100에서 9000까지 도전의 역사[코스피 1만 시대 맞이⑤]

입력 2026-06-29 05:00
수정 2026-06-29 06:21
[커버스토리 : 코스피 1만 시대를 맞이하는 법]



코스피(KOSPI)는 지난 40여 년 동안 수차례 위기를 넘나들며 성장해왔다. 외환위기와 글로벌 금융위기, 코로나19 팬데믹은 시장을 벼랑 끝으로 내몰았다. 하지만 그때마다 새로운 자금과 정책, 산업이 구원투수로 등장했고 증시는 다시 일어섰다. 지수 100포인트로 출발한 코스피가 1만을 바라보기까지 대한민국 자본시장을 지켜낸 결정적 방어전의 순간들을 되짚어본다.

◆‘애국심 펀드’의 심폐소생술, IT·벤처 붐

코스피는 1980년 1월 4일을 기준일로 삼아 지수 100으로 출발했다. 초기 한국 주식시장은 경제의 중심축이라기보다는 산업화 과정에서 형성된 주변부 시장에 가까웠다.

전환점은 1980년대 후반 찾아왔다. 저유가·저금리·저달러로 대표되는 ‘3저 호황’과 1988 서울올림픽이 맞물리며 한국 경제는 고속 성장 궤도에 올라탔다.

증시도 가파르게 상승했다. 코스피 지수는 1989년 처음으로 1000선을 돌파했다. 당시 시장은 건설·금융·무역 업종이 이끄는 이른바 ‘트로이카 장세’가 주도하며 전국적인 주식 열풍을 만들어냈다.

1997년 말 외환위기(IMF사태)가 한국 경제를 직격했다. 대기업들은 연쇄 도산에 빠졌고 국가 부도 위기설까지 나왔다. 증시도 무방비로 무너졌다. 1998년 6월 16일 코스피는 장중 277.37까지 추락하며 280선이 붕괴했다. 1980년대 초 수준으로 되돌아간, 말 그대로 자본시장의 초토화였다.

절망 속에서 쓰러지던 증시를 일으켜 세운 것은 ‘국민의 자본’이었다. 현대증권(현 KB증권)이 내놓은 ‘바이 코리아(Buy Korea) 펀드’는 일본의 거대 기업 NTT를 거론하며 “한국 경제가 해외 기업 한 곳보다 못하냐”는 자극적인 애국심 마케팅을 펼쳤다. 위기 극복을 염원하던 대중의 마음을 움직이기에는 충분했다. 월급쟁이와 농민은 물론 주부와 실직자까지 학자금이나 퇴직금을 보태며 투자 행렬에 가담했다. 불과 수개월 만에 수조원대 자금이 들어오며 시장에 유동성을 공급했다.

국민이 만들어낸 막대한 유동성에 불을 붙인 것은 시대의 격변이었다. PC 보급 확대와 초고속 인터넷 혁명이 맞물리며 IT·벤처 기업들이 증시의 새로운 주역으로 급부상했다. 신산업을 향한 광풍 속에 코스피는 폭락을 딛고 단 1년 만인 1999년 기적적으로 1000선을 회복했다.


◆중국 특수와 ‘연기금 소방수’의 등판

그러나 영광 뒤의 그림자는 짙었다. 2000년대 초 밀어닥친 IT 버블 붕괴로 증시는 다시 요동쳤다. 승승장구하던 ‘바이 코리아 펀드’는 고점 대비 70%가 넘는 극심한 평가손실을 기록하며 투자자들에게 큰 상처를 남겼다.

반전은 그다음에 찾아왔다. 혹독한 조정기를 거친 한국 증시는 체질개선에 성공하며 장기적인 대호황 국면에 진입했고 2007년 코스피 2000선 고지를 밟았다. 적립식 펀드 투자 열풍을 타고 유입한 개인 자본과 중국 특수를 누린 조선·철강·화학 등 중후장대 기업들의 거침없는 질주가 한국 증시를 힘차게 밀어 올렸다.

하지만 환희는 1년을 채 넘기지 못했다. 2008년 미국 리먼브라더스 파산으로 촉발한 글로벌 금융위기가 국내 증시를 집어삼켰다. 외국인 투자자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갔고 시장은 패닉에 빠졌다.코스피 지수는 2008년 10월 24일 938.75(종가)까지 추락했다. 이때 증시를 떠받친 것은 국민연금을 비롯한 연기금이었다. 시장이 흔들릴 때마다 조 단위의 매수에 나서며 하방을 방어했다. 이른바 ‘연기금 안전판’이 본격적으로 작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위기 뒤에는 거대한 기회가 찾아왔다. 중국의 대규모 경기부양책으로 한국 수출기업들은 재평가를 받았다. 자동차·화학·정유 업종이 주도한 ‘차·화·정 랠리’가 이어졌고, 스마트폰 혁명으로 인한 IT 산업 재편까지 겹치며 코스피는 상승세를 회복했다. 2011년 지수는 2200선을 돌파하며 당시 기준 최고치를 경신했다.



◆‘동학개미’와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

역사상 가장 드라마틱한 반전은 2020년에 일어났다. 듣지도 보지도 못한 코로나19 팬데믹 공포가 전 세계를 덮치자 글로벌 자산시장은 일제히 공황 상태에 직면했다. 2020년 3월 19일 코스피는 순식간에 1457.64(종가)까지 무너졌다. 외국인과 기관이 던진 물량이 쏟아졌고 연이어 서킷브레이커가 발동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개인투자자들이 움직였다. 이른바 ‘동학개미’다. 수십조원 규모의 개인 자금이 증시로 들어오면서 외국인 매물을 받아냈다. 한국 자본시장 역사에서 개인이 시장의 주역으로 등장한 순간이었다.

정부의 초저금리 유동성 공급과 반도체 슈퍼사이클이 더해지면서 코스피는 2021년 3000선으로 올라섰다.

파티가 끝나고 돌아온 청구서는 무거웠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풀린 막대한 유동성이 인플레이션(물가 지속 상승)으로 이어지자 이를 잡기 위해 미국 중앙은행이 고강도 금리인상 폭탄을 던진 것이다. 고금리·고물가·강달러라는 ‘3고(高) 쇼크’ 앞에 코스피는 2022년 9월 30일 종가 기준 2155.49까지 밀리며 다시 후퇴했다. 과거 외환위기나 금융위기처럼 시스템이 무너진 것은 아니었지만 글로벌 긴축이 자산시장 전반을 강하게 짓눌렀다. 2000~3000을 오가는 ‘박스피’가 오랜 기간 이어졌다.

이번엔 제도와 정책 변화가 구원투수로 등판했다. 고질적인 한국 증시 저평가 현상인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극복하기 위해 정부와 시장이 머리를 맞댔다. 이사회의 주주충실 의무를 골자로 한 상법 개정 논의와 기업가치 제고 정책, 강력한 세제 인센티브 도입이 급물살을 타면서 한국 증시를 바라보는 글로벌 시장의 평가 기준 자체가 근본적으로 달라지기 시작했다.

여기에 글로벌 산업 지형이 인공지능(AI) 중심으로 급격히 재편하면서 AI 밸류체인의 핵심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중심으로 한 반도체 산업이 다시 시장의 주도주로 부상했다. 2025년 코스피는 4000선을 돌파한데 이어 5000선을 넘어섰다.

◆역대급 변동성, ‘1만 고지’를 향해

2026년 현재 한국 자본시장은 역사상 가장 뜨겁고 변동성이 큰 장세의 한복판에 서 있다. 글로벌 AI 인프라 투자가 확대하는 가운데 반도체 산업, 특히 고대역폭메모리(HBM)가 AI 공급망의 핵심 기술로 부상하며 시장의 주도권을 쥐고 있다. 이 과정에서 코스피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중심으로 급등락을 반복하며 폭주하고 있다. 6월 18일 코스피는 종가 기준 9000선을 돌파한 후 6월 24일 현재 8471.02에 장을 마감했다.

100에서 출발해 280의 나락을 경험하고 1000과 3000, 5000을 넘어 9000까지 올라온 코스피의 역사는 늘 ‘위기 뒤의 더 큰 도약’이었다. 펀드에서 기관으로, 개인으로, 그리고 산업 경쟁력과 기술력으로 진화해 온 이 흐름 속에서 코스피 1만은 한국 자본시장이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다음 이정표로 자리하고 있다.





김태림 기자 t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