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하이닉스가 '인공지능(AI) 인프라 투자 둔화'를 가장 큰 리스크(위험요인)로 제시했다. 고대역폭메모리(HBM) 수요 급증에 힘입어 사상 최대 실적을 이어가고 있지만, 빅테크의 AI 투자가 둔화되거나 주문이 줄면 실적이 크게 악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25일 SK하이닉스가 미국 나스닥 시장에 미국주식예탁증서(ADR) 상장을 추진하면서 제출한 증권신고서를 보면 회사는 최근 영업실적 개선이 AI 인프라 투자 확대에 따른 HBM 및 서버용 D램 등 고성능 메모리 수요 증가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고 밝혔다. 주요 고객사의 AI 관련 자본적 지출이 둔화되거나 기술 변화로 메모리 수요가 위축될 경우 영업실적이 크게 악화될 수 있다는 내용도 담겼다.
회사가 짚은 핵심 변수는 하이퍼스케일 클라우드 서비스 제공업체 등 대형 기술기업의 투자 속도다. AI 인프라 수요가 이들 기업의 대규모 자본적 지출에 좌우되는 만큼, 거시경제 여건이나 투자 수익성 우려로 투자가 축소 또는 지연되면 SK하이닉스 제품 수요도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주문 흐름이 바뀔 가능성도 위험요인으로 제시됐다. SK하이닉스는 주요 고객사가 선주문 이후 재고 조정이나 주문 취소에 나설 경우 제품 수요가 큰 폭으로 둔화될 수 있다고 했다. AI 투자 확대 국면에서 늘어난 고성능 메모리 수요가 고객사의 투자 판단과 재고 전략에 따라 흔들릴 수 있다는 의미다.
기술 변화 역시 변수로 언급됐다. 회사는 메모리 사용량이나 연산 자원 소비를 줄이는 신기술이 등장하거나 AI 기술 상용화 진전이 부진할 경우 고성능 메모리 수요 자체가 감소할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메모리 반도체 산업의 경기 변동성도 함께 제시됐다. SK하이닉스는 매출의 90% 이상이 D램과 낸드플래시 등 메모리 반도체 제품에서 발생한다고 밝혔다. 메모리 산업은 생산능력 확대 시기와 수요 둔화 시기가 맞물릴 경우 글로벌 공급과잉과 가격 하락이 반복되는 특성이 있다.
실제로 실적 변동 폭은 이미 직전 하강 사이클에서 확인된 바다. SK하이닉스는 2023년 영업손실 7조7303억원, 당기순손실 9조1375억원을 기록했다. 이후 업황 회복에 따라 영업이익은 2024년 23조4673억원, 2025년 47조2063억원, 2026년 1분기 37조6103억원으로 개선됐다. 당기순이익도 2024년 19조7969억원, 2025년 42조9479억원, 2026년 1분기 40조3459억원으로 대폭 늘었다.
미·중 무역 갈등 또한 위험요인으로 명시됐다. SK하이닉스는 매출의 상당 부분이 미국과 중국 소재 고객사에 집중돼 있다고 했다. 2025년 기준 미국과 중국 소재 판매법인을 통한 매출 비중은 각각 68.8%와 19.7%에 달한다. 회사는 미·중 무역긴장에 따른 관세와 수출통제, 양국 정부의 보조금 및 규제 조치가 핵심 고객사의 생산과 메모리 수요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SK하이닉스는 과거 미국의 수출통제 강화로 일부 고객사에 대한 제품 판매를 중단한 바 있다고 했다.
대규모 시설투자도 별도 위험요인으로 꼽혔다. SK하이닉스는 첨단 메모리 수요 증가에 대응하기 위해 생산능력 확장과 신규 투자를 추진하고 있지만, 일정 지연이나 비용 초과가 발생할 경우 실적에 부담이 될 수 있다고 전했다. 회사는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1기 팹, 청주 P&T7, 미국 인디애나주 어드밴스드 패키징 팹 등에 총 55조9196억원 규모의 자본적 지출을 계획하고 있다.
SK하이닉스는 이번 나스닥 ADR 상장을 성장의 발판으로 삼겠다는 입장. SK하이닉스 관계자는 "ADR 상장 이후 투자자 저변이 확대돼 궁극적으로 제대로 된 기업가치를 평가받을 수 있을 것"이라며 "AI 기술 혁신의 중심인 미국에서 접점을 넓혀 글로벌 회사로의 위상이 더욱 높아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홍민성 한경닷컴 기자 m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