솜방망이 처벌은 끝났다...'과징금 폭탄'에 떠는 기업들

입력 2026-07-03 04:53
[비즈니스포커스]

“규모가 이 정도일 줄은 예상 못했다.”
한 재계 관계자는 쿠팡이 개인정보유출 사태 관련해 개인정보보호위원회로부터 맞은 천문학적 규모의 ‘과징금 폭탄’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개보위는 6월 10일 전체회의를 통해 쿠팡에 역대 최대 규모인 6246억81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하기로 의결했다. 종전 국내 최대 규모인 SK텔레콤(1348억원)보다 무려 4배가량 많다. 쿠팡 내부에서도 과징금 규모에 당혹감을 보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쿠팡은 개보위의 결정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소송을 예고한 상황이다.

최근 정부 규제 당국이 기업들의 불공정 행위에 대해 역대급 규모의 과징금을 잇달아 부과하면서 산업계가 일명 ‘과징금 공포’에 휩싸였다. 부당이득 환수와 시장 질서 확립이라는 순기능도 뚜렷하지만 재계에선 예측하기 어려운 과징금 규모와 제재 기준이 기업의 혁신 동력을 꺾을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이번에 개보위가 쿠팡에 천문학적인 과징금을 부과한 건 쿠팡 측의 인증 서명키 관리 접근 통제 소홀 등으로 개인정보 유출 사태가 발생했다고 봐서다. 지난해 말 쿠팡에서는 고객 약 3367만 명의 개인정보가 유출됐다. 어마어마한 숫자다. 대한민국 경제활동인구 대부분에 해당한다. 개보위는 이번 사건이 단순한 해킹 사고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전직 직원이 인증 서명키를 악용했으며 쿠팡은 키 관리와 이상 트래픽 탐지에 미흡했다고 봤다. 쿠팡 측은 △회사 측의 고의적 행위가 아닌 퇴사 직원의 단독 행위 △결제 카드 정보, 비밀번호 등 민감정보 없음 △유출 사고 후 빠른 대응 등으로 해명했으나 감경 사유로 적용되지 않았다. 현재 개보위에 법적 대응을 예고한 상태다. >>쿠팡 6000억원대 역대 최고액 처벌
애초 일각에서는 쿠팡의 지금보다 더 큰 규모의 과징금을 부과받을 수 있다는 예상도 제기됐었다. 현행 개인정보보호법상 매출의 최대 3%까지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다.

쿠팡의 작년 매출이 약 45조5000억원이었던 만큼 산술적으로는 1조3600억원까지 가능했다. 이에 비하면 실제 과징금 규모는 훨씬 적은 금액이 나왔다.

그러나 쿠팡은 결코 이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부과된 과징금은 쿠팡의 지난해 연간 영업이익(6790억원)과 맞먹는 수준이다. 개보위로부터 부과받은 과징금을 내야 할 경우 현금흐름에 치명타를 입게 될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글로벌로 눈을 돌려도 이 정도 수준의 과징금을 받은 기업은 없다는 게 쿠팡의 입장이다. 현재까지 알려진 정부의 과징금 1위는 메타로 5억3300만 명의 이용자 정보가 해킹 포럼에 스크래핑 방식으로 유출됐다. 이름과 거주지, 생년월일, 이력, 전화번호, 이메일 등이 털린 이 사건을 조사한 아일랜드 데이터보호위원회는 메타에 2억6500만유로(3800억원)의 처분을 내렸다. 쿠팡 관계자는 “정보 유출 규모는 메타의 7%지만 개인정보 유출 과징금은 11%가 더 많다”며 “유출 규모와 비교해 개보위의 과징금 처분 강도가 높다”고 설명했다.

정부의 엄정 대응 기조는 개인정보 영역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올해 초 공정위는 설탕 제조 3사가 약 4년간 가격을 담합한 행위에 대해 총 4083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2007년 설탕 제조사에 대한 담합 제재(약 500억원)와 비교할 때 제재 규모가 약 8배 이상 폭증했다. 공정위가 담합 사건에 적용되는 부과기준율 중 최고 수준인 15%를 적용하고 반복 위반에 따른 가중요소를 엄격히 적용한 결과로 분석된다.

미국 성인 인구 절반인 1억4700만 명의 정보가 털린 신용평가업체 에퀴팩스(1180억원)나 호텔체인 메리어트인터내셔널(3억2700만 명·970억원)의 정부 처분과 비교해도 쿠팡에 대한 처분은 강력한 편이라고 강조했다.

쿠팡과 과징금 폭탄을 맞으면서 유사한 사고를 겪은 기업들 내부에도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KT가 대표 격이다. 개인정보 유출로 현재 개보위의 최종 처분을 기다리고 있다. 업계에서는 SK텔레콤과 쿠팡의 과징금 산정 기준의 일관성과 형평성을 고려할 때 KT 역시 2000억원에 달하는 상당한 수준의 부담을 떠안게 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

개인정보 유출 규모(약 1만6000명) 면에서 SKT나 쿠팡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나 실제 불법 소액결제 등 2차 피해 사례가 확인된 만큼 개보위가 사안을 중대하게 볼 수 있다는 분석이다.
>>더 무서운 징벌적 과징금 온다

배민과 쿠팡이츠도 공정위의 심판을 기다리고 있다. 공정위는 두 회사가 압도적인 시장점유율을 무기로 입점업체와 소비자를 기만하고 경쟁을 제한했다고 판단했다. 특히 배민의 경우 법 위반 기간의 관련 매출액(배민배달 우대 약 7조7800억원 등)을 기준으로 산정할 경우 과징금이 최대 5000억원 이상 부과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기업들을 더 긴장하게 만드는 것은 향후 규제가 더 강력해질 수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정부와 국회는 특히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과징금 상한을 현행 전체 매출의 3%에서 최대 10%까지 3배 이상 올리는 개인정보보호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여기에 더해 소비자단체 등이 대표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 ‘집단소송제’ 도입까지 가시화되면서 기업이 짊어져야 할 리스크도 커지고 있다.

앞서 공정위도 법 위반 행위에 대한 억지력 및 제재 실효성 제고 차원에서 ‘과징금부과 세부기준 등에 관한 고시’ 개정안을 4월 30일부터 시행했다. 법 위반행위로 얻는 부당이득을 넘어서는 수준의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도록 한 것이 골자다.

더 나아가 과징금 부과 한도 자체를 상향하기 위해 과징금 부과 한도를 상향하는 과징금제도 개선계획을 발표하기도 했다. 공정위의 발표대로 과징금 부과 한도가 상향되는 법률개정이 이루어질 경우 현재보다도 더 많은 액수의 과징금이 부과될 수 있는 셈이다.

이런 정부의 움직임은 기업들의 불법 행위를 뿌리 뽑겠다는 이재명 대통령의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이 대통령은 “경제가 위반을 너무 쉽게 생각한다”며 “잘못하면 회사 망한다는 생각이 들게 만들어야 한다”고 강력한 경제적 제재를 거듭 주문한 바 있다.

기업에 대한 정부의 제재 수위가 높아지면서 기업들이 개인정보보호나 불공정거래 위반을 하지 않기 위해 더욱 큰 노력을 기울이는 것으로 전해진다.

법무법인 세종 관계자는 “관련 법령에 위반되는 상황을 만들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며 “따라서 사전적인 내부 통제와 컴플라이언스 체계 구축 및 상시적인 점검의 중요성이 더욱 커졌다”고 강조했다.

다만 재계에서는 정부의 과징금 규모가 지나치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특히 과징금 폭탄이 주요 기업들의 사업 확장과 이윤 추구 방식에 제동을 걸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쿠팡도 이번 과징금이 확정될 경우 지방 물류센터 건립 등 당초 계획했던 투자가 지연될 것이란 예상이 나오고 있다.

이정희 중앙대 경제학부 교수는 “과징금 확대의 경우 소비자보호와 공정한 시장 질서 확립을 위해 불가피한 조치”라면서도 “더욱 명확한 기준을 확립하고 정부가 기업과 더욱 소통해 이들의 원활한 경제활동을 저해하지 않는 사회적 장치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김정우 기자 enyo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