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연장, 숫자가 아니라 설계가 문제다 [화우의 노동 인사이트]

입력 2026-06-25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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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정년 연장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현재는 법정 정년을 2029년경부터 단계적으로 1년씩 올려 2037년 무렵 65세에 맞추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국민연금 수급 개시 연령이 2033년까지 65세로 상향되는 상황에서 정년과 연금 사이의 '소득 공백'을 메워야 한다는 공감대가 그 배경이다.

그러나 노사 간 이견은 여전히 크다. 노동계는 65세 일률 정년 연장을 요구하고, 경영계는 '퇴직 후 선별적 재고용' 방식을 주장하며 맞서고 있다. 임금체계 개편을 둘러싼 간극도 좁혀지지 않고 있다. 연내 입법이라는 정치적 일정이 논의를 압박하면서,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보다 '언제까지 통과시킬 것인가'에만 매몰되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과거 임금피크제가 우리에게 남긴 기억을 되돌아보면 더욱 그렇다. 2013년 고령자고용법 개정으로 60세 법정 정년이 도입되면서, 인건비 부담을 완화하고 고령 근로자의 고용을 유지한다는 취지 아래 임금피크제가 공공기관을 중심으로 빠르게 확산했다. 정년이라는 숫자를 바꾼 것에 대한 보완책으로 임금 조정을 병행한 셈이었지만, 곳곳에서 허점을 드러냈다.
고령자 고용 정책, 제도적 기준 갖춰야 유효
대법원은 2022년, 정년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일정 연령 이상 근로자의 임금을 일률적으로 삭감한 임금피크제가 '고용상 연령 차별금지 및 고령자고용 촉진'에 관한 법률(고령자고용법)이 금지하는 연령차별에 해당하므로 무효라고 판단했다.

이후 하급심 판결들은 엇갈린 결론을 내놓고 있다. 노조의 충분한 동의를 거쳐 절차적 정당성을 갖추고 임금 삭감에 상응하는 적절한 조치를 제대로 갖춘 경우는 유효로 판단됐다. 반면, 업무 내용이나 근로 시간에 아무런 변화 없이 나이만을 이유로 임금만 삭감한 경우는 무효 판결을 받았다.

메시지는 분명하다. 고령자 고용을 위한 정책이라는 이름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이와 관련된 다른 제도적 기준들까지도 충족할 수 있는 정합성을 갖춰야 비로소 유효하다는 것이다.
정년 연장, 세대 간 형평성 고려해야


그렇다면 이번에 추진되는 정년 연장은 과거의 문제를 반복하지 않을 수 있을까. 섣불리 낙관하기 어렵다.

첫째, 연령차별 예외 규정이 명확하지 않다. 고령자고용법 제4조의5는 연령차별로 보지 않는 예외 사유 4개 중 하나인 '특정 연령집단의 고용유지·촉진을 위한 지원 조치'(제4조의5 제4호)가 정년 연장을 위한 임금 조정에도 적용되는지에 대해서는 해석이 엇갈린다. 연령차별로 보지 않는 일반적 기준 자체가 법에 규정되지 않아 혼선을 초래할 우려도 크다.

둘째, 현행 고령자고용법 제19조의2 제1항은 정년을 연장하는 사업장의 노사가 임금체계 개편 등 필요한 조치를 해야 한다는 해당 조항은 사실상 노력 규정에 가깝다. 교섭력이 강한 노동조합이 임금체계 개편 자체를 거부하면 실질적인 강제력을 발휘하기 어렵다. 기업의 인건비 부담 가중·청년 일자리 위축은 물론 뒤늦게 소송으로 문제를 수습해야 하는 상황이 반복될 수 있다.

셋째, 세대 간 형평성 문제다. 연구에 따르면 2016년 정년 60세 의무화 이후 1000명 이상 대기업에서는 중고령자 고용이 늘어났지만, 청년(15~34세) 고용은 11.6% 감소했다. 정년 연장이 단순히 고용 기간을 늘리는 데 그치고 임금 구조 개혁을 동반하지 못한다면, 이 같은 '세대 간 일자리 대체효과'는 더욱 심화될 전망이다.
지속 가능한 정년 연장 제도 절실


정년 연장은 피할 수 없는 시대적 과제다. 그러나 과거 임금피크제의 경험은 고령자 고용을 위한 '좋은 의도'만으로는 바람직한 결과를 담보할 수 없고, 설계의 부주의로 인해 대규모 소송 리스크로 되돌아올 수 있다는 교훈을 남겼다.

연령차별 예외 규정은 노사 당사자가 모두 예측할 수 있도록 명확하게 규정될 필요가 있다. 임금체계 개편과 정년 연장이 실질적으로 연계될 수 있도록 하는 제도적 유인과 지원도 충분히 고민돼야 한다.

이러한 과제들은 모두 결국 하나의 교훈으로 수렴된다. 중고령자의 고용 안정, 청년층의 기회 보장, 기업의 지속가능성, 세대 간 신뢰를 함께 설계하는 복합방정식 앞에서,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입법의 속도가 아니라 법적으로 견고하고 사회적으로 지속 가능한 제도 설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