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재계가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의 소통 방식 변화에 불만을 드러내고 있다. 기존 일본 정치에서 관행처럼 이어져 온 재계·정부 간 밀착 네트워크가 약화되면서 기업 최고경영진들의 정책 접근성이 크게 줄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러한 변화가 일본 정치의 구조적 전환이라는 평가도 제기한다.
24일 파이낸셜타임즈(FT)에 따르면 다카이치 총리는 취임 이후 주요 기업 최고경영자들과의 일대일 회동이나 비공식 만찬, 심야 회동 등을 거의 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역대 일본 총리들이 게이단렌(일본경제단체연합회) 등 경제단체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온 전통과 대비된다. 일본 재계 관계자들은 “실질적인 대화가 거의 없다”거나 “점심·저녁 회동 자체가 사라졌다”고 불만을 나타내고 있다.
이같은 불만은 정계에서도 나온다. 다카이치 총리가 대신이나 주요 관료들과의 대면 보고를 거부하고 서면 보고를 고집한다는 것이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대면 보고를 통해 소통해야할 사안도 서면으로 처리하다보니 제대로 처리되지 않는 일들이 꽤 많다”고 토로했다.
다만 일본 최대 경제단체인 게이단렌은 총리가 기업 의견을 무시하고 있다는 주장에는 동의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최근 1년간 공식 회의 3차례, 회장 오찬 등을 통해 일정 수준의 정책 협의는 유지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다카이치 총리 역시 ‘투자 주도형 경제’ 구상에서 재계와 일정 부분 방향성을 공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기린홀딩스의 요시노리 이소자키 대표는 “모든 의견을 따를 필요는 없지만 다양한 의견을 듣는 것은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다카이치 총리의 스타일을 두고 미국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처럼 제도권과 거리를 두는 방식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다른 재계 인사들은 이번 변화가 일본 정치의 구조적 전환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과거 일본은 기업과 정치권이 밤늦은 회식과 비공식 접촉을 통해 정책을 조율해온 문화가 강했지만, 다카이치 총리는 이러한 방식을 의도적으로 줄이고 있다는 것이다. 한 기업 임원은 “이 같은 변화는 일본 전체 비즈니스 문화의 변화와도 맞물려 있다”고 말했다.
정치 분석가들은 다카이치 총리의 접근 방식을 엘리트 중심 정치 탈피로 해석한다. 와세다대 나카바야시 미에코 교수는 “일본 국민은 기존 엘리트 중심 정치에 피로감을 느끼고 있다”며 “다카이치는 이러한 흐름 속에서 대중적 지지를 확보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다만 그는 재계와의 소통 부족은 국가 정책 측면에서 리스크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일부 재계 인사들은 소통 방식보다 정책 결과가 더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한 고위 기업 관계자는 “중요한 것은 관계 형성이 아니라 실제 성과”라며 “총리는 결과로 평가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도쿄=최만수 특파원 bebo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