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꿔온 삶을 끝내 일궈내지 못했다는 열패감, 동경해 마지않던 것을 가진 타인의 삶을 훔쳐보려는 관음적 시선. 누구에게도 드러낼 순 없지만, 결핍과 집착이 만든 인간 본성의 민낯 중 하나다. 후안 마요르가의 희곡 <맨 끝줄 소년(El chico de la ultima fila)>과 이를 재해석한 프랑수아 오종의 영화 ‘인 더 하우스’는 인간의 이런 파멸적 정서를 훑어낸 수작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인간 내면의 금기를 건드린 이 서사가 K드라마 문법을 덧씌워 다시 태어난다. 원작과 같은 ‘맨 끝줄 소년’ 이름을 달고 오는 26일 넷플릭스에서 전 세계 공개된다. 디즈니+ 시리즈 ‘카지노’ 이후 3년 만에 드라마에 복귀한 최민식의 존재감이 돋보이는 작품으로, 앞서 인기를 끈 ‘참교육’의 글로벌 흥행 바통을 이을 작품으로 관심을 끈다.
24일 서울 마포동 호텔 나루 서울에서 열린 제작발표회에 나선 최민식은 “문학적 향기가 나는 작품이 그리웠다”며 “‘인생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이라 귀띔했다.
‘맨 끝줄 소년’은 넷플릭스의 하반기 포문을 여는 기대작이다. 작가로서 실패하고 강단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국문과 교수 허문오(최민식)이 강의실 맨 끝줄에 앉은 말 없는 공대생 이강(최현욱)의 글에서 천재성을 발견하고 그의 글에 집착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서스펜스 드라마다. 강의에서 제출한 작문 과제를 보고 재능을 인정한 허문오에게 집착에 가까운 개인 수업을 받게 된 이강이 친구의 집을 관찰하며 글을 쓰면서 파국으로 치닫는다.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 등 인간 군상의 다양한 심리를 섬세하게 포착해내는 연출로 호평받은 김규태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최민식부터 허준호, 김윤진, 진경 등 충무로에서 잔뼈가 굵은 베테랑 배들과 웨이브 오리지널 ‘약한영웅’에서 연기로 눈도장을 찍은 최현욱 등 신예들이 출연해 눈길을 끌었다.
‘맨 끝줄 작품’은 최민식의 첫 넷플릭스 작품으로 화제를 모았다. 최민식은 이날 작품 출연 계기로 “어디서 들어본 내용인데, 아니나 다를까 마요르가의 희곡 원작이란 얘길 듣고 ‘옳다구나’ 하며 대본을 달라고 했다”고 했다.
이어 “대중적이고 오락적인 작품도 좋지만, 생각할 여지 있는 문학적인 작품을 하고 싶었다”며 “작품의 시사점이 요즘 트렌드와 거리가 있을 순 있지만, 오히려 그래서 더 신선한 것 같다”고 덧붙였다.
비교적 호흡이 짧은 희곡인 원작과 달리 ‘맨 끝줄 소년’은 6부작으로 규모를 키웠다. 장편 시리즈로 늘어나며 자칫 스토리텔링이 성겨질 수 있다는 걱정이 나올 법하지만, 최민식은 “야심한 시각에 좋아하는 책을 읽어나가는 기분으로 볼 수 있다”고 선을 그었다.
시나리오가 워낙 탄탄하다는 이유에서다. 김규태 감독은 “처음 대본을 받았을 때 끊지 않고 순식간에 읽었다”며 “인물의 감정은 쉽고 간결하게 표현하면서도 예측할 수 없게 이야기를 전개하는 힘이 있다”고 했다. 대중적 재미에 문학적 깊이까지 더한 작품이라는 뜻이다.
넷플릭스가 믿고 만드는 K드라마의 디테일도 작품의 깊이를 더했다는 평가다. 예컨대 허문오의 서재는 열등감에 빠져 스스로를 가둔 ‘정신적 감옥’처럼 연출하고, 재즈 장르에 색소폰 등 관악기를 적극 사용한 테마 음악으로 긴장감과 서정성을 높이는 등 미술·음악적 연출이 돋보인다는 것. 김 감독은 “촬영 면에선 문오의 광기 등 변하는 감정선을 표현하기 위해 극단적인 클로즈업이나 미묘한 카메라 워킹을 활용했다”고 설명했다.
최민식은 이날 작품의 히든카드로 상대역인 이강을 연기한 최현욱을 꼽았다. 직접 이강 역의 오디션에 참여했다는 그는 “이강은 드라마 중심에서 모든 인물을 쥐고 흔드는 역할”이라며 “연기를 할수록 다른 배우는 떠오르지 않을 만큼 최현욱이 이강이 되는 모습을 느꼈다”고 했다. 이어 “이강은 의뭉스럽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는 인물인데 최현욱의 눈빛이 그렇다”고 했다.
유승목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