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최대 노조를 이끄는 최승호 초기업노조 위원장의 거취가 조합원 투표에 부쳐진다. 명목상 올해 임금교섭 결과에 대한 재신임 절차지만, 실질적으로는 노조의 무게추를 DS(디바이스솔루션·반도체)부문으로 더 옮길지를 묻는 성격이 깔려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24일 재계에 따르면 초기업노조는 이날 오후 2시부터 오는 30일 오전 10시까지 조합원 대상으로 전자투표를 진행한다. 안건은 최 위원장 재신임과 규약 개정. 위원장 재신임안은 재적 조합원 과반 찬성으로 가결된다.
앞서 최 위원장은 올해 임금교섭 결과에 대한 책임을 언급하며 조합원에게 재신임을 묻겠다고 밝혔다. 그는 조합원들에게 배포한 입장문에서 "재신임될 경우 2027년 교섭에서 DS 부문을 우선으로 할 것"이라며 "DS부문의 교섭 단위 분리와 DS부문 위원회 구성, 근로자대표 지위 확보 등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최 위원장은 "분리교섭이 인정되지 않더라도 교섭대표노조 지위 확보로 공동교섭단이 아닌 초기업노조만의 교섭을 진행하겠다"고도 했다. 이번 투표가 최 위원장 개인 거취를 넘어 삼성전자 노조의 내년 교섭 방향을 가르는 절차로 받아들여지는 이유다.DS 직원들 "누군가는 나서야 했다"
초기업노조는 DS부문 직원들이 주축인 노조다. 올해 임금교섭 과정에서 조합원 수가 한때 7만6000명을 넘기며 과반 노조 지위를 확보했다. 그러나 지난달 임금교섭 잠정합의 이후 조합원 이탈이 이어지면서 최근 과반 지위를 잃었다. 지난 23일 오후 1시 기준 조합원 수는 5만5780명이다.
DS부문 내부에서는 여전히 최 위원장에 대한 지지 여론이 감지된다. 한 반도체 부문 직원은 "조직원들 사이에서는 불만이 있어도 공개적으로 나서기 어려워하는 분위기가 있었는데, 최 위원장이 대신 강하게 목소리를 내줬다는 데 대한 만족도가 높다"고 귀띔했다.
최 위원장이 재신임 이후 DS부문을 우선하겠다고 밝힌 것도 이런 분위기를 의식한 행보로 풀이된다. 초기업노조가 내건 DS 교섭단위 분리, DS부문 위원회 구성, 근로자대표 지위 확보 등은 모두 DS부문 직원들의 이해를 별도로 다루겠다는 메시지다. 이에 노조 안팎에서는 최 위원장이 재신임을 받을 경우 초기업노조가 '삼성전자 전체 최대 노조'라는 간판보다 'DS 중심 노조' 성격을 더 선명하게 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성과급 합의'가 가른 내부 온도차
노사 갈등은 지난달 잠정합의로 한 차례 고비를 넘겼다. 초기업노조를 포함한 공동교섭단은 지난달 20일 사측과 2026년 임금교섭 잠정합의안을 도출했다. 총파업 예고 시점을 하루 앞둔 시점이었다. 합의안에는 반도체 부문 사업성과의 10.5%를 재원으로 하는 특별경영성과급 신설, 최대 5억원 규모 주택자금 대출제도 신설, 평균 임금 6.2% 인상 등이 담겼다. 평균 임금 인상률은 기본인상률 4.1%, 성과인상률 2.1%로 구성됐다.
문제는 '합의 이후'였다. 특별경영성과급이 DS부문을 중심으로 설계되면서 완제품을 담당하는 DX(디바이스경험)부문 직원들 사이에서는 상대적 박탈감을 호소하는 반응이 나왔다. 최근에는 DX부문 직원들이 DS부문과의 성과급 격차에 항의하는 취지로 '검은 옷'을 입고 출근하기도 했다. "성과급 차이가 최대 100배에 이른다"는 불만이다.
실제로 올해 삼성전자 예상 영업이익을 증권가 평균 전망치인 350조원으로 가정하면 DS부문 내 메모리사업부 직원은 1인당 6억원에 달하는 성과급을 받을 것이란 계산이 나온다. 반면 DX부문 직원에게 돌아가는 몫은 1인당 600만원 상당의 자사주에 그쳤다.
DS부문을 제외한 삼성전자 내부에서는 "지금은 DS를 제외한 조직 대부분의 사기가 떨어진 상태"라는 전언도 나온다. "5년 차 DX 직원보다 DS 신입이 받는 돈이 더 많을 것"이라는 자조 섞인 반응도 포착됐다. 총파업은 피했지만, 올해 교섭이 남긴 후폭풍은 노조 내부와 조직 전반에 남아 있는 셈이다."최승호 재신임, 노조 재편 분기점"
이번 투표 결과는 내년 삼성전자 노사 교섭의 출발선을 바꿀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일단 최 위원장이 재신임에 성공할 경우 초기업노조는 DS부문을 앞세운 교섭 전략을 본격화할 가능성이 크다. 최 위원장이 직접 DS부문 우선 교섭과 분리교섭 추진을 약속한 만큼, 내년 교섭 의제도 반도체 보상 체계를 중심으로 짜일 공산이 크다.
하지만 DS부문 교섭단위 분리가 실제 인정될지는 별도 절차와 판단이 필요한 사안이다. 분리교섭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최 위원장은 교섭대표노조 지위 확보를 통해 공동교섭단이 아닌 초기업노조 단독 교섭을 추진하겠다는 입장이다.
재신임안이 부결될 경우에는 올해 임금교섭을 주도한 현 집행부의 노선도 흔들릴 수 있다. 조합원 이탈로 과반 지위를 잃은 상황에서 지도부 신임까지 무너지면, 초기업노조가 내년 교섭 주도권을 다시 확보하는 과정도 복잡해질 수 있다.
다만 최 위원장이 공언한 'DS부문 중심 교섭'이 현실화하더라도 과제는 남을 예정이다. DS부문 안에서도 메모리와 시스템LSI·파운드리 등 사업부별 실적과 보상 체감이 달라서다. 한 업계 관계자는 "DS 안에서도 메모리와 비메모리의 상황이 같지 않다"며 "최 위원장이 재신임되더라도 사업부별 이해를 어떻게 묶어낼지가 중요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홍민성 한경닷컴 기자 m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