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준에 맞서지 마라"…블랙 먼데이 예견했던 투자 거장의 원칙

입력 2026-06-25 11:23
수정 2026-06-25 11:29

1987년 10월 16일 금요일 밤. 미국의 생방송 TV 프로그램 ‘월스트리트 위크’에 출연한 한 투자자가 뜻밖의 경고를 내놓았다. “시장이 매우 위험해 보입니다. 조만간 주식시장이 붕괴할 것입니다”

당시 미국 증시는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며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었다.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낙관론에 젖어 있었고, 진행자조차 그의 발언을 믿지 않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불과 사흘 뒤인 10월 19일, 미 증시는 역사상 최악의 하루를 맞는다. 다우존스지수가 하루 만에 22.6% 폭락한 ‘블랙 먼데이’다.

놀라운 것은 그 투자자가 이미 자신의 펀드 자산 상당 부분을 현금화한 상태였다는 사실이다. 시장이 붕괴하는 동안 그는 손실을 최소화했고, 그해 약 50%에 이르는 수익률을 기록했다. 그 주인공이 바로 마틴 츠바이크다.

최근 국내에 번역 출간된 <마틴 츠바이크의 위대한 투자 원칙>은 바로 이 전설적인 투자자의 대표작이다. 미국에서는 수십 년 동안 투자자들의 필독서로 꼽혀온 고전이다. 하지만 투자서가 넘쳐나는 시대에 굳이 1980년대 쓰여진 책을 읽어야 할 이유가 있을까. 이 책은 그 질문에 의외로 설득력 있는 답을 내놓는다.

오늘날 투자자들은 정보의 홍수 속에 살고 있다. 하루에도 수백 건의 뉴스와 유튜브 영상, 증권사 보고서가 쏟아진다. 하지만 정보가 많다고 반드시 좋은 투자 판단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무엇이 중요한 신호이고 무엇이 단순한 소음인지 구분하기가 더 어려워졌다.

츠바이크의 투자 철학은 바로 이 지점에서 출발한다. 그는 시장의 소음이 아니라 데이터가 보내는 신호에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미래를 예언하려 하기보다 시장이 실제로 보여주는 변화를 읽어내라는 것이다.

월가에서 츠바이크가 특별한 평가를 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는 가치투자와 기술적 분석을 대립하는 개념으로 보지 않았다. 기업의 이익 성장과 재무 상태 같은 기본적 분석을 중시하면서도 금리와 통화량, 투자심리, 주가 추세 같은 기술적 지표를 함께 활용했다. 지금은 익숙한 방식이지만 당시로서는 상당히 혁신적인 접근이었다.


책의 핵심은 크게 세 가지로 정리된다. 첫째는 통화정책이다. 츠바이크는 오늘날에도 널리 인용되는 “Fed에 맞서지 마라(Don't Fight the Fed)”는 격언을 대중화한 인물이다. 그는 금리와 유동성의 흐름이 주식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방대한 통계 자료를 통해 설명한다. 투자자의 의견보다 중앙은행의 정책 방향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둘째는 모멘텀, 즉 시장의 추세를 읽는 방법이다. 그는 자신이 개발한 ‘4% 모형’과 ‘상승 거래량 지표’ 등을 활용해 강세장과 약세장을 조기에 포착하려 했다. 무엇을 살 것인가보다 언제 사고 언제 팔 것인가가 더 중요하다는 주장이다. 블랙 먼데이를 비롯한 여러 위기 국면에서 그의 예측이 주목받은 것도 이런 시스템 덕분이었다.

셋째는 종목 선택 기법이다. 책에는 ‘엽총식’과 ‘소총식’ 접근법이 등장한다. 먼저 여러 조건을 이용해 수많은 종목 가운데 유망 후보군을 추려내고, 이후 세부 분석을 통해 최종 투자 대상을 선정하는 방식이다. 오늘날의 퀀트 투자나 스크리닝 전략의 초기 형태를 떠올리게 한다.

물론 이 책은 한계도 있다. 초판이 1986년 출간된 만큼 사례와 데이터의 상당 부분은 과거 미국 시장을 배경으로 한다. 인공지능(AI) 열풍이나 상장지수펀드(ETF) 중심 투자, 초고속 알고리즘 거래 같은 최근 시장 환경과는 거리가 있다.

그럼에도 이 책이 여전히 읽히는 이유는, 시장의 구조는 변해도 인간의 심리는 크게 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탐욕과 공포, 군중심리, 과도한 낙관과 비관은 지금도 시장을 움직이는 핵심 요인이다. 츠바이크는 이런 감정에 휘둘리지 않기 위해 데이터를 활용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점은 그가 ‘예언가’가 아니라 ‘시스템 투자자’였다는 사실이다. 사람들은 그를 블랙 먼데이를 맞힌 투자자로 기억하지만, 실제 성공의 비결은 단 한 번의 예측이 아니었다. 수십 년 동안 데이터를 연구하고 원칙을 검증하며 자신만의 투자 시스템을 구축한 데 있다.

금리 불활실성과 AI, 지정학적 리스크가 뒤섞인 오늘의 시장 역시 소음으로 가득하다. 그럴수록 더 많은 정보가 아니라 더 명확한 기준이 필요하다. 추세를 거스르지 말 것, 시장과 싸우지 말 것, 그리고 뉴스보다 데이터를 믿을 것. 수십 년 전 월가의 전설이 남긴 오래된 조언이 지금도 유효하게 들리는 이유다.

설지연 기자 sj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