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부세 공정비율 상향' 딜레마에 빠진 정부

입력 2026-06-23 18:14
수정 2026-06-24 01:13
다주택자와 초고가 주택 보유자의 보유세 부담을 늘리는 수단으로 거론되는 종합부동산세 공정시장가액비율을 놓고 정부의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시행령 개정만으로 조정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지만 자칫 실거주 1주택자의 세 부담까지 늘릴 수 있어서다. 집값이 급등하면서 서울의 웬만한 아파트가 종부세 과세 대상에 오른 탓이다.

이 때문에 공정가액비율 인상을 기정사실화하는 부동산 시장의 분위기와 달리 정부는 현행 비율을 유지하는 방안을 함께 검토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손쉬운 카드 vs 광범위한 부담23일 관련 부처에 따르면 부동산 세제 개편을 검토 중인 재정경제부는 공정가액비율을 인상하는 대신 종부세 세율이나 과세표준(과표) 구간을 조정하는 방안도 함께 들여다보는 것으로 알려졌다.

공정가액비율이란 종부세 과표 산정 때 적용하는 비율이다. 2022년 이후 60%로 고정돼 있다. 공정가액비율 인상은 지난해 말 이재명 대통령이 다주택자를 대상으로 한 ‘부동산 세제 카드’를 꺼냈을 때부터 가장 유력한 수단으로 꼽혀 왔다. 공정가액비율을 높이면 과표가 올라가기 때문에 세율을 직접 건드리지 않고도 종부세 부담을 늘리는 효과가 있어서다.

또 국회의 입법 없이 종부세법 시행령 개정만으로 올릴 수 있어 정부로선 상대적으로 수월한 카드다.

문재인 정부가 2021년 95%까지 단계적으로 상향했다가 윤석열 정부가 60%로 대폭 하향했기 때문에 비율을 정상화한다는 명분도 있다. 시장에서 정부의 가장 유력한 부동산 세제 카드로 ‘공정가액비율 80% 인상’을 예상한 이유다. ◇실거주 1주택자도 ‘세 부담’ 사정권다만 최근 들어 기류 변화가 감지된다. 공정가액비율을 인상할 때 세 부담을 지는 대상이 지나치게 넓어졌다고 정부가 판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종부세 과세 기준은 공시가격 12억원 이상 주택이다. 12억원짜리 주택 보유자와 100억원대 초고가 주택 보유자 모두 종부세 대상이라는 뜻이다.

이재명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실거주 1주택자를 보호하는 대신 다주택자와 초고가 주택 보유자의 세 부담을 선별적으로 높이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문제는 서울을 중심으로 집값이 크게 오르면서 고가 주택 보유자에 한해 물리던 종부세가 일반 시민도 내는 세금이 됐다는 점이다.

올해 5월 서울 아파트 평균 매매가격은 13억4543만원으로 1월에 비해 넉 달 만에 7000만원가량 올랐다. 공시지가가 매매가격의 60~70% 수준이라는 점을 감안해도 서울의 어지간한 아파트를 보유한 사람이라면 종부세 대상인 것이다.

지난해 서울에서 종부세를 고지받은 사람은 32만 명으로 2년 전보다 8만9000명 증가했다. 공정가액비율을 올리면 실거주 1주택자에게도 부담이 전가돼 정부의 부동산 정책 목표를 훼손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일각에서 제기하는 주택 가격에 따라 공정가액비율을 달리 설정하는 방안은 현실성이 떨어진다고 판단한 것으로 전해졌다.

공정가액비율 상향이 문재인 정부의 대표적인 실책으로 꼽힌다는 점도 정치적 부담으로 작용한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일괄적으로 다 세 부담을 늘리자는 것은 현 정부의 정책 기조와 거리가 있다”고 말했다. 정부 관계자는 “아직 여러 가지 시나리오를 검토 중인 단계로 특정한 방향은 결정된 바 없다”고 했다.

남정민/김일규 기자 peux@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