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금융으로 세상을 이롭게 한다

입력 2026-06-23 17:55
수정 2026-06-24 00:22
글로벌 헬스케어 기업 존슨앤드존슨 본사 로비에 들어서면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우리의 신조(Our Credo)’가 가장 먼저 눈에 띈다. 무려 1943년에 새겨진 것으로, 기업이 존재하는 이유와 책임의 우선순위를 규정한 일종의 ‘기업 헌법’이다.

흥미로운 것은 주주의 권리를 중요하게 여기는 미국 기업임에도, 주주의 이익을 가장 마지막에 뒀다는 점이다. 이 신조가 꼽은 첫 번째 책임은 고객이고, 그 다음은 직원과 지역사회다. 그리고 이들을 위해 최선을 다할 때, 주주 역시 공정한 보상을 받게 될 것이라고 강조한다. 이윤은 기업의 목적이 아니라, 세상을 이롭게 한 결과로 따라오는 결실이라는 믿음이 80년 넘게 기업을 단단하게 지탱해온 것이다.

신한에도 깊이 뿌리 내린 경영철학이 있다. 신한의 창업자 고(故) 이희건 명예회장은 기업의 존재 이유와 경영자의 자세에 대한 답을 ‘50가지 가르침(五十訓)’으로 남겼다.

“기업의 성장과 존망은 천명(天命)에 달려 있고 천명은 사람의 마음에 달려 있다. 기업에 있어서 인심(人心)이란 그 종업원과 고객의 마음이다.”

고객이 진심으로 신뢰하고, 직원이 사랑하며, 사회가 존재 가치를 인정해 주는 기업만이 지속 가능한 성장을 이어갈 수 있다는 가르침이다. 금융의 궁극적인 존재 목적 역시 이와 다르지 않다. 단순히 이윤을 내고 자본을 키우는 것을 넘어, 사회와 구성원의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것. 그것이 금융이 존재하는 진짜 이유이자 본질이다. 금융에 대한 신뢰는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된다.

물론 CEO로서 눈에 보이는 성과에 완전히 초연할 수만은 없다. 다만 위기의 순간 마음이 흔들릴 때마다 “재물을 잃는 것은 조금 잃는 것이고, 신용을 잃는 것은 많이 잃는 것이다. 그러나 용기를 잃는 것은 전부를 잃는 것”이라는 50훈의 가르침을 떠올린다.

여기서 말하는 ‘용기’는 단순히 위기를 버텨내는 맷집이 아니다. 나는 이것을 단기 실적이나 눈앞의 성과에 흔들리지 않고, 고객과 사회라는 금융의 본질을 먼저 선택할 수 있는 ‘경영의 담대함’이라고 생각한다. 당장의 손해를 감수하더라도 ‘바른 이익’의 길을 걷겠다는 과감한 용기가 있을 때, 기업은 비로소 흔들리지 않는 신뢰를 얻고, 지속 가능한 성장을 이어갈 수 있다.

“시간이 흐르면 우리는 언젠가는 조직에서 사라지게 된다. 그러나 우리가 남겨 놓은 에너지는 영원하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영원한 에너지를 얼마나 남겨 두고 가느냐에 있다.”

CEO로 취임한 이후 늘 가슴 속에 품고 있는 문장이다. 시간이 흘러 경영자는 계속 바뀌겠지만, 기업이 고객-직원-사회-주주를 위해 구축해 놓은 건강한 금융 생태계는 영원한 에너지로 남아 흐른다. 세상을 이롭게 하겠다는 금융의 본질적 가치를 놓지 않을 때, 우리가 만들어 가는 금융은 시대를 초월해 더 나은 미래를 여는 강력한 힘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