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하이닉스가 메모리 전략 조직인 ‘성장전략부문’을 신설한 것으로 23일 확인됐다. 이 조직은 SK하이닉스 중장기 로드맵을 설계하는 역할을 맡을 예정이다. 격변하는 메모리 시장에서 주도권을 지키기 위해 중장기 전략을 새롭게 짜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이날 반도체업계에 따르면 SK하이닉스는 이달 초 곽노정 최고경영자(CEO) 직속 지원 조직인 코퍼레이트센터 내 성장전략부문을 새로 꾸렸다. 성장전략부문은 국내외 시장 분석과 투자 계획 수립, 차세대 기술 탐색 등을 담당할 것으로 전해졌다. 비슷한 역할을 하는 미래전략부문이 경기 이천 본사에 있으나 회사 측은 새 먹거리 창출에 더욱 힘을 실은 새 조직을 만든 것이다. 현재 10여 명 규모지만 60여 명에 달하는 미래전략부문 수준으로 커질 것이란 전망이다.
SK하이닉스가 성장전략부문을 신설한 건 전략투자 역량을 강화해 고대역폭메모리(HBM) 등 분야에서 1위 자리를 지키겠다는 의도로 해석된다. SK하이닉스는 HBM3E(5세대) 시장을 사실상 독식하면서 빠르게 성장했다. 지난해 기준 HBM 전체 시장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삼성전자가 차세대 제품인 HBM4E(7세대) 샘플을 SK하이닉스보다 한 달 먼저 주요 고객사에 공급하면서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얘기가 나온다. 삼성전자는 지난 2일 SK하이닉스보다 한발 먼저 HBM5(8세대) 실물 모형을 공개했다. 향후 HBM 시장 주도권을 누가 쥘지는 미지수라는 분석도 있다.
인수합병(M&A) 등 전략 업무를 도맡아 온 미래전략부문의 역할을 분담한다는 취지도 있다. 성장전략부문과 미래전략부문이 숨은 유망 기술과 투자 기업 발굴에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는 쌍두마차가 될 가능성이 높다. CEO 직속 코퍼레이트 센터 소속인 만큼 간결한 의사결정을 거쳐 사업 논의를 빠르게 이끌어낼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2024년 꾸려진 코퍼레이트 센터는 기업문화, 재무, 구매 부문 등을 아우르며 전사 지원 기능을 총괄하고 있다.
다음달 미국 주식예탁증서(ADR) 상장을 앞두고 전략 기능을 강화했다는 해석도 나온다. ADR 상장을 위해서는 미국의 엄격한 공시 규정과 회계 기준을 충족해야 할 뿐 아니라 글로벌 스탠더드에 버금가는 지배구조를 확립해야 한다. ADR 상장을 통해 조달할 자금(약 40조원)을 적재적소에 배분하는 투자 전략도 시급하다. SK하이닉스는 5년 내 웨이퍼 생산 능력을 두 배로 키우기 위해 공격적인 신규 팹(반도체 생산기지) 투자를 단행하고 있다. 용인 반도체 메가클러스터를 조성하는 게 한 예다. 국내외에 추가 팹을 검토하는 상황을 고려하면 투자 효율성을 극대화할 세부 전략이 필요한 시점이다.
업계 관계자는 “기존 메모리 사이클이 어긋나기 시작하면서 새로운 변수를 예측하고 대응하는 전략의 역할이 중요해졌다”며 “글로벌 반도체 패권 경쟁이 격화할수록 전략의 정교함이 승부를 가를 것”이라고 말했다.
원종환 기자 won040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