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오세훈 시장이 주력해야 할 일

입력 2026-06-23 17:32
수정 2026-06-24 00:34
2004년 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서 1년을 살았다. 그때의 기억이 잊히지 않는다. 풍요롭고 넉넉하고 화창했다. 높은 건물이 거의 없는데 집들은 하나같이 넓고 예뻤다. 동네마다 백화점과 대형 마트가 즐비해 없는 게 없었다. 한국이 선진국 소리를 듣기 전이었다. 그래서 더 대단해 보였던 것도 있다. 요즘도 가끔 ‘LA 향수병’을 앓는다. 집값에 무너진 LA 신화하지만 현재 LA는 누구나 살고 싶어 하는 그런 도시와 거리가 멀다. 지난 7년간 LA를 비롯한 캘리포니아를 떠난 사람이 190만 명(순유출 기준)에 달했다. 노숙인은 20만 명에 육박한다. LA를 대표하던 영화산업도 쪼그라들었다. 2022년 14만2000개이던 영화 일자리는 지난해 약 10만 개로 줄었다. 올해 아카데미 작품상 후보 10편 가운데 LA에서 주로 찍은 작품은 한 편도 없었다. 비싼 집값은 생활비와 제작비까지 끌어올렸고, 영화사들은 다른 주로 촬영지를 옮겼다.

LA의 신화가 무너진 이유는 많겠지만 핵심은 부동산에 있다. LA 집값 중간값은 2000년 22만달러에서 지난해 90만달러를 넘었다. 임대료는 같은 기간 세 배가 됐다. 중산층 절반이 소득의 30% 이상을 주거비로 쓴다. 견디다 못한 사람들은 집을 싸게 살 수 있는 텍사스, 애리조나 등으로 떠난다. 물론 LA 말고도 뉴욕, 시카고 등 미국 주요 도시 집값은 대부분 비싸다. 하지만 LA에는 결정적 차이가 있다. 집을 새로 짓기가 훨씬 어렵다는 점이다. 환경영향평가를 빌미로 누구든 개발 사업에 소송을 걸 수 있어서다. 이 탓에 인구 1300만 명의 LA 광역권이 최근 3년간 허가한 주택은 11만8000가구에 그쳤다. 인구가 절반인 애틀랜타(16만3000가구)에도 크게 못 미쳤다.

LA 상황을 보면서 서울이 걱정됐다. ‘천만 수도’이던 서울의 인구는 현재 약 930만 명이다. 인구가 감소한 주된 이유 역시 부동산에 있다. 집을 충분히 못 지으니 집값이 뛰고, 소득이 넉넉하지 않은 젊은 층이 자꾸 서울 밖으로 밀려난다. 6·3 지방선거에서 오세훈 시장이 5선에 성공한 것도 부동산 문제가 크게 작용했다. 집 없는 시민은 영영 내 집을 못 가질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집 가진 시민은 세금 부담과 집값 하락 걱정에 표를 던졌다. ‘닥치고 공급’을 앞세운 오 시장은 2031년까지 31만 가구를 착공하겠다고 약속했다. 중도층 표가 이 공약에 쏠렸다. '닥치고 공급'은 시대적 사명문제는 서울에 새 땅이 없다는 것이다. 있는 것을 다시 짓는 수밖에 없다. 재건축·재개발을 빠르게 하는 게 사실상 유일한 해법이다. 그런데 현장마다 안 되는 사정이 다 있다. 예컨대 7000가구 넘게 지을 수 있는 광운대역사 부지는 시행사와 한국철도공사가 사업권을 놓고 10년 넘게 다투면서 사업이 멈춰 있다. 종묘 옆 세운4구역은 높게 지으려는 서울시와 낮게 지어야 한다는 중앙정부 간 갈등이 극에 달했다.

오 시장이 앞으로 주력해야 할 일은 막혀 있는 현장을 하나하나 푸는 것이다. 오 시장 혼자 힘으로는 안 된다. 국가유산청 등 중앙정부, 코레일 등 공공기관, 인허가권을 가진 자치구 그리고 서울시가 ‘원팀’으로 뛰어도 쉽지 않다. 그래도 해내라고 서울 시민이 오 시장에게 다시 기회를 줬다. ‘닥치고 공급’이 반드시 성공해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