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리벨리온 찾자"…동북아 AI 기업에 꽂힌 큰손들

입력 2026-06-23 17:24
수정 2026-06-24 01:06
글로벌 벤처캐피털(VC)과 사모펀드(PEF)들이 동아시아로 몰려들고 있다. 한국과 일본, 대만 기업들이 첨단 인공지능(AI) 반도체 공급망에서 탄탄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3개국 AI 스타트업의 몸값이 더 올라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세계 1위 a16z 서울 상륙23일 업계에 따르면 앤드리슨 호로위츠(a16z)는 지난 6월 초 도쿄에 첫 해외 사무소를 열었다. 이달 15일에는 서울 사무소도 개소했다. 본격적인 동아시아 투자 행보다. a16z는 운용자산(AUM) 약 1000억달러(약 150조원)를 굴리는 세계 최대 VC다. 이 회사는 한국·일본·대만을 미국의 핵심 우방이자 AI 허브로 규정하고, 대규모 투자를 예고했다.

대체투자 자산운용사 뉴마운틴캐피탈도 도쿄에 이어 지난 4월 서울에도 사무소를 개소했다. 이 회사의 AUM은 90조원이 넘는다. 푸르덴셜 파이낸셜 산하인 글로벌 자산운용사 PGIM은 일본과 한국 데이터센터 부문에 최대 30억달러(약 4조6000억원)를 투자하기로 했다.

삼정KPMG에 따르면 지난해 글로벌 VC의 AI투자액은 2702억달러(약 415조원)로 역대 최대를 수준이다. 전년 대비 80.6% 증가했다. 투자 건수는 1만1842건으로 2021년(1만1946건)에 근접했다. 동아시아 기업에 대한 투자도 활발하다. 미국 실리콘밸리의 킨드레드 벤처스와 톱티어 캐피털, 반도체 설계 기업 Arm 등이 국내 AI 반도체 스타트업 리벨리온의 시리즈C에 나란히 참여했다.

일본의 대표선수는 대형언어모델(LLM) 기술 스타트업인 사카나 AI다. 엔비디아가 200억엔(약 1860억원)을 투자했다. 레이어엑스나 튜링처럼 기업 업무를 손쉽게 해주는 자동화 솔루션 관련 일본 기업들의 몸값도 만만찮다. 레이어엑스는 약 1조원, 튜링은 약 5500억원의 몸값으로 평가받고 있다. 대만에서는 메모런스AI 등이 주목받고 있다.

글로벌 투자자들이 동아시아에 주목하는 건 AI 공급망에서 한국과 일본, 대만 기업이 차지하는 위상이 커지고 있어서다. 미국은 AI 수요 급증으로 전력 인프라 한계에 직면했다. 데이터센터 증설에도 병목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AI가 에이전틱 단계로 진화하면서 병목 현상도 GPU를 넘어 메모리와 기판, 광부품 등 공급망 전반으로 확산하고 있다. 이들 핵심 하드웨어 밸류체인은 한국과 대만, 일본이 사실상 장악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중국 기업 중에도 지푸AI, 미니맥스 등 유망 기업이 적지 않지만 미국 VC가 투자하는 데 한계가 있다”며 “한국과 일본, 대만 3개국으로 투자가 집중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말했다. ◇‘토큰 당 비용’에 따라 몸값 결정동북아 3국은 국가별 역할이 뚜렷하다. 한국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앞세워 HBM(고대역폭메모리) 시장을 주도 중이다. 일본은 어드반테스트와 레이저텍, 도쿄일렉트론, 키옥시아 등 대체 불가능한 소재·장비 기업을 보유하고 있다. 대만은 TSMC를 중심으로 파운드리와 첨단 패키징 양산을 책임진다. 글로벌 빅테크 입장에선 3개국 기업들과 두루 관계를 맺어둘 필요가 있다.

글로벌 투자자들은 동북아 공급망의 핵심 투자 지표로 ‘토큰 당 비용’을 꼽고 있다. 토큰은 AI가 텍스트를 처리할 때 데이터를 쪼개는 기본 단위다. AI 모델이 토큰 하나를 생성하거나 처리하는 데 들어가는 물리적·경제적 비용이 낮아야 한다. 토큰당 비용을 얼마나 낮추느냐가 경쟁력이라는 얘기다. AI 가치사슬에 속해 있는 기업들의 몸값도 토큰 당 비용을 낮추는 데 얼마나 기여하는지에 따라 극과 극으로 나뉘는 모습이다.

전문가들은 AI 기업의 숨은 가치를 살펴보려면 장기 투자금 흐름에 주목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국내에서 동북아시아 투자를 전문으로 하는 자산운용사 레드포인트파트너스의 정종환 대표는 “도쿄와 서울에 거점을 마련하고 수년간 머무르는 사모·대체투자 자금의 흐름이 동북아 시장의 진짜 가치를 보여주는 지표”라고 말했다.

남준우 기자 njw0825@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