뭉쳐야 사는 자들, 뭉치면 죽는 자들...공공부문 재편 뒤흔드는 ‘재정의 역설’

입력 2026-06-27 11:43
수정 2026-06-27 11:55




최근 발전 5사 통합 논의가 본격화되면서 공공기관 재편을 둘러싼 움직임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지난해 8월 이재명 대통령은 나라재정 절약 간담회에서 “공공기관이 너무 많다”고 지적하며 통폐합 태스크포스(TF) 구성을 지시했다. 이후 정부는 발전 5사를 포함한 공공기관 운영 방안 검토에 나섰다.

이는 과거 효율성과 경쟁 강화를 위해 분리됐던 기관들을 다시 들여다보는 과정에서 시작됐다. IMF 외환위기 이후 정부는 공공부문 효율화를 위해 공기업 개혁과 기능 분산을 추진했다. 이에 따라 공공기관은 전문성과 경쟁력 강화를 목표로 나눠져 왔지만 최근 비효율과 재정 부담 문제가 제기되며 다시 논의 대상에 올랐다.

이 가운데 발전 5사는 정부의 2040년 석탄발전 폐지와 재생에너지 전환 정책에 대응하기 위해 조직 재편 필요성이 제기됐다. 공항 운영 기관 역시 지방공항 적자 문제와 가덕도신공항 등 대규모 사업 추진에 따른 재원 관리 필요성이 제기되며 통합 가능성이 검토됐다.

공공기관 확대와 재정 부담은 정부의 검토를 촉발한 요인 중 하나다. 2026년 기준 기획재정부가 지정한 공식 공공기관은 342개로 전년보다 11개 증가했다.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공공기관 331곳의 부채는 2024년 말 기준 741조4764억원으로 2020년 대비 약 200조원 늘었다. 이에 정부는 공공부문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다만 통합을 바라보는 현장의 입장은 엇갈린다. 발전 5사 노조는 통합이 필요하다는 입장인 반면, 올해 논의 대상에 오른 인천국제공항공사 노조는 우려를 표했다.


<에너지 전환 앞둔 발전 5사, 통합으로 돌파구 찾나>

발전 5사는 2001년 전력산업 구조개편 과정에서 출범했다. 외환위기 이후 정부는 한국전력공사 발전 부문의 민영화를 추진했으나 이는 이뤄지지 않았다. 이후 2001년 공사를 분리해 남동·중부·서부·남부·동서발전 등 5개 화력발전 자회사와 원자력·수력 담당인 한국수력원자력을 설립했다.

재생에너지 전환 역량을 높이려는 취지로 올해 2월 정부는 삼일회계법인에 발전 5사 통합 연구를 의뢰했다. 이후 지난 6월 18일 열린 ‘에너지전환기 전력공기업들의 새로운 역할 연구’ 중간 보고회에서 연구용역 결과가 공개됐다. 보고서는 통합 법인 모델과 권역주도 독립 경쟁 모델, 지주사 모델 등 3가지 대안을 검토했으며 이 가운데 통합 모델을 가장 적합한 방안으로 평가했다.

삼일회계법인은 통합 법인이 단일 책임 주체와 자본력을 바탕으로 사업을 빠르게 추진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내부 인력을 유연하게 배치할 수 있다는 점도 장점으로 꼽았다. 현행 체제는 대형 해상풍력 등 재생에너지 사업 확대와 석탄화력 폐지 과정에서 발생하는 인력 재배치 등을 감당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발전업계는 이 같은 연구 결과에 공감하는 분위기다. 석탄발전이 줄어드는 만큼 재생에너지 분야 일자리 창출이 필요하고 이는 삼일회계법인의 4대 평가 기준 중 하나인 ‘정의로운 전환’과도 맞닿아 있다는 입장이다. 다만 발전사별 재무 구조와 발전원, 근로 조건 등이 다른 만큼 구체적인 방식에 대해서는 추가 논의가 필요하다는 평가다.

특히 해상풍력 사업 확대도 주요 과제로 꼽힌다. 최근 사업 방식이 오픈도어에서 국가 주도 방식으로 전환되면서 일부 사업자가 이탈하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해외 자본 중심으로 재편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이에 따라 공공기관의 주도적인 참여가 일자리 창출과 에너지 전환의 핵심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반면 통합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에 대한 우려도 있다. 삼일회계법인은 단일 거대 발전 공기업이 출범하면 시장 내 공정경쟁이 약해지고, 문화가 다른 발전사들이 합쳐지면서 초기 견해차가 발생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국내 기후단체 기후솔루션도 내부 방만 경영 가능성을 지적했다.

이에 대해 남태섭 전국전력산업노동조합연맹 수석부위원장은 “5사가 통합해도 전력거래량 점유율은 30% 수준이고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중도 약 10%에 그친다”며 “공공기관 경영평가 등 기존 관리 체계로 통제가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또한 조직 재편의 혼란을 줄이기 위해 회사와 노조가 함께 직무 전환 교육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재정 격차 해법인가, 글로벌 경쟁력 약화인가>>

공항 운영 기관 역시 올해 3월 통합 논의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정부가 인천국제공항공사와 국내 14개 공항을 운영하는 한국공항공사, 부산 가덕도신공항건설공단 등 3개 기관의 통합 가능성을 검토한 것으로 알려지면서다.

인천국제공항공사와 한국공항공사가 분리된 지 20여 년 만에 이러한 논의가 다시 제기된 주요 이유로는 양 기관 사이 재정 격차가 꼽힌다.

지난해 인천국제공항공사의 영업이익은 8667억원, 당기순이익은 6944억원에 달한다. 반면 한국공항공사는 지난해 영업손실 223억원을 기록했고 영업외손실까지 더하면 적자 규모는 552억원이다. 통합이 이뤄질 경우 한국공항공사는 재무 구조 개선을 기대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인천국제공항공사노조는 지난 3월 이를 두고 인천공항에 지방공항 적자 부담을 떠넘기는 방안이라고 반발했다. 이들은 “지방공항 만성 적자는 수요 예측에 실패한 정부 책임”이라며 “인천공항의 재정과 투자 역량이 분산될 경우 글로벌 허브공항으로서 경쟁력이 떨어지고 항공·물류 등 관련 산업과 공항경제권 발전까지 위협받는다”고 지적했다.

인천국제공항시설관리노조 박후동 위원장 역시 “공항 통합은 현재 진행 중인 교대제 개편과 인력 증원, 불공정 계약 문제 해결 등 자회사 현안 해결에도 걸림돌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지방공항 적자 보전과 신공항 재정 부담까지 떠안게 될 경우 인천공항의 재무 건전성과 경쟁력이 약화될 수 있다”고 밝혔다.

인천국제공항공사 직원 A 씨는 통합 이후 직원들의 처우와 인사 운영 변화를 우려했다. 특히 인천공항과 지방공항 간 임금 및 복리후생 격차와 근무지 변경 가능성에 큰 부담을 느낀다고 말했다.

인천공항 노조를 비롯해 인천시의회가 결의안을 내고 박찬대 인천시장과 지역 국회의원까지 반대 입장을 밝히면서 3개 기관의 통합 논의는 사실상 중단된 상태다.

반면 한국공항공사 측은 통합으로 중복 기능을 정리하면 전체 공항이 상생할 수 있고 인천공항 ‘1극 체제’에서 벗어나 국제선을 균형 있게 배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부산지부는 “가덕도신공항 건설 이후 김해공항 장기 투자 계획은 사실상 중단됐다”고 밝혔다.


<<박스>> 속도 내는 공공기관 통폐합 작업

타 공공기관 통폐합 작업도 본격적으로 속도를 낼 전망이다. 6월 18일 관계부처에 따르면 재정경제부는 최종안을 조율하고 있고 오는 7월 중순 경제성장전략에서 구체적인 방향을 제시할 예정이다.

지난해 12월 발표된 KTX·SRT 통합, 부산·인천 등 4개 항만공사 통합 등이 검토되고 있다. 정책금융기관(신용보증기금·기술보증기금, 수출입은행·무역보험공사, 한국주택금융공사·주택도시보증공사)과 부처별로 분산된 연구개발(R&D) 평가 인증기관(KIET·KIAT·KISTEP·KAIA 등)도 유사 기능을 중심으로 통폐합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오승주 인턴기자 seungjuo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