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르무즈 재개방에도 혼선…美·이란 신경전에 해운업계 진퇴양난

입력 2026-06-23 15:52

미국과 이란의 합의로 호르무즈 해협 통항이 재개됐지만 해운업계의 불확실성이 가시지 않고 있다. 양측이 해협 통제권을 둘러싼 신경전을 이어가면서 선박 운항사들이 진퇴양난에 빠졌다.

23일 파이낸셜타임스에 따르면 호르무즈 해협을 지나는 선박들은 어느 항로가 가장 안전한지를 두고 판단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미국과 미국 측 입장을 반영하는 보험사들은 오만에 가까운 항로를 권고하고 있는 반면, 이란은 자국 해안선에 가까운 항로와 이란 정부의 사전 허가를 요구하고 있다.

이란은 자국 정부의 허가를 받지 않거나 지정 항로를 따르지 않을 경우 회항 등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반대로 미국은 오만 쪽으로 붙어 미군의 엄호를 받을 수 있는 항로를 이용하라는 지침을 내렸다. 선박들이 미국과 보험사 권고를 따르면 이란의 보복 위험이 있고, 이란 지침을 따르면 미국의 대이란 제재 문제에 휘말릴 수 있는 구조다.

미국 해운사 세이프시 시핑의 SV 안찬 회장은 선주와 운항사가 난처한 상황에 놓였다고 평가했다. 그는 미국 당국과 보험사 안내를 따르면 이란 당국의 통항 방해나 나포, 적대행위에 노출될 수 있고, 이란의 지시를 따르면 미국 규정상 제재 위험이 생길 수 있다고 설명했다.

현재 미군은 호르무즈 해협에서 선박을 오만 쪽 항로로 유도하며 근접 호위를 제공하고 있다. 선박들은 대체로 보험사와 해운업계 권고에 따라 오만 쪽 항로를 이용하고 있지만, 이란 쪽 항로도 배제하지 못하는 분위기다.

미국과 이란의 항로 갈등은 호르무즈 해협 개방 합의 이전부터 이어졌다. 이란은 전쟁 기간 해협 통제권을 지정학적 압박 수단으로 활용했고, 전후에도 영향력을 유지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란은 지난 5월 페르시아만해협청을 설립했고, 최근에는 해당 기구를 통해 반드시 통항 허가를 받으라는 문서를 발행했다. 다만 이 기구는 미국의 대이란 제재 명단에 올라 있다.

미국은 이란의 해협 통제권 주장이 국제법에 맞지 않는다고 보고 있다. 공해의 자유로운 항행이 보장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에 따라 미국은 이달 초 미군 호위를 받을 수 있는 오만 인근 항로를 지정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21일 이 항로를 '수호천사 항로'라고 불렀다.

혼선 속에서도 통항량은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영국 해사무역기구에 따르면 전날 정오까지 24시간 동안 30척이 넘는 선박이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했다. 이는 지난 2월 28일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 전쟁 발발 이후 가장 많은 일일 통행량이다.

해상안보 위험 수준도 낮아졌다. 영국 해사무역기구는 호르무즈 해협의 해상안보 위협 단계를 기존 '심각'에서 '보통'으로 하향 조정했다. 이란 이슬람혁명수비대 해상 활동이 이전보다 덜 불안정해졌고, 미국 해군의 존재도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있다는 판단이 반영됐다.

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ses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