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진보 진영 최대 스피커로 불리며 여권 상왕으로 통하던 방송인 김어준 씨의 영향력이 예전 같지 않다는 평가가 나온다. 과거에는 김 씨가 의제를 던지면 더불어민주당과 지지층이 빠르게 반응했지만, 최근에는 김 씨의 발언이 당 안팎의 흐름을 곧바로 바꾸지는 못하는 모습이다.
김 씨는 23일 자신의 유튜브 방송 '김어준의 겸손은힘들다 뉴스공장'에서 민주당과 조국혁신당의 통합론을 재차 띄웠다. 그는 민주당과 조국혁신당의 통합을 전제로 한 전당대회 필요성을 거론하며 지난 2월 합당 논의가 무산된 책임을 민주당 내부 권력 다툼으로 돌렸다.
이재명 대통령 지지율 하락을 두고도 경고성 발언을 내놨다. 김 씨는 "코어 지지층의 특징은 자기 정체성을 부정하는 사람을 바로 버린다"며 과거 이낙연 전 국무총리가 박근혜·이명박 전 대통령 사면론을 꺼낸 뒤 지지율이 급락한 사례를 언급했다. 최근 여권 핵심 지지층 분위기에 대해서는 "등까지 돌린 건 아니고 팔짱을 꼈다"며 "이걸 두면 팔짱을 끼고 있다가 등을 돌린다"고 지적했다.
김 씨는 이른바 '뉴이재명' 흐름도 강하게 비판했다. 뉴이재명은 이재명 대통령 취임 이후 새로 유입된 중도·실용 성향의 친명 지지층을 뜻한다. 전통적인 민주당 지지층과 구별되는 새 지지 세력으로 꼽힌다.
김 씨는 "문재인 지지자가 이재명 지지자"라며 "친문이 친명이 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친문을 쳐낸다는 것은 친이재명을 쳐내는 것"이라고도 했다.
검찰개혁 문제와 관련해서는 속도전을 주문했다. 김 씨는 보완수사권 폐지 등 검찰개혁이 핵심 지지층의 정체성과 맞닿아 있다며 "전당대회 이후로 미루는 게 아니라 전당대회 전에 해야 한다"고 했다. 검찰개혁이 지연될 경우 "팔짱 끼고 있던 사람이 떠난다"고도 했다.
김 씨의 이같은 발언은 과거 그가 강한 영향력을 발휘하던 방식과 닮았다. 공격 상대를 분명히 지목하고 지지층의 위기감을 자극해 여론을 한 방향으로 움직이게 하는 방식이다. 검찰개혁 국면에서는 이 방식이 효과적이었다. 윤석열 전 대통령과 검찰이라는 상대가 분명했고 민주당 지지층도 '우리 편 대 상대편' 구도로 결집하기 쉬웠다.
전국단위 선거 국면에서도 김 씨의 영향력은 작지 않았다. 지난 총선에서 후보자들이 그의 방송에 출연해 사과하거나 큰절하는 장면은 김 씨의 메시지가 민주당 안팎에서 얼마나 무겁게 받아들여졌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로 꼽혔다.
그간 김 씨는 단순한 방송인이 아니라 민주당 지지층의 여론을 움직이는 핵심 인물로 통했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야당 시절에는 외부의 상대를 향해 지지층을 모으는 방식이 효과적이었지만, 여당이 된 뒤에는 당내 노선과 국정 운영 방향을 조율해야 한다. 조국혁신당과의 통합론이나 뉴이재명 논란처럼 지지층 내부에서도 의견이 갈리는 사안에서는 김 씨가 방향을 제시해도 과거처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기 어렵다.
같은 날 민주당 내부에서 나온 발언도 이 같은 분위기를 보여준다. 김영호 민주당 의원은 SBS 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에서 "진보 진영의 스피커들에 너무 의존하지 않는가"라고 지적했다.
그는 "진보 진영의 유튜버들도 선명성 경쟁 때문에 갈라졌고 당원들조차 유튜버의 언어를 쓰고 있어서 걱정"이라고 했다.
앞선 합당론 논란도 김 씨의 달라진 위상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정청래 민주당 대표가 조국혁신당에 합당을 제안했을 당시 김 씨는 유시민 작가와 함께 통합 필요성에 힘을 실었다. 그러나 당내 반발이 거세지면서 논의는 사실상 불발됐다. 과거처럼 김 씨가 방향을 잡는다고 해서 지지층 전체가 따라오는 구조가 더는 아니라는 평가가 나온 이유다. 당시 박지원 민주당 의원은 이와 관련해 "예전 같으면 김어준, 유시민이 움직이면 지지층이 다 한쪽으로 쏠렸는데 안 쏠리지 않냐"고 평가하기도 했다.
여론조사에서도 김 씨를 향한 부정적 인식이 확인됐다. 시사IN이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지난 9~10일 전국 만 18세 이상 성인 남녀 2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2026 지방선거 사후 유권자 인식조사' 결과 김 씨의 평균 감정온도는 19점으로 집계됐다. 감정온도는 0에 가까울수록 부정적인 감정을, 100에 가까울수록 긍정적인 감정을 의미한다.
응답자의 79%가 김 씨를 부정적으로 평가했고, 민주당 지지층과 스스로를 진보라고 밝힌 응답자 중에서도 각각 64%가 부정적이라고 답했다. 이 조사는 웹조사 방식으로 실시됐으며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2.2%포인트다.
민주당이 집권 여당이 된 만큼 당의 의제는 이제 방송인이나 유튜버가 아니라 대통령실과 당 지도부가 주도해야 한다는 인식도 커지고 있다. 결국 김 씨가 예전처럼 여권 의제를 좌우하기는 쉽지 않아졌다는 것이다.
민주당 한 관계자는 "김 씨가 갈등을 부추기는 측면도 없지 않아 있다"며 "김 씨에 대한 피로도가 쌓이고 있고 대통령의 국정 운영을 최우선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는 만큼 영향력을 유지하기는 힘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여권 내에서의 김 씨 입지는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다시 시험대에 오를 전망이다. 김 씨가 지원사격 하는 정 대표가 연임에 성공할 경우 김 씨의 존재감도 다시 부각될 수 있다. 반면 정 대표가 고전할 경우 김 씨의 영향력 약화 논란은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김희선 한경닷컴 기자 gimme_s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