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축은행들이 재도약을 위해 디지털 전환(DX) 전략에 힘을 쏟고 있다. 인공지능(AI) 도입과 플랫폼 고도화 등에 적극 나서며 대대적인 체질 개선에 한창이다. 올해 개선된 실적을 보여준 저축은행업계가 영업환경 악화를 이겨내고 다시 성장궤도에 올라탈 수 있을지 관심이 모인다. ◇ DX, 본업 악화 극복할 카드로23일 금융권에 따르면 전국 79개 저축은행의 올해 1분기 순이익은 3338억원이다. 전년 동기(440억원) 대비 7.6배 급증했다. 지난 3월 말 총자산순이익률(ROA)은 1.14%로 지난해 3월(0.15%)보다 대폭 뛰었다.자기자본순이익률(ROE)도 같은 기간 1.20%에서 8.71%로 크게 상승했다.
그럼에도 저축은행의 영업경쟁력 자체가 회복됐다고 보는 시각은 많지 않다. 불어난 이익의 대부분이 비이자사업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본업인 여수신보다는 주식시장 호황에 따른 유가증권 투자이익 증가 등 일시적 요인이 크게 작용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유가증권의 실적 기여도만 커지면 금융시장 변동성이 확대될 때 수익성이 급감할 위험이 있다.
저축은행의 건전성은 올해 들어 다소 나빠졌다. 지난 1분기 평균 고정이하여신(NPL) 비율은 8.6%로 직전 분기(8.4%)보다 0.2%포인트 상승했다. NPL 비율이 10%를 넘긴 곳만 26개에 달했다. 저축은행 NPL 비율은 과거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 여파로 급등했다가 부실채권 정리 등 구조조정으로 지난해 말 8.4%까지 떨어졌다. 하지만 고물가·고금리 장기화와 부동산 임대업황 악화가 겹친 영향으로 한계기업이 늘자 다시 오름세로 돌아섰다.
저축은행업계는 DX를 이 같은 상황을 돌파할 전략을 꺼내들었다. AI 등 신기술을 활용해 영업환경 악화를 극복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한 저축은행 관계자는 “DX는 단순한 사업 확장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체질 개선”이라고 말했다.
비대면 플랫폼을 활성화하는 전략은 이미 성과를 내고 있다. 올해 1분기 저축은행 이용자는 989만8952명으로 지난해 말 대비 약 15만명 늘었다. 해당 통계를 집계하기 시작한 1980년 이후 최대치다. 이 같은 추세가 이어지면 올 상반기 안에 1000만 명을 넘어설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 AI 도입하고 생활형 서비스 확대디지털 경쟁력을 강화하려는 시도는 저축은행업계 전반에 빠르게 확산하는 분위기다.
웰컴저축은행은 업계 최초로 ‘인공지능(AI) 금융비서’를 선보였다. 이 서비스는 웰컴저축은행의 모바일 앱 ‘웰컴디지털뱅크’에서 이용할 수 있다. 앱에 접속한 뒤 AI 홈 화면이나 전체 메뉴에서 마이크 버튼을 누르고 “어제 입금 내용 알려줘”, “친구한테 10만원 보내줘” 등을 말하면 AI 금융비서가 음성을 인식해 관련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 저축은행은 AI 금융비서 캐릭터인 ‘웰사’를 만들어 해당 서비스를 알리는 데도 공 들이고 있다. 웰사는 ‘웰컴의 확장가능 AI’(Welcome Expandable AI)를 줄인 말이다. 금융 서비스를 더욱 편리하게 이용하도록 돕는 AI라는 의미를 담았다.
OK저축은행은 조직 개편을 통해 AI 전환을 전담하는 ‘AI 디지털 본부’를 만들었다. 이 조직을 통해 데이터를 활용한 맞춤형 서비스를 늘리고 리스크 관리도 고도화할 계획이다. 고객의 이용 패턴을 정교하게 분석해 최적의 상품을 개발하는 데도 힘 쏟고 있다. 신용평가 체계와 고객관계관리(CRM) 시스템도 한층 강화할 예정이다.
비대면 고객을 겨냥한 생활밀착형 서비스도 눈길을 끈다. OK저축은행은 걸음 수를 측정하는 ‘OK만보기’와 금융·생활 정보를 제공하는 ‘읏머니레터’, 차량 시세를 확인할 수 있는 ‘내차 시세조회’ 등을 통해 고객과의 접점을 넓히고 있다. ◇ 모바일 플랫폼도 고도화저축은행들은 모바일 플랫폼을 고도화하는 작업에도 힘을 쏟고 있다. SBI저축은행은 모바일 플랫폼 ‘사이다뱅크’를 4.0 버전으로 업그레이드했다. 2019년 출시된 사이다뱅크는 지난 2월 가입고객 약 175만 명을 달성했다. 국내 금융권에서 주목받는 모바일 금융 플랫폼 가운데 하나로 성장하고 있다. 사이다뱅크는 이번 업그레이드를 통해 신청부터 상환까지 모든 대출절차의 편의성을 높였다. PC와 모바일 등 여러 채널 간 연속성을 확보해 대출 신청을 중도에 중단하더라도 아무 기기에서나 이어서 할 수 있게 한 것이 대표적이다.
금융소비자 보호에도 디지털 혁신을 접목했다. 신한저축은행은 보이스피싱 등 금융사기 수법이 교묘해지는 데 대응하기 위해 문진 시스템을 전면 개편했다. 최신 사기 유형을 반영한 단계별 문진을 도입해 고객 스스로 위험을 인지하도록 설계했다. 아울러 기존 정보통신기술(ICT)본부를 AI 전환(AX) 디지털본부로 재편하고 전담 임원을 선임해 내부 조직 문화를 바꾸는 데도 속도를 내고 있다.
저축은행업계 관계자는 “예대마진 위주의 전통적 영업 방식만으로는 더 이상 버티기 힘든 환경”이라며 “AI와 데이터를 활용한 디지털 혁신이 성공하느냐가 향후 저축은행의 생존 경쟁력을 좌우하는 요인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장현주 기자 blackse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