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 고문 장면 촬영해 공유…캄보디아 대포통장 조직 덜미

입력 2026-06-23 12:00
수정 2026-06-23 12:07


대포통장 명의자를 모집한 뒤 캄보디아 현지 숙소에 감금, 고문하고 빼앗은 통장을 보이스피싱 조직에 넘긴 일당이 경찰에 붙잡혔다. 일부 피해자는 통장 명의자로 캄보디아에 갔다 2~6주 동안 감금됐고, 이 중 1명은 조직원들에게 고문에 가까운 폭행을 당한 것으로 조사됐다.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대는 23일 대포통장 유통조직 총책 A씨(30) 등 조직원과 국내 모집책 11명을 검거하고 이 가운데 6명을 구속했다고 밝혔다. 경찰은 이들 중 8명에게 범죄단체조직 혐의도 추가로 적용했다. 조직원들이 국내에서 모집한 대포통장 명의자 9명도 함께 검거됐다.

경찰에 따르면 A씨 등은 지난해 7월부터 10월까지 인터넷 커뮤니티와 텔레그램 채널에 대포통장 매입 홍보 글을 올렸다. 이들은 ‘개인장’, ‘코인장’, ‘법인장’을 모집한다는 식으로 접근했고, 이를 보고 연락한 사람들에게 항공권을 제공하며 캄보디아로 유인했다. 장은 통장, 계좌 등을 뜻하는 은어다.

피해자들이 캄보디아에 도착하면 조직원들은 현지 숙소에 이들을 감금한 뒤 폭행과 협박으로 통장을 빼앗았다. 이후 해당 계좌를 보이스피싱 등 피싱범죄조직에 넘긴 것으로 파악됐다. A씨는 캄보디아 프놈펜에 숙소와 차량 등 범행에 필요한 시설을 마련하고, 팀장 중간관리책 국내 유인책 명의자 모집책 감시관리책 등으로 역할을 나눠 조직을 운영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통장 1개당 피싱조직으로부터 1000만~2000만원을 받은 뒤 하부 조직원들에게 매달 200만~400만원을 지급했다. 대포통장 명의자를 추가로 모집하면 100만~200만원의 인센티브도 준 것으로 조사됐다.

범행은 단순히 통장을 넘기는 데 그치지 않았다. 이들은 대포통장 명의자들에게 계좌 이체 한도를 1회 1억원, 하루 최대 5억원까지 높이도록 했다. 통신비 미납 등으로 명의자 계좌가 압류되는 일을 막기 위해 연체료를 대신 내주기도 했다. 금융기관의 이상거래탐지시스템에 계좌가 차단될 경우를 대비해, 명의자가 직접 은행 상담원에게 전화해 차단을 풀도록 하는 시나리오까지 작성해 둔 것으로 드러났다.

피해자들은 캄보디아 시아누크빌 원구단지 등에서 2주에서 6주가량 감금됐던 것으로 조사됐다. 이 가운데 피해자 P씨는 숙소와 이동 경로를 휴대전화로 몰래 촬영했다는 이유로 다른 명의자들이 보는 앞에서 폭행과 고문을 당한 것으로 파악됐다. 조직원들은 이 장면을 촬영해 내부에서 공유한 것으로 나타났다.


캄보디아를 거점으로 한 한국인 대상 취업사기·감금 피해 신고는 지난해 급증했다. 외교부가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주캄보디아대사관에 접수된 온라인 스캠 범죄 관련 취업사기·감금 피해 신고는 지난해 9월 기준 386건으로, 한 달 전 330건보다 56건 늘었다. 신고 사건 가운데 지난해 접수분 90건과 전년도 미종결 12건을 합쳐 모두 102건이 당시 미종결 상태였다.

최근 대포통장을 이용해 피싱 범죄를 일삼는 범죄집단도 검거되고 있다. 강원경찰청은 지난해 11월 캄보디아 피싱 조직에 대포통장 191개와 스마트뱅킹용 휴대전화를 공급한 일당 6명을 구속송치하고 53명을 불구속송치했다. 이 사건에서 국내 피해자는 63명, 피해액은 37억5000만원으로 조사됐다.

경찰은 캄보디아에 체류 중인 나머지 조직원 2명에 대해서도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지명수배했다. 여권 무효화 조치와 인터폴 적색수배를 통해 신병을 확보하고, 해외 거점 피싱범죄조직에 대한 수사도 이어갈 방침이다.

최영총 기자 youngchoi@hankyung.com